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마음에

어제 커뮤니티에 아마존닷컴 채용정보를 올렸다가 말도 안 되게 꼬인 사람들의 심정을 보고 기분이 크게 상해서 정보를 지워버렸는데, 생각해보니 가슴 한 켠이 짠해 왔다. 가만 놔뒀으면 나중에라도 분명히 저 정보가 꼭 필요하고 절실한 사람들에게 가닿을텐데. ornus와 내가 수년 전에 아무도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막막한 심정으로 미국취업을 알아봤던가. 그 때 누군가가 저런 정보를 한 번만이라도 올려주고 조언을 해줬더라면.

아무리 꼬인 사람들과 어깃장 놓는 사람들이 많더라도 나는 수년 전 ornus와 나와 같은 심정인 사람들을 위해 다시 노력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에게라도 이 정보가 유용하게 닿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으로. 나와 ornus가 겪었던 막막함을 떠올리면서.

그래서 ornus와 다시 해보자고 말하고, 이번엔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한국에서 미국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한 명 정도가 꼬인 마음으로 요상한 리플을 달긴 했지만 90퍼센트의 리플이 좋은 반응이었고. ornus 이메일로 지금 이력서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자마자 한 시간도 안 돼서 영문이력서들이 수십통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평소 영문이력서 쓸 일이 없을텐데, 이들이 평소 얼마나 미국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이렇게 항상 영문이력서가 준비되어 있을까 생각하니 참.. 이 젊은 사람들이 비자를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취업을 원하고 있다는 게. 이들을 한국에서 다 커버할 수 있었다면 이럴 필요가 없었을텐데. 이들이 전부 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중 적절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ornus가 레퍼럴을 통해 지원해줄 거다. 레퍼럴이 있으면 인터뷰 단계를 한두단계 생략할 수도 있고 인터뷰 팁을 알려줄 수도 있다. 미국 IT대기업 코딩 인터뷰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고 직접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 형태로 까다롭게 보기 때문에 평소 많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솔직히 통과가 불가능하다. 도착한 이메일 중엔 정말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도 많고 아직 학생인 사람들의 하소연, 조언, 상담의 이메일도 꽤 있었는데, 우린 지나치지 않기로 전부 답장을 해주기로 했다. 수년전의 ornus와 나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너무너무 안타까운 게, 한국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이 그 열정과 실력을 펼칠 좋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드물다 보니, 치킨집 운운하며 이들이 가진 능력이 너무 쉽게 비하되거나 자학적인 표현들을 서슴지 않는데, 미국에서 이들의 대우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내고향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이 맞아서 해외취업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은 논외로 치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미국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회가 많은 곳이다. 우리가 어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때 미국 IT대기업에서 어떤 급여를 받고 일하는지 한국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용정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돈이 가장 중요하지 뭐가 중요한지;;) 연봉과 주식 정보를 대충 오픈했다. 참고하시라고. 근데 이게 패착이었는지 엄청나게 꼬인 리플들을 많이 받았다. 그곳이 나이가 좀 있는 여성들도 많은 곳이었는데, 심은하 언니왈, ‘남편 연봉 노출하는 게 여자들 심정을 제일 빨리 긁는 방법’이라며..;;;;

연봉도 주식도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받고 연봉까지 노출하고 싶진 않지만, 주식은 스타트업 창립멤버가 아닌 일반 한국인 샐러리맨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라 설명하자면, 미국의 IT기업의 경우, 입사하면서 사이닝보너스(입사 서류에 사인해준 걸 감사하는 보너스)와 함께  주식을 꽤 받을 수 있다. 한국돈으로 천 단위 아니고 억 단위로;; (물론 사람마다 더 받는 사람도 많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 주식은 매년 보너스 개념으로 계속 더 주고 이게 연봉보다 더 크다. 만에 하나 주식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는 개수를 더 늘려줘서 차액을 보상해주는데, 아마존은 그런 경우가 없었다-.- 대기업 중에선 구글, 마소 같은 기업이 이미 충분히 성장해서 주식 오르는 속도가 둔하다면, 아마존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금도 계속. 우리도 입사할 때 받은 주식과 그 이후 추가된 주식을 포함해 처음과 비교해보면 몇 배 가치를 넘어섰다. (물론 스타트업 성공한 주변 지인들이 많기 때문에 우린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민다;;) 이게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정보를 한국인들도 알았으면, 그래서 자신들이 이 정도 대우를 받고 일할 만한 사람들이란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거다. 그리고 연금 부분. 미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국민연금 비슷한 게 있는데, 취직 후 이 연금만 꾸준히 잘 부어도(보통 이 연금은 연금의 반은 회사가 내 주고 반은 내가 내면서 주식에 투자함) 은퇴 후에 월 천 가까이 받고 사는 사람들도 종종 봤고 충분한 생활비가 나온다. 우리 주변은 그렇다. 그리고 개발자로서 은퇴때까지 잘만 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ornus야 워낙 일의 특성상 출장이 있어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괴로운 거지, 근무시간은 절대로 초과근무하지 않는다. 출퇴근시간도 자유롭고, 출장 가지 않는 날에 ornus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거의 재택근무를 하고, 업무 목표도 보스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조절하는 거라서, 한국 대기업에서 일해 본 ornus는 지금 회사의 분위기를 매우 맘에 들어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은 미국에서 IT분야 똑똑한 인재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직장은 아니다. 최상위 0.1퍼센트의 사람들은 스타트업에 매달려서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꿈을 꾸고 있고 실제로 주변에 그런 지인들도 많다. 미국에 있는 많은 IT대기업과 튼튼한 중소기업들에서는 저 정도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한국에서 야근과 특근, 잔업, 술자리 회식에 시달리며 박봉으로 일하다가 40이면 은퇴를 걱정해야 하는 분위기가 나는 너무 화가 난다. 컴공 공부. 내가 봤을 땐 너무나 어려운 공부이고 의사, 변호사 못지 않게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개나 소나 다 하는 그 코딩 말고, 정말로 튼튼한 자료구조를 구현하는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가진 전문성은 일반인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는 게 합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타까운 건 급여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정해지므로, 미국에서 지금 IT분야가 가장 큰 돈을 벌어들이는 분야라서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냉혹한 자본의 논리다. 다른 전문분야를 갖춘 사람들도 많은데 자본의 논리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으니까.ㅠ.ㅠ 미국에서도 인문대 출신은 하버드나 예일을 나와도 취직 쉽지않다.. 이게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 이상 비판해볼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은 이 글의 핵심이 아니라 차치하고.

몇 군데 커뮤니티에서 꼬인 리플을 다는 사람에 대해서 기분이 안좋던 차에 마침 ornus가 친한 대학원 선배형(uks님)하고 전화할 일이 있어서 하소연을 했더니, 공감을 해주었다. 특히 그 서울대 운운한 사람에 대해서는ㅋㅋㅋ 그럼에도 너희들의 선의를 이해하고 그 정보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전달될 거라며. 이렇게 사람이 수다를 떨어야 기분이 풀어진다-.-;;;  uks님의 경우도 가족과 부모님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 뿐 미국에 와서 일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맞다. 가족, 부모님, 또는 자신들의 심적인 안정이나 가치관에 따라 외국생활을 원치 않는 이들도 많을테니. 다만, 우리처럼 외국에서 기회를 찾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최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공유하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서로에게 끌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특히나 이런 공동체 정신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사람들은? 엄청난 공동체 정신에 입각해 자신들끼리 끌어주고 이 과정에서 짜증나는 일을 마다않는다. 이 공동체 정신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편협한 것이 아니어서, ornus의 경우도 예전에 삼성 출장 때문에 미국에서 인도인 동료들을 많이 만났는데 ornus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이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세세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쪽 분야를 전공한 분들 중에 실력 있고 열정 있고 내고향 한국을 떠나서 사는 삶도 괜찮은 사람들이라면, 미국에 와서 일하는 게.. 나쁜 선택 아니니까 많이들 지원하세요.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10-16 at 오후 2:03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서로 남 잘되는 꼴을 못봐서 해외에 오면 서로 도와주다가도 등쳐먹는 경우 많다는 소문을 지겹게도 들었는데. 중국인 혹은 심지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조선족들도 타지생활하면 서로 돕고 서로 잘되자 주의인데 그래서 다들 잘되는데, 한인촌에선 서로 남 안되는 꼴만 보려한다고..ㅠ
    무엇이 우리 민족을 이리도 서로 경계하고 물어뜯고 의심하게 만든걸까. 왜 유독 한국사람들이 서로 이러는걸까. 아마 그래서 너의 글도 의심하는 사람들 있었던듯.

    • wisepaper said on 2015-10-16 at 오후 2:08

      그러게요 왜그럴까요ㅠ.ㅠ 워낙 작은 땅덩어리에서 자원 없이 부딪치며 살다보니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해서 그런 걸까요. 언니말처럼 한인들끼리 그런 얘기 너무 많이 들려오지요;; 그래도 전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정말 선의를 가지고 대해주는 한인만 만났어요. 저 역시 그러려고 노력할 거구요.

      인도사람들은 서로 끌어줘서 벌써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중국 사람들도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인들도 이렇게 서로 정보 공유하고 서로 끌어주고 그래야 하는데…

  2. 엠제이 said on 2015-10-16 at 오후 4:45

    오늘도 하루 마무리하기 전에 들어왔어요. 기분 상하셨을텐데도 끝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주시는군요. 언니도 형부님(이렇게 불러도 돼죠…?^^)도 정말 마음이 넓고 따뜻하신거 같아요. 안 그래도 오늘 친구랑 미국에서의 한인사회에 대해 한참 이야기 했어요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야 한국에 있는 사람들일수도 있었을테지만) 타지에 나와있는 한국인들이 서로 서로 이끌어주면 참 좋을텐데 오히려 반대라 너무 안타깝다고 말이에요. 언니 도움 받으신 분들이 똑같이 혹은 더 많이 남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면 참 좋겠어요 🙂 저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요.

    • wisepaper said on 2015-10-16 at 오후 7:49

      어..ㅎㅎㅎㅎ 형부라고 불러. 우리 애들한테도 널 이모라고 부르라고 할테니까.. 그래. 우리라도 서로 끌어주도록 노력하자. 너도 분명 지금도 한국인을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일 거고 앞으로 취직하게 되면 더욱더 그런 위치에 서게 될 거야. 화이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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