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올해는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세상에. 나이를 얼마나 먹었으면 10주년이야.. 무섭다..ㅠ.ㅠ.)

이번 여행을 10주년 여행이라고 끼워맞추면 되겠다며 농담하는데 갑자기 10년 아니 스무살의 시간들이 밀려왔다가 사라져간다.

*10주년 맞이 닭살 주의*

…..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지만 딱히 친하진 않았던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수능이 끝난 이후 다시 만났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아직 풋내나는 청춘들은 어른이 되기 전 그 겨울을 들뜬 마음으로 보내기 마련.

남자동창들과 무리를 지어 서 있는 ornus를 다시 봤을 때 나는
“쟤 중학교 때보다 좀 귀여워진거 같네… ” 싶었다.
ornus는 그 때 친구들 앞에서 다다다다 의견표현을 하는 나를 보며
쫌 무섭지만; 신선한 게 “쟤는 다른 여자친구들과 다른 걸 가르쳐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ornus  말로는 이게 바로 자신이 나한테 반했다는 증거라는데, 무서운 여자한테 반하다니;;)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금요일마다 경춘선을 타고 집으로 내려가야 했던 시절.
입학한 지 2주 된 금요일, ornus가 같이 기차 타고 집에 가자고 해 함께 기차에 오른 게 시작이었더랬다.

스무살이 되어 처음 맞는 3월의 봄기운이 내려앉은 ‘춘천 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으로 흔들리던 나무들의 그림자가 아직도 떠오른다. 내 어깨에 기대 잠든 ornus를 쳐다보는데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이상한 기분은 생각보다 더 요상한 게,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명치 끝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다음날 ornus한테 “야, 나 너 좋아!” 했더니,
가방에서 화이트데이 선물이라며 곱게 포장된 사탕상자를 꺼내던 여우 같은  ornus.

학생식당에서 밥 먹고 84번 타고 한강대교 건너 종로를 왔다갔다 하며 데이트하던 가난한 대학생들이
“야, 한 방에서 같이 살자!” 해서 대학 4학년 때부터 함께 살았고..
(뭐 사실  ornus는 그 훨씬 전부터 살던 기숙사에 잘 안 들어가는 불량 기숙사생이었지만)

졸업 후 나는 회사 다니고  ornus는 대학원 다니던 암울한 시절,
무슨 사정으로 인해 몇 달 간 고시원에서 따로 살게 됐는데
“우리 이런 좁아터진 곳에서 따로 살지 말고 혼인신고하고 대출받아서 이쁜 방 하나 구하자!” 해서 둘이 합쳐 가진 돈 천만원도 없는 겁없던 시절, 결혼했다.

(–에피소드 :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근엄하고도 지루한 결혼식을 올리던 날. 대학 때 우리 사이를 속속들이 알던 친구들이 맨 앞 두줄을 차리하고 앉았는데 지들끼리 속닥이다 목청 큰 친구가 “쟤네 대학 때부터 쭉 같이 살았잖아!” 하는  바람에 시골 마을 어르신들 놀라서 헛기침 하셨다고.. 나 나름 고향에선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결혼 10주년 같은 건 아주 늙은 아줌마 아저씨나 돼야 맞이할 수 있는 기이한 기념일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우리도 그렇게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애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고싶은대로 살았을까..
앞뒤 보이지 않고 절절했던 나날들이었다.
설마 15년 넘게 붙어다녔던 남자를 지금까지 떨려하고 어려워하진 않지만 실은 아직도 ornus를 보면 때때로 저릿하다.
로맨스 정서를 듬뿍 갖고 있는 내 기질이 희한해서일 수도 있지만 ornus가 여전히 나를 만난 지 두 달 된 연인처럼 정성스럽고 다정하게 대해주기 때문이 더 클 것이다.

….
어제나 오늘이나 너그러운 사랑을 주는 ornus로 인해, 때로 붕붕 뜨는 두발을 땅에 딛고 살 수 있게 되었다.
ornus는 나 같은 요상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세계가 달라졌단다.
..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한 세상에서 우리 인연의 가치를 사용하며 늙어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3-02-08 at 오전 4:49

    10주년 추카…나는 결혼 6주년, 김대교와 알고지낸지 17년,
    대학땐 김대교랑 나랑 하나도 안친했는데…
    김대교에 대한 별 감흥없이 살아가는 요즘…이글을 보니 인연의 신비가 새롭게 느껴지는구나. 나에겐 고마운 글.
    김대교는 나한테 세뇌당했었대. 하도 내가 심은하라고 선전하고 다녀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연예인이었다나. ㅋㅋ 미안!!!

    • wisepaper said on 2013-02-08 at 오전 7:20

      암요 암요 심은하 언닌데 ㅋㅋㅋ 옛날 생각 물씬 나네요 84번, 좁아 터진 그 동네 골목길들… 우린 다들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을 테니.언니네도 6년이나 되셨구나.. 허걱. 제가 심은하 언니의 이름발은 기억하고 있으나 언니의 대학시절 연애사는 전혀 모르는데, 설마 김대교 오빠가 첫사랑일리는 없고 ㅋㅋ흑석동에서 연애사 한두개쯤은 만드셨을 거 같은데.

  2. 혁주 said on 2013-02-08 at 오후 8:51

    나도 올해가 6주년인데ㅋㅋ 10주년 축하해~

    • wisepaper said on 2013-02-09 at 오후 8:23

      너네도 벌써 6년이구나. 나만 오래된 게 아니라 다들 오래됐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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