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공공 도서관

오늘 일찍 일어나 발라드(Ballard)에 가려고 했는데 낮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보슬비도 살짝 내리길래 근처 다운타운을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시애틀 공공 도서관(Seattle Public Library)에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1998년 “시민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계획하에 건축 공모전을 내 29개의 회사가 경쟁을 펼쳤는데 당선자는 현대 건축의 스타 건축가 중 한 사람이 렘 쿨하스가 되었다. 렘 쿨하스는 우리나라에도 리움 미술관 세 건물 중 하나를 설계했다( 나머지 둘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역시 현대 스타건축가들이다).

시애틀도 샌프란시스코 못지 않게 언덕이 많은 도시인데 샌프란처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바다가 보인다.

도서관은 4번가와 매디슨 스트릿이 만나는 지점, 가파른 언덕 위에 역시 경사진 땅을 그대로 살려 서 있었다. 강철과 유리를 재료로 평범한 건축물들의 형식적인 구성미를 파괴한 외관을 보며 약간은 압도되었으면서도 살짝은 삐닥해졌다. 장식적이지 않고 직선을 똑바로 쓴 조형미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모던한 건물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포스트모던한 혹은 형식 파괴적인 건축가들은 신기한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왠지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워낙 흐린 날이라 내가 찍은 사진은 이모양 이꼴이다. 이 도서관 앞쪽으로 가파른 경사길이 아래로 이어지는데 시선의 끝은 바다와 만난다. 아름다운 거리다.

맑은날 찍으면 이렇게 나온단다(이건 공식 사진 퍼온거)

아무튼 내 취향이 아니라 살짝 삐딱해진 마음은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서 사라졌다. 외피재료인 유리와 철골조가 내부에도 그대로 드러난 채  태양빛을 바로 받아들이는 구조에, 아래층에서 윗층까지 모두 올려다볼 수 있는 오픈 형식, 나선형으로 계단 없이 설계된 서가, 의외의 색감조합(라임색 같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독서하는 시민들의 풍경까지… 평소에 고전적이거나 혹은 모던한 도서관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포스트모던한 디자인이 한 도시에 발랄한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올려다보면 꽤 높은 층까지 한 시선 안에 둘 수 있다. 햇빛이 그대로 쏟아지는 서가 앞에 특별한 내부 공간의 구분없이 모든 공간이 오픈된 자유로운 구조다.
흐린날이라 아쉬웠다. 맑은 날 쨍한 태양빛이 쏟아지는 걸 보고 싶다. 아마 비내리는 정취도 특별할듯.

기둥 콘크리트가 불안정한 구조에 안정감을 선사한다.

철골조로 작게 분할된 유리창 밖으로 외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

구조만 전위적인 것이 아니라 색감을 쓰는 방식도 통통 튄다. 라임색과 블루 조합. 맘에 들었다.

에스컬레이터 색감도 과감하게 라임색을 쓰고 있다.

제일 높은 뷰포인트가 있다는 화살표를 보고 쪼르르 따라갔다.

왼쪽으로 좀더 가면 된다~

이렇게 해서 한 시야 안에 들어오는 높이가 약 10층 높이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 난간 하나에 기대 서 있으면서 떨어져 죽을 거 같아, 대충 찍고 말았다ㅠ.ㅠ

서가는 4층 높이의 공간들이 계단 없이 이렇게 경사길로 나선형으로 구성돼있다(Books Spiral)
저 소실점 끝까지 가면 다른 방향으로 또다시 이런 경사로로 이어진다.

양 옆에 나선형으로 늘어선 서가를 가운데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가파르다.

1층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

인터넷으로 자신이 주문한 책을 도서관에 가서 픽업해갈 수도 있다

자전거 타고 온 남성이 빌린 책을 건물 외부에서 반납하고 있다. 저 귀여운 공간으로 책을 쏙 집어넣으면 장난감같은 통로를 따라 책이 천정으로 올라 가 반납코너로 간다. 24시간 반납 시스템이다.

오후 세 시쯤 퇴근한 ornus가 도서관으로 왔다. 발렌타인데이라고 그래도 미국식으로 튤립 한다발을 사왔네?-.-

1번가, 바다가 보이는 스시집에서 생생한 회를 먹었는데, 정말 부드럽고 맛있더라.
그러나 많이 먹으니까 뱃속에서 날것들이 요동치는 느낌 때문에 힘들어졌음. 미소된장국과 밥이 달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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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내용물보단 건축에 더 관심이 간다.
시애틀의 인상적인 건축물 투어 리스트 중 하나였던 이 공공 도서관.
햇빛 쨍한 날에 꼭 다시 오고싶어졌다. 딱히 갈 곳 없는 날에 햇빛 받으며 도서관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을만큼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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