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전승되는 문화 자본
1.
요즘 열음이는 우리집이랑 아주 가까이 사는 같은 반 여자친구 다이애나네 집에 자주 간다. 우리집 거실창 너머 저 잔디밭이 다이애나네 마당이다. 학교 다녀와서 거실 창을 열고 앉아 있으면 낮은 울타리 저쪽 마당에서 다이애나가 “열음!!!! 같이 놀자!!” 하고 외치는거다.
그럼 열음이는 은율이까지 달고 함께 그 집으로 가서, 넒은 그 집 마당에서 뛰기도 하고 트램폴린도 하고 한참 놀다 들어온다.
며칠 전엔 내게 “엄마 나 오늘 다이애나한테 I have a crush on you라고 말했어” 헉….끙…ㅋㅋㅋ 그래서 다이애나가 뭐라고 했냐니깐 “아무말도 안 했다”고… 하하하하 고백을 했으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열음이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다이애나랑 신나게 놀고 있다. 다이애나한테는 남동생도 있어서 은율이도 즐겁다. 내가 보기에 다이애나는 열음이보다 훨씬 더 성숙해보이는데, 그럼에도 둘이 죽이 잘 맞는다. 가끔 우리집에도 데려오는데 열음이가 다이애나에게 베푸는 최고의 환대는 냉장고에서 우유와 코코아를 꺼내 코코아우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씽크대에 가루 흘리고 난리도 아닌데… 다이애나만 놀러오면 씽크대 앞에 의자를 놓고 둘이 코코아를 타 마시고 있다. ㅋㅋ
2.
열음이는 장기하의 열혈팬이다. 드라이브할 때도 거의 장기하 음악을 틀어달라고 애원한다. (안돼 엄마는 우현이형 꺼 들어야돼. 맨날 티격태격)
장기하 노래는 정말 가사까지 외울 정도로 목이 터지게 따라부른다. 장기하 음악 특유의 타령조가 열음이 취향인 거 같다. 열음이가 이대로 자라 만에 하나 훗날 음악을 하게 된다면 아마 다들 의아해할 거다. 시애틀에서 자란 청년이 왜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저런 음악을 하는 거지? 어리둥절…
“난 장기하 형 목소리라면 뭐든 좋아. 형이 무엇을 해도 난 영원히 응원할거야”……… 본 게 있고 들은 게 있어서 아들도 이런 순정 팬질을…-.-
자기는 한국 가면 무조건 장기하 형 콘서트에 갈 건데, 슬로건도 만들어 가야 한단다… 나 미치겠써… ㅋㅋ 내가 하는 걸 봐서 열음이한테 슬로건 같은 응원 문구를 만들어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거다.
가수를 좋아하면 콘서트에 가는 게 당연한 거고, 콘서트에 가면 슬로건도 만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하는 열음이를 보며,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부모로부터 전승받는 건 단지 경제적 자본이 아니라 문화 자본‘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부모로부터 받는 문화적 자산이란 게 이런 거다. 문화 자본은 전승되는 것이다. 끙-.-
우리집에서 전승되는 문화 자본은 열혈팬질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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