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퍼왔다는 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이 내가 가는 다음카페에 올라왔길래 가져왔다.
그림 파일로 올렸더니 안 보인다는 분이 계셔서 텍스트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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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이 씨발 것의 돈

메일로 날아온 휴대전화 요금 명세서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군 정지로 깎인 돈이라곤 만 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 달은 요금이 평소보다 만 원은 더 나왔다. 주제넘게 연말연시 분위기를 좀 내본답시고 세일하는 게임 몇 개를 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일 년 전에 폰팔이 아저씨의 세치혀에 홀렸던 죄로 적지 않은 기기 할부금이 남아 있는 것도 보였다. 씨발.

머리는 재빠르게 자동이체 계좌의 잔고를 떠올렸다. 오천 원 쯤 모자랐던 것 같다. 오천 원을 나랏님께서 하사하옵시는 개좆만한 월급에서 어떻게 변통한다고 해도 글쎄 내가 거렁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참 남았지만서도 생각의 다음 단계는 전역 이후의 생활에 이르렀다. 보자, 통신비가 대충 이만큼에, 식비하고 교통비. 방값이랑 뭐를 좀 더하면 다달이 백만 원은 우습게 차오를 테다. 방이라 함은 물론 보증금 없고 몸만 누일 수 있는 고시촌 쪽방이다. 휴학을 더 하고 돈을 벌까. 그만큼 돈이 모일 리가 없다. 돈을 모은다는 것은 이미 돈푼 있는 사람들에게나 유의미한 표현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는대봐야 한 학기에 고작 백오십이다. 뭐 다른 좋은 장학금 같은 게 있으려나. 있다고 내가 선정이 되기나 할까. 아니다. 사람이 벌 생각을 해야지. 과외도 좀 두어 개 하고 다른 일도 좀 하려면, 이런 씨부럴, 과제는 언제 하고 시험 공부는 또 언제 하고 친구들은 언제 만난담.

집에다 말하면 용돈이 튀어나오는 선후임들이 부럽다. 나의 가족이라고 있는 무리는 물심양면으로 나에게 가정의 기능을 한 적이 없다. 군대만 갔다 오면 기필코 문짝을 박차고 나가서 살리라 벼르는 차에, 이 개 같은 돈 새끼가 발목을 턱 붙잡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늪과도 같은 열등감의 수렁에 더욱 빠져들었다. 하루 끼니를 건사치 못하는 내 눈에 비친 이 학교 사람들의 삶은 차라리 비현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삶의 다른 가능성이었다. 나의 생은 어째서 이토록 비참하고 끔찍한 가능성을 택하게 되었나. 참기 힘든 분노와 허망함이 급류처럼 날뛰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안에서부터 찢어발기고 있었다.

방학이면 유럽으로 뜨는 동기들. 과외로 번 돈은 저축을 하고, 생활비는 집에서 받아 쓴다던 그 친구. 새 계절에 맞추어 새 옷을 사는 이들. 나도 옷이랑 신발이랑 가방 바꾸고 싶다. 몇 개 없는 거 다 낡고 헤졌는데. 군인이란 핑계로 미루고 있지만 사실은 돈인 것이다.

다 커서야 알게 된 것이,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생각을 좁은 데 가두게 되는가 보다. 그게 썩 나쁜지는 모르겠다. 진리를 논하고 이성을 가꾼들 굶어 뒤진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그걸로 벌어먹는 일을 꿈이라고 갖고 있지만, 실은 나에게는 인간다운 삶이면 충분하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남들 다 하는 만큼만 해보고 싶다. 그 정도면 좋다. 그렇게 살아볼 수가 있다면 나는 어떠한 철학도 윤리도 죽은 글자로 여길 수가 있을 것 같다.

허나 제일 쓰라린 것은 나의 못 먹고 못 입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이다. 밥 한 끼 사주고 싶고 술값도 턱턱 내보고 싶은 마음이랴 가난하다고 없을 리가 없다. 보고 싶은 속내를 감추며 약속을 미루고 얼버무리는 날에 나는 괴로워하였다.

질척한 고민과 밭은 한숨 따위는 밥 빌어먹는 데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런 것들은 내다버려도 좋으니 돈이 갖고 싶다. 돈이란 걸 몽땅 가져버려서 돈을 전부 죽이고 싶다. 내 지옥 같은 청춘의 보상은 그밖에 있을 수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돈다발의 목덜미를 붙들고서 나는 세상의 모든 물욕을 실컷 경멸할 것이다. 언제나 성가셨던 탐욕과 질투의 뺨을 돈으로 후려치면서 후련한 작별을 고할 것이다.

그러나 씨발. 어찌된 게 그 돈이란 것을 도무지 손에 쥐어볼 수가 없으니. 그 씨발 것의 돈이 없으니, 나에겐 오직 나를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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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가막힌 건 이 글에서 일제시대 하층민의 삶을 묘사하는 현진건의 느낌이 난다는 거다. 이 사람이 글발이 있어 현진건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것까지야 괜찮은데 그 시대 속 비루했던 이들의 아픔이 2016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도 똑같다는 게 소름끼치는 거다. 절대적인 부는 그 때보다 증가했을지 몰라도 그 때 그 현진건의 글 속에서 느껴지던 기운을 현대를 살아가는 이 젊은 청년에게서도 느껴지게 하는 시대라니 놀랍다.

이 젊은이들을 어쩌면 좋은가. 나와 ornus도 물론 저런 시절을 지나왔다. 어디서 용돈이 나오지도 않고 어디서 학비가 나오지도 않고 어디서 방 한 칸이라도 대줄 부모도 없던 시절. ornus는 과외를 해서 30만원으로 생활비를 했고 몸을 누일 방도 구하기 힘들어 언덕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많은 집들이 있는데 왜 우리 몸 누일 곳은 없냐며 쓴웃음 짓던 시절. 그래도 우린 사랑이라는 마약을 맞아선지 버틸만 했다. 둘이 같이 서울 거리를 쏘다니면 마냥 좋았고 오군이 방이 없으면 내가 내 방을 내줬고 우리 사이는 한치의 의심도 회의도 끼어들지 않았던 완벽한 결합이었으니까. 근데 내가 그랬다 해서 이 젊은이들의 한탄을 조금도 욕하고 싶지 않다. 난 이들의 편이다. 우리만 해도 벌써 십 몇 년이 지난 일들이다. 2016년 이 화려한 시대를 우리와 같은 형편으로 지나가야 하는 저 젊은이가 곁의 친구들의 세상을 보며 느껴야 하는 절망감과 무력감이라니. 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거다.

저 친구가 어떤 분야를 전공했는진 모르겠지만 공대 쪽 아니면 사실 별로 미래가 안 보이고. 공대라서 다행이 어디 대기업이라도 들어가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나아질까.졸업 후 한국에서 어디 대기업이라도 들어가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그 때까지 쌓아뒀던 학자금 대출금 갚느라 몇 년은 훌쩍 가겠지. 그거 청산하고 나면 물려받은 거 없이 서울에서 전세 한 칸 마련하기까지도 10여년이 걸릴테고 대출금 갚으며 전세금 올려주다가 가정을 일구고 나이 들고 그러다  또 수년이 가면 대출금을 얹어서 겨우 30평 아파트를 하나 사겠지. 그리고 나면 점점 잔병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지는 부모님 병원비와 노후 생활비를 대느라 돈이 줄줄 세겠지. 숨이 막혀 온다.

 

이 계산 저 친구라고 안 해볼까. 해보고 답이 안 나오겠지. 그리하여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시험, 외무 고시 행정 고시 등등에 뛰어들겠지. 그래서요. 그런 거 합격해서 월급 몇 백 받으면 뭐가 나아지는데.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든 이 정도 직업들로 그나마 먹고살만한 분들은 뒤에 부자까진 아니더라도 멀쩡한 부모가 있을 때 얘기지. 뒤에 변변찮은 식솔들 줄줄이 있는 상황에서 월급 몇 백 받아 언제 집 사고 언제 부모님 병원비 대고 부모님 노후도 책임져야 할 형편인 거 뻔히 보이는데 언제 저 남루한 삶에 빛이 들까. 숨이 막히네 진짜. 젊은이들에겐 지금이 가장 비참한 시대인 거 같다.

이 친구가 하필 또 감수성이 예민하고 똑똑해서 더 가슴이 아프다.

 

 

 

Comments on this post

  1. 익명 said on 2016-01-24 at 오전 11:40

    원글은 안보이고 니글만 보이는데..아 중국도 지금 춥고 인터넷도 잘 안되네.
    나는 부모님이 짐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나만해도 부모님의 큰 도움을 받고 시작한 부부들 보면 차이가 느껴지는데..내가 참 순진했던게, 나는 결혼하면 부모님 특히 시부모님이 집값 보태주시는게 당연하다는걸 결혼 후 한참 지나서 맘들 카페에서 알게됐어.ㅋㅋ그리고 우리 시어머니가 시누 결혼할때 사돈댁에서 집 빨리 안해주신다고 흉보셨을때 더 잘 알게되었어.(아근데 울 시어머니는 그걸 당연시 여기시면서 왜 우리한테 안해주셨지? 받고싶진 않지만 궁금하긴하네..뭐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으셨나. 이렇게 생각하는게 속편하지. 근데 해외여행은 잘 다니시던데ㅋㅋㅋㅋㅋ 아물론 내 기본적 생각은 우리한테 투자하시는거보단 부모님들 자신을 위해서 쓰셨으면 하지만..ㅋㅋ)
    암튼..올해 나이 한살 더 먹으니 생각 더 많아진다. 저런거 다 부질없는..아..왜 태어났나. 다들 고생하려고 태어났나. 일부 제외하고..
    이러다 죽는구나..뭐 이런생각에 허무하기도하고.

  2. wisepaper said on 2016-01-24 at 오전 11:52

    저랑 오군은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한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제 성격 특성상 시부모님한테 조금의 부채라도 있으면 못견딜 성격이라서요. 저한테 젤 중요한 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니까.. 근데 그건 우리가 운도 좋았고 노력도 했지만 뭐 이정도에서도 감사하고 사니까 그런 거고. 지금 젊은이들한테는 그런말 못하겠어요. 그 고생길이 너무 뻔히 보이니까.. 아무 도움도 없이 시작한 젊은이들이 어찌어찌 몸부림쳐도 벗어나기 힘들 서울에서의 삶의 수준이 딱 보이니까요..ㅠ.ㅠ

    근데 이 글은 진짜 원글이 진짜 죽여요. 글을 또 너무 현진건처럼 잘써서 가슴이 더 찢어지는.. 똑똑한 젊은이가 저렇게 절망 짙은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시릴만큼.

  3. wisepaper said on 2016-01-24 at 오후 12:07

    텍스트로 바꿔서 다시 올렸어요~~

    • 익명 said on 2016-01-24 at 오후 12:51

      어 지금 봤어. 남들이 하는것만 하고 살수 있다면 윤리도 철학도 죽은 글자로 여길수 있다는 문장에, 이게 뭔뜻인가 싶다가도 턱 막히네. 그래도 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밥이라도 사주고싶은 맘은 남아있구나.
      그리고 나도 조금의 부채도 못 견디는 성격이야. 시어머니가 선물 고르라고 해도 안 고를 정도로. ㅋㅋ

      • wisepaper said on 2016-01-24 at 오후 1:03

        그쵸 저도 그 부분이 가슴이 턱 막히더라구요. “돈이란 걸 몽땅 가져버려서 돈을 전부 죽이고 싶다. 내 지옥 같은 청춘의 보상은 그밖에 있을 수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돈다발의 목덜미를 붙들고서 나는 세상의 모든 물욕을 실컷 경멸할 것이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으니 분명 뭐라도 하긴 할텐데. 똑똑하게 타고나서 더 고달프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니까요. 언니나 나같이 받는 거 부담스러운 사람은 그냥 좀 모자라도 이렇게 사는 게 더 자유롭다 싶어요. 그래도 전 먹고 살만은 하니까 망설임 없이 자유를 선택하는 건데 정말 가난에 허덕이는 형편의 사람, 그리고 더 나아질 미래도 없는 사람에겐 자유도 사치일까요..ㅠ.ㅠ

        • 익명 said on 2016-01-24 at 오후 2:17

          그렇지..정말 허덕이는 사람들은 자유조차 사치인가..근데 이런글 볼수록 너희부부 대단하다ㅠ

          • wisepaper said on 2016-01-24 at 오후 2:22

            근데 그 때는 저희가 어디에 서있는지 가난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지금 다시 가라고 하면 상대적 가난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정말 괴로울듯. 근데 그 때는 정말 잘 몰랐고 사랑도 있었고.. 좀 힘들때도 있긴 했지만 행복했던 날들이 더 많았는데.. 지금 젊은 친구들은 세상을 이미 너무 잘 알아서 우리처럼 살기 힘들 거에요ㅠ.ㅠ

  4. 익명 said on 2016-01-24 at 오후 5:33

    젊음과 풋풋함과 사랑이 가난을 이긴 케이스군.

  5. 엽곰 said on 2016-01-25 at 오후 9:10

    일제시대 하층민, 한 표요!!!! 그렇다, 일제시대 일본에 유린 당하고 매국노에 수탈 당하고 같은 하층민끼리 물고 뜯었던 때, 그 모습이 똑같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부모님께 꼬박꼬박 생활비 30만원을 받았고 어쩌다 과외나 소소한 알바를 하면 데이트 비용으로 쓸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을 보냈다. 사회 생활이란답시고 비정규직으로 이 일 저 일 할 때도 절대 월급의 액수가 남들 보다 적지는 않았기에 그럭저럭 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그래서 나는 절대 빈곤은 모르며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마 내 순수를 꽤 오랫동안 유지시켜 준 부모님 덕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는데. 국민학교를 마칠 때 까지 단칸방에서 욕실이라곤 들은 적도 없이, 연탄 보일러로 따뜻한 물 데워 부엌에서 다라이에 머리 감던 덕선이네 처럼, 네 식구가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살았어도, 난 그게 가난인 줄 모르고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지. 그러다 처음 만난 부잣집 아이를 우리집에 데려 온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니네 집엔 소파가 없니? 거실은 없니? 넌 책상 없니?’ 뭐 이런 질문을 하면서 내가 차려준 (아까웠지만 내놓았던) 과자를 먹고 다녀간 이후에도 ‘가난’이란 것, ‘없다’는 것, ‘비교’라는 것을 잘 몰랐다. 옆에서 지켜본 청춘의 이모가 ‘너 저 아이랑 친하니?’했을 때 어렴풋이 내가 뭔가 잘못했나부다 했지. 그래도 어찌된 것이 대학교 다닐 때까지 나는 가난한 적이 있었다고 생각을 안 했어. 한번도 뭐가 없어서 아쉽다 어렵다 한 적이 없었거든. 우선 내가 뭘 그리 떼쓴 적이 없었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있었을 때 부모님은 어떻게든 마련을 해주셨거든. 어릴 때 레고를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일 년을 조르면 크리스마스 무렵 장난감 가게에 가서 레고를 얻을 수 있었고, 책을 사야 한다고 하면 몇 천원을 얻어서 곧장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을 돌아보면, 그 때와 같은 가난 아닌 가난은 없는 것 같다. 말 배우기 시작할 때 부터 부모님의 직업과 아파트 평수, 자동차 브랜드를 비교하며 어울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를 제공하는 물려받은(을) 재산이 넉넉한 그들의 부모들. 일산화탄소가 아닌 돈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희망은 똥통에서도 찾기 어렵고. 당장 나만 하더라도 마이너스 통장(실은 통장도 없다만)을 못 벗어날걸 알기에 그냥 오늘 벌어 오늘 즐기자고 위로할 뿐. 아, 물론 오늘 즐길 수라도 있는 것은 오로지 ‘운’이라는 거.
    괜히 내 향수에 젖어 삼천포로 빠졌네…. 지금 나보다 조금 더 젊은이들은 이렇게 가난을 추억할 권리 조차 없는 것 같다. 그냥 가난은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만성우울일 뿐, 벗어나서 추억할 수 있는 어떤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무섭다. 이런 한국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지옥불에 들어가라 등떠미는 것 같아.

    • wisepaper said on 2016-01-26 at 오전 10:38

      그래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일산화탄소 위험에 늘상 노출돼 있던 어린시절을 살았어도 가난한 줄 조금도 몰랐다. 해 지도록 산에서 뛰놀고 밥 때 돼야만 집에 들어가는 시골에서 우리가 가난하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ornus랑 연애하며 대학 다닐 떄도 내가 무뎠는지 어쨌는지 우리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보면서 특별히 상대적 가난을 느꼈던 적이 없었어. 다들 착해서 그랬나. 난 왜 나보다 특별히 더 부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동기들 중에서도 선후배 중에서도 별로 못 본 거지? 우리 과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유독 인간답고 소탈했었던건가. 내가 사랑에 미쳐 있어서 눈에 뵈는 게 없었나. 아무튼 가난하여도 가난인 줄 모르고 그럭저럭 잘 살았다. 근데 지금 젊은이들이 느끼는 저 상대적인 가난으로 인한 무력감과 절망감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고 괴롭게 다가와서 더 숨이 막힌다.

      • 엽곰 said on 2016-01-26 at 오후 11:49

        아마 그럴거다, 너나 나나 사랑에 미쳐 있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고. 우리 둘 다 무언가를 계산기로 두드리는 것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도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동기들, 선후배들이 소탈했고 착한 편이었고, 설령 그들의 부유함이 드러났어도, 우리 둘다 아, 그래? 그렇구나~면 끝이었지, 비교하고 좌절하고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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