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이네

다음주 수요일이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니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들이나 선물들, 이런 저런 잡화들을 사느라고 요새 계속 쇼핑중인데,
요며칠 내가 계속 찾아 헤맸던 게 속바지다. 치마 속에 입는 속바지. 만에 하나 치마 속 속옷이 보일까봐 그거 가리려고 입어주는 게 속바지인 셈이다.
여초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치마 속에 대부분 속바지를 한 번 더 입어준다는 글을 보고 찾아 헤맸던 것이다.

그러나 없다… 스파 브랜드, 속옷 가게, 일반 옷가게, 백화점, 벨뷰 스퀘어를 여러 날 발품 팔아도 속바지 같은 건 팔지 않는다!!!

자주 가는 여초 커뮤니티에 오늘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는데, 댓글들이 폭발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 덥고 찌든 여름에 팬티 위에 속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이며 브래지어 위에 나시까지 챙겨 입고 티셔츠를 입어야 여름옷이 완성된다는 억압(코르셋) 속에 살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다 입지 말자고. 우리끼리라고 자유롭게 살자고.

그러고 보니 머리가 띵하다!

유두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그 브래지어가 비치는 게 예의가 아니라서 브래지어 비치는 걸 가리려고 나시를 그 위에 한 번 더 입어주고, 그 위에야 티셔츠나 블라우스, 원피스를 입어야 한다니. 이게 웬 러시아 인형이냐고. 입고 또 입고 가리고 또 가리고 억압 위에 또 억압을.

중요부위를 가려주는 팬티를 입었는데, 이제는 그 팬티를 가려주기 위해 속바지를 덧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어줘야 하의의 완성이라니. 가리기 위해 또 가리고 그걸 가리기 위해 또 가리고. 숨이 꽉 꽉 막힌다.

내가 머리가 띵해서 중얼거렸더니 옆에서 ornus가 한마디 한다.

“히잡이네. 히잡과 다를 것이 없네.. 한국형 히잡이잖아..”

 

맞다 히잡이다. 팬티와 브래지어로도 모자라 속바지에 브래지어 가리는 나시까지. 여성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관리의 대상,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나라도 벗어 던져야지. 내가 미쳤지 뭣하러 속바지와 나시를 찾아 다녔나.

여기 길거리 다니면서 브래지어 끈 나왔다고 신경 쓰는 여자도, 남자도 본 적이 없다.
어린 학생부터 아줌마, 할머니까지, 누구도 별 개의치 않고 등이 훅 파인 홀터넥 원피스를 입고, 뒤에 브래지어가 훤히 다 드러나보이게 그냥 입고 다닌다.
끈이 밖으로 나오면 좀 어때서. 아니 그냥 애초부터 나오게 입음 어때서. 바라는 건, 브래지어 자체도 여성의 몸 건강을 위해 좋지 않으니 벗고 싶은 사람들은 편하게 노브라로 다니는 거다. 브래지어 때문에 소화불량에 시달린다는 리플들이 줄줄이 달리고, 브래지어 때문에 땀띠가 나서 여름마다 괴롭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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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스스로를 옥죄는 속옷이 여성의 몸에 남긴 흔적을 보여주는 저스틴 바르텔스의 사진. 가학적인 자국들.

한국에서 실수로 브래지어 끈 좀 나왔다고 “조심 좀 하라고” 끈을 넣어주는 여성 동료, 선배들의 친절을 많이 겪어봤는데,
제발 나한테 그런 친절 베풀지 마소서. 난 가릴 생각이 없습니다요.

여성들이 이렇게들 스스로 자신들의 억압을 자처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남성들의 시선이나 추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거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 피해자의 조심 쪽에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성폭력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 어른들이 젤 먼저 하는 소리가 그러니까 여자애들 밤늦게 다니라 하지 말라 하고 몸가짐을 조심하란 소릴 거다 아마. 희롱이든 추행이든 폭력이든 상대가 원치 않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게 기본인데.. 이 기본을 가르치는 게 가장 근본적인 거겠지.. 나 또한 아이들을 기르는 입장이니까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왜 피해자들 몸조심하란 소리가 먼저 나오는지,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암담하다. 이러니 또 근본 문제로 돌아가게 되는데, 난 결국 인간에 대한 존중, 공감, 성찰 문제인 것 같다. 성폭력이든 그냥 폭력이든… 결국은 저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는 어릴 때부터, 남자든 여자든 다른 사람에 대한 터치 자체에 굉장히 민감하게 가르친다.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놀 때도 손으로 상대의 몸을 터치해서 밀거나 부딪치는 문제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고. 한국 아이들처럼 놀면, 여기선 폭력이 된다. 그래서 나도 열음이가 놀면서 무아지경이 될 때 까먹을까봐 평소에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다 보면 또 까먹는다..하지만 습관적으로 배우면, 이런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습관, 기본 매너가 되는 거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면 “No is No!” 라는 걸 가르친다는데, 상대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는 거다. 상대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는 거다. 여자가 밤에 집으로 불렀느냐 속옷을 입은채로 불러들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설사 스킨쉽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도 “No!” 하면 멈추는 거다. 그게 기본이다. 인간이라면 상대의 기분을 존중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No is No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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