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 나만의 아침, 내인생의 황금기

우리집에서 세 블럭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동네 묘지. 봄엔 튤립이 색색으로 피고 여름엔 장미가 피는 이 곳. 내가 우리 동네에서 젤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아침 8시에 열음이 학교 데려다주고 은율인 카시트에 태우고 여기 앉아서 음악 들으며 이 생각 저 생각 하곤 했는데, 이제 은율이마저 프리스쿨에 들어가서 완벽히 나 혼자, 혼자 몸으로 아침마다  이 묘지에 들어선다. 묘지 안에 좁은 도로가 있어서 천천히 차를 몰고 묘지를 몇 바퀴 돈다.

지나온 시간들. 자잘한 고충 속에서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지만, 굳이 꼽자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인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은율이마저 프리스쿨에 들어간 나만의 고요한 아침 시간. 많은 것들이 ornus 덕이기 때문에 고마워한다. 아니지.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고맙단 말은 내가 싫어하는 말. 사랑한다 해야지.

행복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마음을 안고 묘지에 들어서면, 이 생을 마감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난 이들. 그들을 사랑했던 남겨진 사람들의 절절한 고백이 적힌 묘비나 묘비 옆에 놓인 편지, 선물, 꽃다발을 보게 된다. 이생은 잠깐일텐데. 사는 동안 좋아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고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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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도 가을이 충분히 내려 앉았네. 가을이 오면서 우기가 시작된 시애틀. 아침에 촉촉히 비가 왔다가도 오후면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보여주곤 하기 때문에 시애틀의 우기마저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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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10-21 at 오전 11:03

    묘지인데도 무섭지 않고 아름답네. 사색의 장소.
    근데 여기서 난 엉뚱한 궁금증 발생..은율이는 카시트에서 뭘해?? 가만히 앉아있어??? ㅋㅋㅋㅋㅋ

    • wisepaper said on 2015-10-21 at 오후 12:43

      네.. 은율이는 풍경 보며 가만히 앉아 있어요. ㅠ.ㅠ 은율이가 좀 신기한 애긴 해요. 데리고 다녀도 힘들지가 않거든요..몇 시간을 차 타고 다닐 때도 혼자 중얼중얼 이야기 지어내고 그러면서 지루해하지 않고 잘 있어요 거의 항상… 열음이라면 내려서 뛰어놀려고 하거나 스케일이 큰 걸 원하기 때문에 얌전히 있질 않죠 ㅎㅎ 유라는 어느 과인지…

      • 심은하 said on 2015-10-21 at 오후 6:13

        유라는 종잡을순 없지만 은율이처럼 장시간동안 앉아서 사색하는건 가능해ㅠㅠ 난 이거 디게 맘에 안든다는ㅋㅋㅋㅋㅋ 웃지만 맘에 안듦ㅋ 그래도 냅두지만ㅋ

        • wisepaper said on 2015-10-21 at 오후 6:26

          장시간 사색하는 게 왜 맘에 안들어요? 혹시 너무 활동적이지 않아서요? 놀이터 가면 또 거기선 활동적으로 놀지 않나요?

          • 심은하 said on 2015-10-22 at 오전 5:30

            놀이터 가면 주변의 나무숲에만 자꾸 가려해. 미끄럼틀이나 그네 등 나름 스릴있는 놀이기구 안좋아하심 ㅠ
            나 닮아서 겁많고 낯 심하게 가리면 어떡하나 살짝 걱정중ㅋ

  2. wisepaper said on 2015-10-22 at 오전 9:02

    아 그렇구나.. 그쵸.. 애가 좀 더 스릴있고 스케일 있는 것도 막 도전하고 모험하고 그랬으면 좋겠긴 하죠.. 근데 다 장단점이 있어요..ㅠ.ㅠ 우리집 비글새끼들은 높은 미끄럼틀 보면 뛰어내리려고 합니다;;;; 근데 애들마다 달라서 사색하고 차분하고 그런 애들은 또 그런 분야에 뛰어날 테니까.. 잘하는 걸로 키워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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