수영장에 애들 넣어놨더니

애들 수영장에 넣어놓고 난 그늘에서 맥북으로 서핑하는 게 요즘 일상. (네. 덕질중이죠;;) 주말 빼고 매일 낮,  3주 가까이 숙소 야외수영장 속에 들어가 있던 열음이 은율이는 이제 잠수도 하고 물 속에서 물구나무-.-도 서고(누가 이런 거 하랬써;;), 스스로 둥둥 떠서 물장구치며 왔다갔다도 잘 한다. 매일매일 수영장에서 친구들을 새로 사귀어 미친듯이 놀고 있다. 얼굴은 얼마나 시커매졌는지 저녁 때 어두워지면 애들 얼굴이 안 보여;; 이렇게 까만 거 처음봤네 진짜. 내새끼들 같지가 않다. 니네 얼굴 초콜렛색이라고 했더니 좋댄다. 최고 좋아하는 게 초콜렛인데 지들 얼굴이 그 색깔이라고 좋댄다 진짜.

예전부터 열음이한테 정식으로 수영장 가서 수영배울까 물어보긴 했지만, 1-2년 더 있다 가르치려고 그냥 있었는데 수영장에 며칠 넣어두니까 저렇게들 발전하는 게 신기하다. 처음에 무서워서 튜브 타고도 깊은 물에 안 가려던 은율이는 이제 “난 튜브는 안 타. 난 구명조끼만 입을 거야” 하면서 조끼 입은채로 깊은 물을 발장구치며 왔다갔다 하고, 열음인 아예 구명조끼도 걸치기 싫다며 그냥 물장구 쳐서 아빠 키만큼 되는 높이까지 왔다 갔다 수영한다. 난 아직 물에서 뜨는 걸 경험도 못 해본 수영몸치;;인데 애들은 저렇게 알아서들 잘 뜨네. 거참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주니까 알아서들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나가는 걸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까지는 열음이가 새로운 나라에 적응해서 학교에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 생각해서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2학기 때부처는 이것저것 운동을 하고 싶단다. 일단 축구를 많이들 하니까 축구 시켜보고 싶고,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다른 운동 중에서 하나를 더 시키고 싶다. 열음이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또 어려운 단계를 하나씩 극복해나가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는 운동 만한 게 없기 때문에 꾸준히 하면 정말 좋을 거 같다. 이사 가면 집에 피아노를 사려고 했는데 나는 클래식 피아노가 좋지만, 드럼이나 기타, 베이스 등등 여러 악기 소리를 합성시켜 곡도 만들 수 있는 디지털 키보드를 사놓으면 애들이 갖고 놀기 더 좋을 것 같아서 디지털 키보드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열음이는 한자를 보고 따라쓰는 걸 굉장히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신기해하고 으쓱해하기 때문에(무슨 보물지도를 따라쓰는 것 같은지;;), 중국어도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여기서 중국어를 배우려면 영어로 가르칠 테니, 영어가 좀더 자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시키는 게 좋을 것도 같고, 아무튼 언어중추가 굳어지기 전 만 열두살 이전에 중국어도 가르치고 싶다. 여긴 언어든 악기든 한국처럼 학원이 잘 발달돼 있지는 않고 집으로 레슨 선생님을 불러서 가르치는 문화가 흔하다. 운동은 유소년 축구클럽 같은 데 넣으면 될 것 같고. 시애틀 근처에 험준한 산도 많고 스키장도 많고 캐나다도 가까워서 겨울엔 학교에서 스키교실을 운영한다는데 작년 겨울은 이상고온현상으로 눈이 안 와 스키교실이 다 취소되기도 했다고;; 아무튼 겨울엔 스키도 배우면 좋을 것 같다. 열음인 운동은 뭐든 다 하고 싶어하고 포기도 잘 안 하고 잘하려는 악착같은 승부욕도 있다.

 

그동안 너무 놀기만 했지 공부를 너무 안 시킨 거 같아서 어젠 파닉스(글자 읽는 법)를 좀 시키고 배운 단어 다섯 개만 몇번씩 따라 쓰라고 했더니 잘 하다가 한참 뒤에 죽을상을 하고 “엄마.. 은율이는… 왜 공부를 안 해….왜 나만 해..ㅠ.ㅠ”  ㅋㅋ 너무 웃겨서 그럼 은율이도 같이 하라고 은율이도 옆에서 숫자 따라쓰기 같이. 말이 숫자지 뭐 지렁이 기어가듯이 그리고 있는 은율이.

 

열음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많고 도전하려는 의지, 모험정신이 강하고, 은율이는 책 하나 잡으면 지루해하지 않고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있는 거 보면 끈기나 탐구심 같은 게 강한 것 같다. ornus는 열음이가 비즈니스를 하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다. 요즘 ornus가 매번 다양한 업계(IT기업뿐 아니라 화장품, 여행, 금융 등등 아마존 클라우드를 쓰는 기업들)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비즈니스를 경험해보니 열음이한테서 그런 재능이 보인다고. 은율인 나중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하는 걸 보면 어떤 문제나 현상에 대해 질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들어간다. 그래서 학자가 되어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모르지.. 자라면서 열두번도 변하는 게 애들이니까.

여기 한국 엄마들 방학 때 애들 영어 빨리 따라가게 영어 과외도 시키고 수학 선행학습한다고 선생님도 붙여주고 한다는데, 난 그냥 이러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게 옳다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떤 경험을 통해 뭔가를 개척해나가고 성취해나가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할 환경은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나도. 근데 너무 ‘개척하는 요령’을 알려주고 떠먹여주는 건 일찍부터 시키고 싶지 않다. 수학도 요령을 배울 나이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생활 속에서 수학적 개념이나 논리를 발견하게끔 하는 게 좋지 않을지. 그래서 도형 만드는 장난감 같은 건 잘 가지고 놀게 한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08-13 at 오전 2:31

    3주간의 수영장 죽돌이들, 대근육 발달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원리, 잘 놀 수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창의력은 물론 예술감각까지 발전했을 듯..ㅋㅋㅋㅋㅋ 완전 비행기값 하나도 안 아까운 고급 사교육이었을듯!
    나도 항상 유라 스스로 깨우치고 성취감 느끼는 계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가끔 원초적 조급함이나 걱정이 발동되면 여기 와서 니 글 읽으면 진정이 된다..ㅋㅋㅋㅋㅋ
    저번에 한국에 갔을때 유라보다 1년정도 큰 애들 키우는 친구들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그나마 한국에서 극성축에는 끼지도 못할 천하태평 마인드의 소유자들인데도 참 다들 한글 깨치기 영어교육등 자유롭지 못한듯 해서..좀 맘이 많이 씁쓸했고, 그애들이 나한테 신신당부한 말은 “한국엔 오지마라”였어 ㅠ 자기네들도 이게 뭔짓인지 모르겠다며. 하긴 뭐 걔네들은 천성이 극성스럽지 않지만 동네자체가 좀 극성스런 동네긴 하지. (송파 가까이)
    근데 유라도 책을 참 좋아하는데, 난 이맘때쯤 애들이 다 책을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아니야? 난 비교대상이 없어서 몰라서 묻는것임.(중국애들은 아기들 책 안 사거든 특히 이동네는)
    나는 책을 전집으로 사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워낙에 한국친구 만날 기회가 없으니 한국어로 이야기라도 들려주려고 지른건데..유라가 책에 있는 그림 설명하는거 좋아하고 상상놀이 역할놀이 할때도 주로 책 이야기를 재현하거나 패러디 해서 웃겨ㅋㅋ

  2. wisepaper said on 2015-08-13 at 오전 3:16

    수영장 죽돌이 ㅋㅋ 나이트 죽돌이 죽순이가 생각나서 ㅋㅋ 맞아요 3주간 고급 사교육한 거나 마찬가지같아요. 스스로 물에 뜨려고 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원리도 터득하고..

    스스로 성취감 느끼게 하는 걸 목표로 하되, 아이가 어떤 관심사를 보이거나 어떤 단계를 넘어가는 걸 보일 때 적절한 걸 제공해주는 거.. 요런거 위주로 하고, 너무 주입식이나 요령을 가르쳐주거나 빨리가는 걸 가르치는 것, 과외 같은 건 어릴 땐 정말 안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라나서 나중에 인생을 스스로 개척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거 열심히 시키는 엄마들, 정말 생각 없어 보여요..

    요 나이 때 애들이 책을 장난감이나 소중한 물건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현상은 많이 보여요. 막 올라가고 내려가고 뛰는 대근육 발달에 열심이지 않은 애들은 더더욱 앉아서 책 읽고 조곤조곤 노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도 유독 더 책을 좋아할 법한 애들은 눈에 띄어요. 유라도 아마 그런 쪽에 속할 거에요 언니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냥 애라서 책을 좋아하는 거랑, 나중에도 책을 좋아할 것 같은 아이의 행동은 차이가 보여요.. 유라도 그럴 거에요 금방 질려하지 않고 계속 책을 본다면요. 저도 어릴 때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는데, 아기 때부터 책 좋아하는 게 눈에 띄었대요. 근데 전 그 때 운동이나 만들기, 탐험 등등 모험적인 걸 안 했던 게 후회되기 때문에 우리 애들이 책만 많이 읽는 거는 조심하려구요. 은율이도 제가 볼 땐 그맘때 애들 중에서 눈에 띄게 지루함을 모르는 아이에요. 오랫동안 한 가지를 잘 하고 앉아 있으니까요. 책도 만약에 우주 책을 보다가 토성이 나오면 한참 들여다보다가 또 토성 나온 다른 책을 찾아서 보다가(글자도 모르면서;;) 질문하고(엄마 토성엔 왜 고리가 있어? 고리에는 뭐가 들어 있어? 지구에는 왜 없어? 등등), 거기서 또 무슨 우주선이 나오면 한참 보다가 우주선 나오는 책을 찾아서 펴서 또 질문하고.. 이렇게 애가 질문하면서 집중하는 게 보이거든요. 솔직히 내 자식이지만 아직 남보다 머리가 좋다 두뇌가 좋다 이런거는 전혀 안 보이는데, 이런 태도들이 학자적인 탐구자세;;; 같은 거라서 저는 머리만 좋은 것보다 오히려 이런 자세가 갖춰져 있는 게 더 좋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은율이는 만약 변하지 않고 이대로 잘 자라면 학문 쪽으로 나가도 좋겠다 싶어요. (근데 애들은 자라면서 열두번도 변하니까 ㅋㅋㅋㅋ 완전 다르게 클 수도 있지요 ㅋㅋ) 전 열음이는 사업이나 예능 쪽을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예능은 재능 없으면 안 되는 분야니까 그건 지가 재능 있고 끼 있으면 알아서 하겠죠. 전 그냥 가능성이 뭔지 지켜보고 환경 제공하는 부모역할이나 하려구요.

    유라처럼 책 읽으면서 이야기 상상하고 역할놀이 하고 그런거 참 좋은 거에요. 가끔 맞장구 쳐주시구요. 엄마가 너무 개입해서 극성스럽게 놀아줄 생각 할 필요 없대요. 애가 혼자서 상상놀이하고 중얼거리는 시간들이 중요한 거라.. 그니까 언니는 옆에서 서핑이나 하고 언니 책이나 읽으셔도 돼요 ㅋㅋㅋ 반가운 소식이죠???ㅋㅋ

  3. 심은하 said on 2015-08-13 at 오전 10:37

    옹..반가운 소식이구나..ㅋㅋ
    사실 유라가 혼자 상상놀이 할때랑 놀이터나 공원 가서 놀잇감 찾거나 다른 애들이랑 놀때 나는 혼자 몰래 재범이 감상..ㅋㅋ 퇴근한 남편한텐 하루종일 유라한테 무진장 시달린척..ㅋㅋㅋ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