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엄마

주말 여행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ornus 퇴근할 때 책 두 권 사오라고 부탁해놨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평소엔 책을 별로 안 읽어서 그렇다-.-
지금 난 책읽는 모드가 아니다. 장사꾼 모드지~ 그래서 여행갈 때 읽는다.
이번에 주문한 책은

박혜란 씨가 쓴 <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박혜란씨가 머릿말에서 항변하듯 자기의 방임식 육아법은 아이들 자랄 때 주변으로부터 항상 욕을 먹던 방법이었는데
아이들이 전부 서울대에 갔다고 이 육아법에 관심이 쏠리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는 참 씁쓸한 사회다.

공부는 지들이 하고 싶어야 하는 거지 부모한테 묘안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젊은 엄마들에게 아이를 너무 열심히 키우지 말라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또 아이를 통해 본인이 성장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책을 썼단다.

다른 강남엄마들처럼 아이들을 끼고 사교육에 뭐에 이것저것 가르치지 않고
믿어주고 기다려줬더니 아이들이  다 잘 자라더란 얘기잖아? 뻔하네.
이 책 제목을 몇 년 전에 들었을 땐 그냥 심드렁했다.
그런데 자긴 먼지가 뭉치가 되어 돌아다녀도 청소도 안 하고,애들 숙제도 안 봐주고 도시락도 잘 안 싸주던
게으른 엄마였다는 부분이 발췌돼있는 걸 보고 이제서야 “아 나하고 통하는 부분이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난 참 게으른 엄마다.
나는 애를 옆에 끼고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도 아니고 글씨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숙제도 도와줄 생각이 없다.
내가 엄마로서 부지런한 부분은 “사랑을 듬뿍 주고 격려해주고 믿어주는” 부분이지, 나머지는 다 게으르다.
아이들이, 자기네가 알아서 자라나길 기다려주고 지들 방식대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레고를 종류별로 섞어 방바닥에 쫙~ 쏟아놓고 앉으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뭔가를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열음이가,

얼마전에 조금 단계가 높은 걸 사줬더니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고 엄마가 만들어달라고” 자꾸 칭얼거리길래
“열음이가 엄마보다 더 잘 해.. 엄마는 잘 못하거든? 근데 열음이는 저번에 비행기도 만들고 경주차도 혼자 만들었잖아! 혼자 해봐”
했더니
설명서를 보고 낑낑 거리며 얼마 후에 그럴듯한 변신 자동차를 완성한다. (나는 솔직히 저런 거 못만든다-.-)
난 진짜 귀찮고 게을러서 혼자 하라고 하는 거다;;;

애들이 지가 좋아서 공부를 열심히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다.
자기 좋아하는 일에 애정을 갖고 몰두할 수 있는 정도의 끈기를 갖기를 바랄 뿐이다.
성취감과 동기를 북돋아주는 것까진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머지는 아이들의 몫이고 나는 기다려주고 무엇을 하든 응원해주고 싶다.

가만 놔두면 어디서 노끈을 가져와 가구며 책장이며 식탁이며 종류별로 묶어놓고 재밌다 하는
기발한 아이들이다.
난 게으르고 지저분한 엄마라서 용인해주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남을 다치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부분에 대해서만 엄격하고 나머지는 다 하게 놔둔다.

육아법에 정답은 없지만
나는 내 방식을 믿는다.
자식들은 내 뜻대로 자라주지 않을 거다. 내 뜻보다 자기뜻이 우선인 아이들로 자라면 된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3-05-24 at 오후 6:45

    저사람이 이적 엄마 맞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울엄마랑 얘기하다가 이적 엄마가 아이를 자유방임으로 키워 서울대 보냈다고 울엄마한테 말했더니 울엄마 왈, “걔네들은 아무리 풀어줘도 타고난 두뇌가 좋아서 그랬겠지. ” 헐…그날 울엄마랑 좀 말다툼 했던 기억이..ㅋㅋㅋ
    근디..난 내자식이 명문대 가는거 바라거나 그러진 않지만, 왠지..명문대 보내는 것보단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게 더 힘든일이 되어버린 세상인 것 같네.
    ‘사랑을 듬뿍 주고 격려해주고 믿어주는’ 육아법이 가장 어렵고 힘은 육아인듯…특히나 나처럼 우울성향 강하고 성질 드럽고 네거티브한 엄마라면..
    나는 유라가 집안 물건을 부수건 어지럽히건 바닥에 누워 떼를 쓰건 아직은 너무 어리니 화가 안나는데, 안 먹는건 정말 화나서 주체를 못하겠더라구…소아과 의사들이 24개월 전에 잘 먹이는게 정말 중요하다고 겁주는거, 무시가 안되더라구…정말 남들이 상상을 못할정도로 심하게 안먹는 애라서…내가 화내면 더 안먹고 더 부정적 영향 끼칠거 잘 알면서도 못참고 화내고 후회하고…
    너무 많은 육아정보가 엄마와 아이를 망치는 거 맞아. 소아과 의사들이 주는 정보가 없었다면 나는 조금 더 느긋한 엄마이겠지 차라리…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안먹는 애인데…아..의사들 죽이고 싶다! 험한말 해서 미안..ㅋㅋ
    아..도를 닦아야해 도를…차라리 수녀가 더 쉬울 것 같아. ㅋㅋㅋ
    정보과잉과 극도로 상품화된 교육 환경, 육아환경 속에서 아이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잘 키우기란 정말..엄마가 마음을 보통 단단히 먹지 않은 이상 힘든듯…그런 면에서 이 글은 나를 반성하게 하네..^^

  2. wisepaper said on 2013-05-24 at 오후 7:14

    저 분 자녀들이 다 명문대에 간 건 저분이 잘 키워서 간 게 아니라 자식들이 갈 만하니까 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언니 엄마말씀처럼 ㅋㅋ) 타고난 기질은 부모가 바꿀 수 없거든요.

    언니 말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기르는 게 더 어려운 일이고 제 관심도 그거에요. 근데 저 책도 부분 발췌된 거 보니까 부모가 정서가 안정돼 있어야 아이 정서가 안정된다네요. 동의하구요. 부부 사이도 좋은 게 아니한테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고..

    안 먹는 건 저도 속상해했어요. 언니처럼. 근데 하나 키워보니까 그게 부모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어릴 때 안 먹어서 내뜻대로 안 된다고 집착하는 그 모습이 아이 컸을 때 공부 못할까봐 전전긍긍 집착하는 거랑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오자 확 놓아버렸어요. 놔두니까 자라면서 변하기도 하고 아이는 알아서 잘 커요. 열음이보다 은율이를 더 방임으로 키우는데, 첫째한테 애착을 더 많이 하니까요 보통.. 첫째를 둘째처럼 여유 갖고 키우는 게 더 좋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어요.

    글고 핵심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자식한테 집착 안하니까..

  3. 심은하 said on 2013-05-25 at 오전 1:08

    게으르다하니 갑자기 또 궁금해지는데…젖병떼기, 기저귀떼기 등등 다른 엄마들 보믄 부지런하고 일관성 있게 훈육하던데…사실 난 내가 할수있을지 막막..당장 닥친 일은 아니다만.ㅋㅋ 찌찌도 맘약해서 아직도 못떼고있음.ㅋㅋ
    너는 어떻게 뗐니? 배변훈련 같은것도 혹시 열심히 해주지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게되는 날 오니? ㅋ 심하게 게으른 질문인가..난 정말 신경쓰기 힘들거같아서..ㅋㅋ

  4. a said on 2013-05-25 at 오전 10:47

    게으른 게 아니라 느긋한 거네. 여유작작한 엄마. 좋다.

  5. wisepaper said on 2013-05-27 at 오전 10:32

    심은하/ 일관성은 필요한데요. 일관성+여유가 필요해요.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나고 있거든요? 근데 부모들은,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내 속도에 못 따라와줄까 힘들어하는 거죠. 기저귀뗴기 같은 것만 봐도, 비교를 해 보자면 어떤 아이 엄마는 18개월 때부터 기저귀를 떼야 한다고 훈련을 하다가 아이가 못 따라오니까 속상도 하고 짜증도 나고 내가 뭐 잘못됐나 걱정도 되고 그렇거든요. 기저귀 떼기는 근육발달+인지발달이 됐을 때 가능한 일이에요. 머리가 좋아도 근육이 발달안됐으면 조절이 안 되거든요. 열음이는 충분한 시기가 지난 다음에(말귀 다 알아듣고 난 다음)에 기저귀를 벗겼더니 한 번에 뗐어요. 보통 몇 주 이상 걸린다는데.. 오래 기다렸다 떼니까 하루만에. 은율이도 지가 기저귀를 귀찮아하길래 거실에 싸든 말든 벗겨놓고 설명해줬더니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 가서 쉬야 해요 근데 아직 완벽히 떼진 않았어요. 어느날 계단식으로 아이가 확 넘어가는 순간이 와요.

    신경은 써야지요. 저는 배변관련한 동화책 읽어주면서 응가나 쉬야를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게끔 교육은 했어요. 자연스럽게 변기 속으로 빠이빠이 하는 거라고 이야기도 자주 해주고.. 배변훈련 급하게 하면 정서랑 바로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서..

    저는 이게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공부나 성적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인지발달이 돼 가고 있는데, 부모는 자기 욕심으로 아이를 닥달하는 거죠.. 이번에 책에서 제일 공감한 부분이 “아이를 키우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커가는 걸 바라보라”고.. 이거 명심하려구요.

  6. wisepaper said on 2013-05-27 at 오전 10:40

    a/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지금은 아직 아이가 어려서 더 자신만만하지만 아이들이 커서도 느긋함과 여유를 유지하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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