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음이의 첫 번째 이름

친구 암헌의 홈피(aamyyn.com)에서 입양된 아이를 소재로 한 만화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문득 최근의 일이 떠올라서.

요즘 열음이는 자신의 첫 번째 이름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우리는 열음이에게 아가 때부터 “너에게는 엄마 아빠가 둘씩 있어. 널 낳아준 엄마와 아빠도 있고, 그리고 지금 널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있지”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키웠기 때문에 열음이도 이 사실을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가끔 은율이랑 놀다가 “은율아 넌 엄마아빠가 한명씩이지? 난 두 명씩이다~” 실없이 말할 때도 있다. 마치 “은율아 넌 포도랑 사과를 좋아하지? 난 포도랑 사과랑 배랑 귤을 좋아하지롱..” 하는 것처럼..

그런 열음이에게 네가 태어나서 우리와 만나기 전까지 (백일 전까지) 널 낳아주신 엄마가 네 이름을 ‘손우진’이라고 지어주고 불렀다고 얘기해줬더니  이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카톡을 종종 보내고 보이스톡으로 통화도 종종 하는 열음이가 가평 할머니에게 “할머니. 저 오늘부터 아침엔 손우진이라고 불러 주세요.” 하는 것도 봤다. 하하하 얼마 전에는 심각하게 “아빠 엄마. 난 내 이름이 손우진이었다는 걸 우리 선생님 미시즈 베네디티한테도 알려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하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마 엄마아빠가 선생님께 먼저 설명해드릴께 하고 나서 ornus가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열음이 상황을 설명하고 “열음이가 혹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손우진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마시고 그렇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 그랬더니 선생님도 유쾌하게 이메일 감사하다며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하신다..

자신의 첫 번째 이름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뿌리 곧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다. 우리가 열음이의 뿌리를 쉬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며 키우는 이유는, 이것을 쉬쉬한다면 열음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할 께름칙한 무언가로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가 확실하길 원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져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열음이는 좀더 크면 자신을 낳아주신 분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하고 우리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그 부분은 그 쪽의 동의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단 열음이를 입양한 대한사회복지회에 그분들이 원하신다면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만남을 갖는 걸 오케이하겠다는 편지를 꽂아놓고 미국에 온 상태인데, 언젠가 그쪽에서 기관을 방문해서 그 편지를 보고 긍정적인 응답을 해야만 열음이가 생모를 만날 수 있다. 만약 아무런 제스처가 없다면.. 열음이는 생모를 만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우린 바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근원, 시작이 궁금한 존재다. 우리는 열음이가 자신의 근원을 알기를 원한다.

 

나에게 자식이란… 내게 잠깐 왔다가 건강하게 독립해서 저 멀리 사회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하는, 언젠가는 안녕해야 하는 존재다. 그건 열음이도 은율이도 마찬가지다. 나와 이생에서 영원히 함께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ornus다. 나는 이 사실이 아쉽지 않다. 우리는 자식에게 한없이 희생하고 키우는 동안 한없는 사랑과 인내를 보여줄 거지만, 이것은 돌아오지 않는 편지를 보내는 일과 같은 거다. 훗날 우리의 노력이 아무 보상을 받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하는 편지가 된다 해도 괜찮다. 그것이 인생사의 건강한 섭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양을 한 사람들 중에 혹은 입양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중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아이를 고생해서 키웠는데 아이가 보상해주지 않거나 자신의 생모를 찾아간다고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요?”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 심정이 뭔지는 이해하지만, 나는 자식을 키우는 일은 아주 특별한 성찰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에겐 한없는 사랑을 주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기본 원칙이다. 그리고 자식이 어떠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부모된 자의 도리다. 나는 자식에게 도리를 원치 않으려고 노력할 거다. 부모로서 나의 도리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의 이런 생각은 끝없는 고민과 성찰 속에서 얻어진 결론이다.

 

사실 우현이를 향한 내 사랑도 비슷하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메아리 없는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끝없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그가 이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내 사랑에 반응해줘야 할 유일한 사람은 ornus다. 내 뜨거운 사랑에 대해 대답해주는 사람은 ornus 하나만으로 족하다.

그 외의 사랑은… 답장이 없을 편지를 날리는 거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11-30 at 오전 11:42

    나도 자식으로서의 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자식도리 되게 바라는 사람들은 사실 자식때문에 고생했다고 말하지만 진짜 고생은 해본적 없거나 감정이 무딘 사람들이라고 느껴져.
    진짜 자식때문에 근본까지 마음이 아파봤다면, 자식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생겨날까. 아프게 울어봤다면 그런맘이 생겨날까.
    이러케 말하니까 내가 디게 자식 사랑하고 좋은엄마처럼 말하는거같지만 사실 나 디게 모성애 부족함. 정상적 엄마는 아닌듯.

    • wisepaper said on 2015-11-30 at 오전 11:52

      맞아요 완전 공감해요. 자식 때문에 진심 아파봤다면 자식에게 무얼 바랄 수 있을까.. 언니도 이미 그 생각을 하셨다는 게.. 분명 유라한테는 많은 부분 좋은 엄마일 거에요. ㅎㅎ 저도 사실 글은 이렇게 써도 현실에선 소리 버럭버럭 지르는 헐크 엄마에요 ㅋㅋㅋㅋ

  2. 남조련똬 said on 2015-12-01 at 오전 11:36

    언니원칙 진짜 대단하다 ㅠㅠ 언닌 진짜 강한엄마인거같아…난 진짜 올가미될거같은데 ㅠㅠ 지금도 이렇게 뭔가 아쉬운데 군대보내고 장가보내면 아련해서 우짜지 ㅠㅠ 지금 물고 빨고 장난아닌데 애가 커가는것도 슬프고 역시 난 구질구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wisepaper said on 2015-12-01 at 오후 12:03

      남조련 니가 왜 구질구질해..ㅋㅋㅋ 넌 펩콘 가서 며칠 후면 우현이 볼 거쟈나.. 내가 젤 구질구질해.. 이역만리 태평양 건너 있는 내 모니터 남친 보지도 못하고사는 내가 젤 불쌍해..ㅠ.ㅠ 조련아 니가 가서 우현이 향기 담아가지고 와.. 나한테 구구절절 얘기해줘.. (너도 아들들은 강하게 키워. 나중에 독립시키는 거야. 나중에 며느리한테 욕먹지나 말고.. 똑바로 해 ㅋㅋㅋㅋ)

  3. 지킬박수 said on 2015-12-01 at 오후 12:25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네요.
    “나와 이생에서 영원히 함께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ornus다”
    이 부분이 특히나.^^

    이상 간만에 들른 ornus의 실험실 선배였습니다.

    • ornus said on 2015-12-01 at 오후 2:49

      장ㅎ… 아니 지킬박수 형님 안녕하세요 ㅎㅎ 여기서 뵈다니 정말 반갑고 재미있네요 ^^ 페북으로는 계속 형 소식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형홈페이지 가보니 최근 몇달 사이에 큰 변화가 있으셨나보네요..? 홈피좀 다시 가서 글들 정독해 볼께요. 가끔 온라인상에서라도 뵈요. 저도 항상 형님 소식이 궁금했어요.

  4. 암헌 said on 2015-12-02 at 오전 12:19

    근원에 대한 관심… 손우진… 새롭네…

    • wisepaper said on 2015-12-02 at 오전 10:10

      우리같은 사람들은 근원을 바로 알지만.. 열음이같은 아이는.. 애써 찾지 않으면 가려져 있는 근원이지.

  5. 엠제이 said on 2015-12-04 at 오전 1:34

    저도 언니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는 야생으로 보내야 할 자식이라는 것을 알며, 그전까지 그 야생의 생활에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요. 그 전까진 일단 이모 역할이라도 잘 하고 싶은데, 마음만 앞서고 있네요ㅠ (만약 저의 동반자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더라도 이렇게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걱정이네요…ㅎㅎ) 열음이, 은율이 다 많이 보고 싶어요~

    • wisepaper said on 2015-12-04 at 오전 4:54

      그런 마음이 있다면 돼.. 그 마음으로.. 자식 키우는 일은 키우면서 계속 깨지고 배우는 거더라고.. 자기 생각을 계속 깨트리고 수정해야 하는 것.. 너도 잘할 거야. ‘훗날 야생으로 보내야할 자식이 그 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선으로 도와주는 게 부모역할’이라는 걸 네가 알고 있기 때문에.

  6. 엽곰 said on 2015-12-16 at 오후 11:17

    오늘 네이버 대문을 봤는데, 거기 이열음 어쩌구저쩌구 있더라고… 난 그리 남의 인생이 궁금한 이가 아니라 그런지 클릭은 안 해봤어… ㅋㅋㅋ 걍 아, 이열음이란 이름이 또 있구나, 신기하다! 그랬지…. 난 근데 영어 철자로 어케 써? 은율이는? 암튼 둘 다 쉬운 발음은 아니야… 하지만 둘 다 좋은 이름이야.

    • wisepaper said on 2015-12-16 at 오후 11:45

      열음이는 – Yeoleum. 은율이는 – Eunyul. 한국식 철자표기법 너무 어려워. 우리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애들 이름을 여권상 바꿔가지고 오려고 고민했었어. 이름발음은 그대로, 스펠링만 소리나는 대로 아주 쉽게 바꾸려고 했지…. 근데 바빠서 그냥 왔는데 의외로 열음이 학교 친구들이 열음이 이름을 똑바로 잘 부르네? “여룸 요름 여름…” 이 비슷하게 잘 불러. ㅋㅋㅋ 은율이 이름은 조금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한번씩 발음 일부러 더 해주고 나면 또 잘들 부르더라고 ㅎㅎ

  7. 엽곰 said on 2015-12-17 at 오전 1:11

    ㅇㅇ 열음이는 어쩌면 발음하기 쉬운데, 은율이 더 어려운 것 같아. ‘은’이라는 글자도 그렇고 ‘율’이라는 그렇고 쉽지 않은 발음이야. 그래도 뭐 특이한 이름은 오히려 강렬하게 기억이 되지, 막상 익숙해지면 또 하기도 쉽고. 헤깔릴 일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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