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미셸의 연설문을 읽다가..

미국에서 미국인이 아닌채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이 기분이 외롭지만은 않다.

내가 만나는 지인들도 대부분 다양한 뿌리를 갖고 있고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며, 혹시나 본인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님이 다른 나라에서 왔거나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고 그 다양한 뿌리에 대해 늘 말하고 매순간 인지하려고 한다.

당장 내가 요즘 가장 친하게 지내는 셀린느 가족도 그렇고. 열음이가 매일 같이 노는 앞엣집 다이애나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루마니에서 왔어. 나도 그래서 루마니아에 관심이 많고 그나라 말을 배우고 싶어.” 란 말을 종종 한다. 열음이 은율이랑 자주 노는 옆에 옆엣집 아이들도 아빠는 시애틀 출신이지만 엄마는 싱가폴 출신이다. 자주 알래스카 낚시를 떠나서 만나기 힘든 옆집 부부도 남편은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중국 출신이고.

어제 미셸 오바마 연설문을 읽다가 뜬금없는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모님이 영어는 쓸 줄 몰라도 더 나은 삶이란 꿈을 가진 아이들”이란 표현. 힐러리가 그런 아이들을 위해 헌신할 거라는 표현. 저거 우리 가정 얘기 아닌가. 나와 ornus는 아무리 해도 우리 아이들처럼 말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낀다. 이런 가정이 분명히 미국의 한 축이라는 걸 인정하는 연설이 내겐 인상 깊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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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다가 꼭 가져오고 싶은 부분도 이 부분이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한 공격과 클린턴에 대한 칭찬 때문에 이 연설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점점 더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미국 내의 소외된 집단과 개인을 더 잘 받아들이는 곳이 되고 있다는 오바마의 생각이 가장 강렬했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의 아내인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버락 오바마의 국적과 신앙에 대한 의심이 돌았을 때의 어려움, 자신의 딸들이 가끔 TV에서 듣는 ‘증오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미국이 얼마나 진전을 이뤘는지 이야기했다. 이 연설 중 가장 마음을 흔드는 말은 아마 “매일 아침 나는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나 내 딸들,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흑인 여성 두 명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걸 본다.”였을 것이다.

오바마 부부의 아이들이 백악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은 미국의 인종 구성과 계급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얼마나 바뀌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월요일 밤에 미셸 오바마는 미국에게 변화는 나약함이 아닌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 게 옳다고 본 정당이 있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미국이란 곳에 점점 더 이방인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인종과 계급 구성원들이 섞여 살며 얼마나 바뀌어가고 있는지는, 당장 우리 가정에겐 현실이다. 이방인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우리 생존의 필수 조건이란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사는 시애틀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트럼프가 어이가 없을 수밖에. 트럼프가 된다는 건 오랫동안 이방인과 다양성의 나라였던 미국의 정체성을 금 가게 하는 일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난 한국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만큼 절망할까? 참 기분 거지 같긴 하겠지만 그 때만큼 절망하진 않을 거 같다.

트럼프 한 명이 망쳐놓기 쉽지 않은 시스템과 민주주의가 받쳐주고 있다는 걸, 이곳에 와서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아이들 학교에서 느끼는 교육, 병원, 일상 생활, 동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대충 느끼는 시스템이지만, ornus는 회사에서 그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을 나보다는 훨씬 더 피부로 느끼고 내게 전달해준다.

 

ornus가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들이나 내가 동네에서 만나는 지인들은 트럼프 얘기가 나오면 코웃음을 친다. 고개를 흔든다. 물론 시애틀이 미국에서도 진보적인 곳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고, 이곳은 남부 같은 동네랑 비교한다면 정말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들이 사는 곳이다. IT기업이나 하이테크 산업이 번창한 도시이기도 하고. 최근에 우리 동네와 이 주변으로 이사오는 가족들은 대부분 이 관련산업에 종사하는 가족 구성원을 둔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시애틀이 미국의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열음이는 벨뷰에서 학교 다닐 땐 50퍼센트 가까이가 아시안인 곳에서 공부했지만, 이사온 지금은 한 반에 백인들의 비율이 훨씬 높고 아시안 비중이 낮은 동네임에도 학교에서 인종적 편견을 겪지 않고 잘 놀고 있는듯 보이는데, 우리가 체험한 이 미국이 아마도 미국 전체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다양한 뿌리로부터 시작한 미국이란 나라의 당연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Comments on this post

  1. 청순가련심은하 said on 2016-07-29 at 오전 7:02

    으..민주적 시스템이 뿌리박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박근혜가 대통령 됐을때보다 절망적이지 않겠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겐 트럼프가 당선되면 엎친데 덮친격 되는걸까?
    게다가 중국이랑은 요새 불안불안해서..
    아..나는 요새..박근혜를 비롯한 수구 무리들이 알고보니 선한 무리였다는 망상을 해봐. 그러지않고선 희망이 너무 없잖아. 앞이 안보이자나..

  2. wisepaper said on 2016-07-29 at 오전 7:04

    그러게요. 트럼프가 되면.. 한국은.. ㅠㅠㅠㅠ 설상가상인 거죠. 트럼프 진짜 되면 안되는데…ㅠㅠㅠㅠㅠㅠ 중국도 그렇고. 세계의 비극이죠 트럼프가 되는 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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