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음이..
가을로 접어들었는데 비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오고 낮에는 거의 항상 맑은 햇빛. 비가 거의 안 오는 산호세나 샌프란에선 그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이 참 힘들고 공기도 별로로 느껴졌는데 시애틀은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비가 오기 때분에 공기가 항상 청명하게 씻겨 있는 깨끗한 느낌이 좋다.
요즘 매일 학교 끝나고 운동장과 운동장 옆 나무숲에서 친구들과 두 시간씩 놀다 오는 열음이. 은율이도 얼떨결에 형아 노는 데 끼어서 같이 놀고.
다른 날보다 조금 놀고 집에 가자고 했더니 이렇게 징징…. 징징거리는데 그 얼굴이 또 이뻐서 사진을 찍어댔네? 열음이도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해서 내가 거의 안 찍는다. 열음이가 자기 얼굴 찍게 가만히 있는 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찍기 되게 힘들다ㅠ.ㅠ
짜증 만땅
아가 때부터 한 속눈썹 했던 열음이.
난 그저 더 놀고 싶단 생각뿐이에효 왜 집에 가란 말이에요???????
집에 안 가..
진짜 속상해요 왜 집엘 가라는 건지..
아가 때부터 검은 눈동자가 컸던 열음이..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눈빛이고 생각도 깊어보이는 눈빛인데 열음인 그저 놀겠다는 생각 외엔 없어효;;
친구들과 공놀이하는 열음.
정말 미스테리인 건 열음이가 학교 가는 걸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나 같으면 친구들이나 선생님 말하는 거 반도 못 알아듣고 낯선 나라에 처음 와서 학교에 간다는 게 되게 예민해지고 불안할텐데, 열음인 처음 벨뷰에서도 잘 다니더니 여기 와서도 여전히 학교를 너무너무 좋아한다.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은 의식조차 안 한다. 미국 온 지 얼마 안 됐던 벨뷰 살 때는 학교 다녀오면 그렇에 영어를 문장으로 나불대더니(틀린 문법으로 나불나불), 요즘은 영어가 더 늘었는데도 집에 오면 한국말로만 말하지 영어를 문장으로는 잘 안 쓴다. 한국말 중에 단어가 한국어로 안 떠오를 때만 영어로 표현한다.
“엄마.. 여기 글자 위에 내가 썰끌(circle)을 그려왔어~” “은율아 형 거기 줴킷(jacket) 좀 줘~” 이런 식 ㅋㅋ. 한국어 단어가 안 떠오르는 것 같아서 내가 바로 한국말로 받아쳐준다. “열음이가 동그라미를 그렸구나!” 이런 식으로.. 다만 친구들과 놀 때 보면 문장을 만들어서도 곧잘 한다. 그래도 물론 아직 갈길이 멀다. 친구들 수준까지 가려면 한 2-3년은 더 걸릴 것 같다.
가끔 자다가 새벽에 깨서 “엄마 나 학교 갈 시간 아냐? 빨리 가야지!” 이렇게 잠꼬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미쳐.. 도대체 학교에서 뭘 하길래 이러지? 학교에 무슨 꿀을 발라놨나? 아님 열음이가 워낙 사회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라서 그런건지?? 미스테리다.. 애가 낯선 나라 와서 학교 적응이 힘들었으면 우리 모두 다같이 고생했을 텐데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다.
웃는 모습도 레몬같이 상큼..
근데 이상하게 우릴 아는 지인들도 친척들도 열음이 외모가 이뿌다는 말을 안 한다.물론 외모 말고 열음아 사랑한다~ 우리 열음이 소중해 이런 말은 친척들로부터 많이 듣고 살지만. 열음이가 입양한 아이라서 우리 가족하고 다른 분위기로 생겼기 때문에 그 외모에 대한 말을 아끼나? 다른 얘기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안그래도 되는데? 나는 어떤 아이는 뭐 기관지를 좀 약하게 타고날 수 있고 어떤 아이는 뭐 머리카락이 남보다 더 더 흐린 색일 수 있고 이 정도의 특징으로 열음이의 정체성을 이해한다. 열음이 본인도 “나는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엄마아빠가 둘씩 있으니까 남보다 많아서 좋아! 은율이 너는 하나씩밖에 없지?” 한다. 난 사람들이 이거에 대해서 쉬쉬하거나 어려워하는 게 더 기분이 나쁘다. 우리와 열음이에게는 그냥 별거 아닌 평범한 일, 자신의 수많은 특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외모에 대해서는, 나 역시 열음이한테 사랑한단 말이나 넌 소중해 이런 말은 정말 많이 하지만, “우리 열음이 은율이는 배꼽도 이쁘고 발톱도 소중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외모에 대한 칭찬은 편견을 심어줄까봐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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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내가 예전에 열음이 이쁘다고 리플달지 않았었나? 근데 솔직히 내 취향으론 열음이 얼굴 지금 모습보단 다섯살쯤(?) 쌍거풀 없을때가 더 매력있긴한데, 지금은 객관적으로 이뻐. 이목구비가 좀더 뚜렷해진듯 해.
그리고 페북같은데 자식자랑들..사실 나도 특별한 이야기거리 없이 올린 자식사진은 잘 안봐. 걍 지나쳐. 재미가 없거든. 다 거기서 거기고. 근데 뭐 원래 아기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인건지 아님 자식사진엔 예의상이라도 핫한 반응 보여주는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카스나 페북 남의자식 사진 밑에 달린 수십개 리플들 이해 안될때 많음..ㅠ
근디 여기 홈피는 성격이 다르지않음? 일단은 여기 자주 들어온다고 추측되어지는 지인들만 해도 애기 사진에 그닥 반응 안보일것같은 캐릭터들인데? 나도 그렇고..ㅋㅋ
ㅋㅋㅋㅋ 언니의 그 리플이 최초이자 유일한 리플이었어요.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지인들한테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아무리 과묵하다한들 이 현상이.. 좀 이해가 안 됐어요…..ㅠ.ㅠ 전 그래서 내눈이 삐었나 가끔 걱정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남자 아름다운 얼굴들을 많이 섭렵해왔기 때문에(ㅋㅋ 자랑이다~) 눈이 삐진 않았거든요. ㅎㅎㅎ 암튼 언니 말고는 없어요. 열음이 평생……ㅎㅎㅎㅎㅎㅎ 저두 쌍커풀 없는 눈이 취향이에요 ㅎㅎ
저도 사실 카스 같은 거 안 하는 이유가.. 뭔가 민망해서.. 우리 홈피는 그런데랑 성격도 다르고, 제가 제 깊은 속까지 다 이야기하는 곳이라서 계속 이어가곤 있긴 한데… 맞아요 우리 홈피 들어오시는 지인들 다들 과묵 캐릭터.. ㅋㅋ 언니 없으면 숨이 막혔을듯;; ㅋㅋ
듣고보니 정말 그러네. 열음이 외모를 칭찬해본 적이 없음. 근데 거꾸로 생각해보니까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이유가 부모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 거 같네… 근데 너희 부부에게 열음이는 외모를 칭찬하는건 뭔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만약 열음이에게 직접 말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넌 어렸을 때부터 아주 씩씩하고 건장한 체구의 멋진 남자였단다”라고 말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