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인문고전 잡담

1. 자식, 남이다

나야 명절에 어르신댁을 찍고 돌아다니며 인사드리는 일 외에 별로 하는 게 없지만, 명절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명절전증후군을 앓고 있다. 기혼자들뿐 아니라 청년들, 청소년들도 피해갈 수 없다. 취직, 애인 유무, 결혼 유무, 출산 유무, 연봉 등등 명절 단골 질문 리스트 앞에서 진심으로 다들 스트레스 받는 중..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 가족들끼리 오랜만에 만나 재미나게 보내라고 있어야 될 명절이 스트레스 연중 행사가 된 거 같다.

아들만 둘이라 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선 아들 부모가 세상 바꾸기가 더 쉬울테니. 딸만 둘이었으면 나는 또 세상을 바꾸기 위해 유혈혁명을 해야 할 거다-.- 자식 다 키워서 성인 되면 남이다. 내 소유물 아니다.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는 자식들과 그 배우자들과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고 온 가족이 납득할만한 방법으로 보낼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이 힘들 때 힘이 되주고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그로 인해 자식의 삶에 내 결정권을 휘두른다거나 간섭하고 싶지 않다. 내게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ornus지, 자식은 그들 배우자를 만나는 순간 지들이 이룬 새 가정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게 옳다. 부모는 20여년 간 자식에게 퍼주는 것이 운명이지 자식에게 받을 수 없다. 이 불공평이 바로 진실이다. (자식이 어떤짓을 해도 부모가 한 것을 갚을 수는 없다.) 억울하면 자식 낳지 말았어야지. 자식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는 게 모든 집착과 불행의 시작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앞서면 안 된다. 내가 싫은 일이라면 아무리 그 일이 자식을 위한다 한들 하지 않을 것이다. 과년한 자식들의 배우자를 내가 결정하려 하고, 그들 삶의 방향을 내가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나이든 부모들을 보면 “제발 당신들이 재밌는 일, 당신 자신의 취미생활, 당신 자신의 열정을 위해 살아가라”는 말이 나온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지 않으니 남의 인생(자식 인생)에 집착하는 법이다. 집착하지 않고도 자식에게 자애로운 부모로 살아갈 수 있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내 삶에 더 열정을 가지면 되지 않을까. 집착은 언제나 사랑이 아니다.

나는 요즘 젊은 엄마들이 더 무섭다. 자식을 하나 둘 낳아서 영유아시절부터 수없는 관심을 쏟아서 키워놓고 나중에 결국 그 보상 계산하느라 더 집착적인 시어머니가 되지 않을까 무섭다.


2. 성공하려면 인문고전 읽으라고?

소드에서 “재산, 스펙, 배경 없는 사람일수록 인문고전을 읽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를 읽었다. 요지는 인류 전체에서 성공한 0.1%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인문고전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들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 헛다리를 밟고 있다, 0.1%의 혜안은 인류가 수백, 수천년 동안 쌓아올린 인문고전 속에 있다는 내용이다. 반론의 여지가 많은 구멍 뚫린 글이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인문학이란 건 0.1%란 개념 자체를 초월(도약)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인문학적인 사고는 성공 개념을 초월한다. 인문고전이란 것은 인문학 전공자도 사실 읽기 힘든 책들이다. 인문학을 전공하면서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인문고전을 대출해 붙들고 앉았던 20대를 보냈지만 언제나 제대로 읽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대학 2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다독상 수상사를 10명 뽑았는데 그 안에 뽑힌 적이 있다. 친구는 그 때 내가 자랑스러웠다는데;; 사실 대출만 많이 하면 뽑히는 상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부터 들뢰즈, 데리다, 푸코까지 다 내가 동경했던 이름들이지만 변죽만 울렸던 “영원한 내 짝사랑” 리스트에 올라 있다.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어도 인문학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나는 내가 인문학을 공부한 것에 만족한다.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 아니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내가 사고하는 방식은 결국 인문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사, 사업을 할 때도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건 본질쪽이라고 믿는다. 경기가 어려울 때 사람들이 쉽게 효율성 쪽으로 기울게 되지만 정작 필요한 혜안은 경영학적인 것보다 인문학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0.1%들은 인문학적인 혜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인문학적인 사고방식은 0.1% 개념을 초월한다. 성공/실패 개념을 초월한다. 성공하지 않아도 내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본질 쪽에 선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3-02-10 at 오후 10:19

    1.나는 딸가진 엄마라서 앞으로도 유혈투쟁을 각오해야하는걸까? 자식은 남이다,라는 제목만 봐도 글내용 보지않아도 백번공감! 맞아, 억울하면 자식낳지 말았어야지…
    요즘 엄마들 무섭지. 그리고 자기 올케가 엄마 일 안 거들어서 자기엄마 불쌍하다고 글 올리는 시누이들이 아직도 많은걸로 봐선…한국은 아직도 변하려면 멀었다는거…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인지.

    2.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나도 한때 경험했었지.
    정말 박사과정까지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것 같아.
    하지만 나도 인문학을 전공한것에 대해 만족해. 인문학에 대한 짝사랑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무언가 빠진 인생을 살거같아…
    그때 배운 지식들은 거의 다 까먹었지만 그 마인드는 오랫동안 남아서 나를 이끌어준다는…

    • wisepaper said on 2013-02-11 at 오후 5:49

      1.유라가 아마 잘 커서 제대로 생각박힌 가정의 남자랑 결혼할 거에요~ 그럼 언니 유혈투쟁 안 해도 되게..ㅎㅎㅎ 요즘 젊은 엄마들 육아에 미쳐서 육아제품, 육아 학습지, 육아 장난감 등등 올려대고 마치 자기 일처럼 극진한 정성 쏟는 걸 보면 좀 무서워요.. 애들은 차라리 자유롭게 키우는 게 더 잘 자랄 거 같은데..

      맞아요 한국 변하려면 아직 멀었죠. 남의 가정 일(자식, 시누 올케 다 남이죠)엔 응원이나 하고 불필요한 관심 끊고 나 자신, 내 가정에 집중하면 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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