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nus가 주는 통찰

매일 곁에 있지만 나와 ornus는 함께 있으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곳에 내가 쓰는 모든 고민들도.. 이미 ornus와 말로 다 나눈 고민들일 경우가 많다.
내가 하는 모든 고민과 내가 처한 모든 절망과 내가 봉착한 모든 위기는 ornus와 나누지 않은 게 없다.
아무리 미묘한 주제라 할지라도. ornus에게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가 없고. 물론 ornus도 내게 그렇게 털어놓고.

(물론 우리 사이에 아무런 공간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과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모든 걸 다 나누는 영혼의 동반자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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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 시간 넘게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ornus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눴는데,
최근에 내가 느낀 스트레스와 공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좀더 근본적인 곳으로 파고들게 됐다.

특정 사건의 업앤다운과 상관없이, 나는 내가 내 인생의 어떤 난관에 봉착한 느낌을 벌써 수 년 전부터 받고 있었다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벗어날 수 없는 투명 막으로 둘러싸인 어떤 한계 속에 내가 갇힌  느낌. 인생이 여기까지란 말인가? 이것은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 사소한 기쁨과 절망과 상관 없는 아주 근원적인 공허다.

내가 이 홈피에조차 쓰지 못하는 부끄러운 집착,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모든 일들을 곁에서 알고 있는 ornus의 오늘 해답이 나를 뒤흔들었다.

(내가 요즘 하는 정말 구체적인 고민은 ornus만이 낱낱이 알고 있을 뿐, 사실 부끄러워서 여기 쓰지도 못한다ㅠㅠ)

“요즘 자기 에너지가 자꾸 내부를 향하잖아. 자기 내부로만. 그러니까 이렇게 고통스럽지. 자기 에너지가 외부로 향해야 해. 자기를 성찰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자신 내부로만 향하면 공허에 부딪히는 게 아닐까.. 자기가 외부로 향하는 순간에는 그 공허를 안 느끼거나 덜 느끼잖아. 해답은 외부야.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인 것 같아 난..”

이 말을 딱 들려주는데, 정확한 통찰이다 싶었다. 순간 체한 게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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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외부를 향해야 하는데, 자꾸 내부로만 들어가려고 하니까 출구도 비상구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고 나의 모자람이 뭔가를 생각하고 나를 비하하거나 나를 높이거나. 나, 나, 나…. 나만 붙들고 있을 때 내 인생은 허무, 공허 그 자체다.
내 에너지가 외부로 향할 때,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 아닌 타인에게 의미있는 일을 할 때,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때에만이 이 공허에서 벗어난다.

ornus가 우리 함께 외부로 향할 무언가를 찾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거라고 하는데.. 뭔가가 씻겨내려가는 느낌이다.
그냥 그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내가 봉착한 난관에 씌어 있는 투명막이 가볍게 열리기 시작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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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ornus에게 처음 반했을 때는 나른하고 어눌해보이는 소년 같은 모습에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든 거지;; 다른 기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나는 빠지면 그냥 이 세상에 그 사람밖에 안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빠져든 그가.. 함께한 시간이 늘어갈수록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통찰을 내게 보여준다.

그 어떤 고민도 절망도 털어놓지 못할 것이 없는, 모든 걸 받아들여주는 유연한 품도…
함께 살면서도 신비로운 영역이다.

 

 

 

 

 

Comments on this post

  1. 엠제이 said on 2016-09-12 at 오전 2:26

    맞아요. 언니의 사랑과 에너지를 외부로 나눠주시는 것이 정답인거 같아요. 너무나 서로를 잘 아시는 언니 커플. 시간이 지날 수록 무뎌질 수 있는데, 서로를 통찰할 수 있는 모습… 저도 꼭 그러고파요. 하지만 언니 커플은 진짜 신비롭고 기적적인 한쌍이에요b

    • wisepaper said on 2016-09-12 at 오후 2:31

      고마워. 너희 커플은 세월과 함께 더 깊어질거야.

  2. 청순가련심은하 said on 2016-09-12 at 오전 3:06

    나도 요 몇년전부터 허무함에 잠 깬적이 많아. 너의 허무함의 근본적 원인이 나랑 다른 종류일 수 있겠지만.
    그래..진짜 신비롭고 기적적인 한쌍이네

  3. wisepaper said on 2016-09-12 at 오후 2:30

    삶의 행/불행과 상관 없이, 특정 사건과 아무 관계 없이.. 거부할 수 없이 다가오는 허무함이요. 삶이 어느 순간 문득 커다란 구멍, 공허로 느껴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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