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똘끼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서태지를 다른 뮤지션보다 더 파고드는 이유는 교양에 물들지 않은 똘끼 때문인 것 같다.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들은 많다.
크고 작은 이름 모를 인디뮤지션들도 좋아하고
유명 뮤지션들 중에서만 거론하자면 이른바 ‘라인’을 형성해 활동하고 있는듯한
유희열, 이적, 김동률, 루시드폴… 정재형 뭐 이런 라인도 좋아하고 김현철, 그리고 더 이전 세대인 조동익, 이병우 어떤날 조합도 굉장히 좋아하고..
근데 저런 뮤지션들을 내가 파고들지는 않는다.
사실 김현철은 천재과이고 조동익, 이병우 어떤날 조합도 천재적이라 같이 묶기는 힘들지만
천재과라고 보기 힘든 수재과- 김동률, 이적, 유희열 요쪽 라인들은 솔직히 내가 파고들만한 재미가 없다.
뭐라 설명하기 디게 미묘한 일인데.. 얼마 전에 우연히 김동률 페북에 흘러들어갔다.
뉴욕, 파리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며 갤러리에 들러서 그림 감상도 쓰고 뮤지컬 감상문도 쓰고
나름 진솔하고 진지한 문화적인 감상문이 담긴 페북이었다(서태지는 다 기사가 나가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못함-.-)
아무튼 언론에 대한 의식 없이 자유로운 글을 기록하고 여자랑 여행다닌 얘기도 하는 걸 보면서 보기좋았는데
… 저런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거다(수준 차원이 아니라 이런 류의 태도-스타일 차원에서 말하는 거다).
아니 적어도 저런 건 대학교육 받고 문화에 대한 소양좀 있고 교양만 추구하면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서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 되게
클리셰같은 일들이다. 저런 건 굳이 뮤지션 아니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과 나름 스노브들이 갖고 있는
태도인데, 굳이 뮤지션이라서 더 파고들만한 매력이 있을 수가 없다(내겐…)
저기서 더 나아가 소설까지 끄적이는 이적도 좀 비슷한데 이적은 그래도 좀더 똘끼가 있는 과긴 하다.
똘끼는 패닉에서 더 돋보였는데 솔로활동 하는 이적을 보면 노래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좋은 집안에서 잘 자라 고등교육을 마친 문화 교양자의 클리셰를 지울 수가 없는 거다.
나이 들고 가정을 일구며 성장하고 우아해지는 뮤지션이 그 반작용으로 똘끼를 잃어가는 게 아쉽다.
굳이 파고들만한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거다.
(이적이 최근 <음악의 신>연출자와 손잡고 병맛 뮤직다큐 <이적쇼>에서 나름 자기의 똘끼와 병맛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봤더니, <음악의 신> 이상민이 훨씬 더 재능있다. 이적은 결국 거기까지 자기자신을 희화화하진 못할 거다.
그렇게 하기에 이적은 너무 잘 자랐고 너무 교양있다-.- 옆에 존박이 의외로 더 잘했다.)
그래서 저런 상황에서도 나름 똘끼를 잃어버리지 않은 장기하 같은 친구가 재밌고 기특하다.
근데 인터뷰에서 보니 자기는 대학졸업장은 따야 폼날 거 같고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먹고 살려면
일류대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농을 떠는 걸 보면 생각보다 훨씬 현실감각이 있고 처세가 능한 친구인지도 모르겠어서 매력은 없다.
그리고 내가 그 막걸리 한사발 같은 노래를 신명나고 싶을 때 듣긴 하지만 취향은 아니다.
(장기하 노래의 열혈팬은 ornus와 열음이다. <우리 지금 만나> 이거 차 타고 달려가며 틀어주면 우리 열음이 따라부르고 난리도 아니다)
미묘한 문제인데 종합해보면 서태지는 라인을 형성하지도 않고 인맥도 없고
정신병자라고 보일 만큼 폐쇄적이고 자폐적이다( 그러나 서태지는 언론-프렌들리한 활동만 안 할 뿐 외국 나가서
여행 다니며 자유롭게 자기 누릴 거 다 누리고 산다고 느끼는 것 같다)
서태지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편집증이고 결벽증적인 변태성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고
결국 솔로 이후 대중성에서 멀어졌지만 내가 파고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5집 같은 똘끼, 재기 넘치는 음악을 만든 서태지, 7집의 <헤피엔드> 같이 변태정서를 서늘하게 뒤틀어버린 서태지를 도저히 내가 안 파고들수가 없다)
서태지는 대학물은커녕 제도교육에서 일찌감치 도망쳤고(고1때 자퇴했다지만 그 전에 책상앞에 엎드려 잔 세월까지 합하면
중학교 때부터 이미 제도교육을 이탈한 사람이다-.-;;;)
그래서 교육의 힘으로 교양을 익힌 자들의 몸짓에서 나오는 그 클리셰 같은 우아함이 없어서 너무 좋다.
서태지는 책도 안 읽는다고 했다.
영감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데서 받는데 음악 구성 자체는 또 굉장히 편집증적이고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것 같은
미친듯한 집중력을 갖고 있다.
한번 고등교육을 받아본 사람들, 지적으로 살아본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를 이탈하기가 굉장히 힘든데
계속 더 깊이 있고 훌륭한 책들을 읽으며 자신의 교양을 채워가고 문화적인 성찬을 즐기며 성숙해지고 그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건 뮤지션이라서 굳이 매력적일 이유가 없다. 그런 건 차고도 넘치고 발에 채일만큼 많다.
———–
이건 참 쓸데없는 여담이지만 난 서태지가 여자, 결혼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의외로 보수적인 구석이 많아서 안타깝다
그렇게 사랑에 빠질 때마다 결혼할 필요는 없는데;;;;;;
이번 결혼도 내가 보기엔… 악담이라 팬싸에서 쓸 수 없는 말이지만 내 생각에 서태지는 어쩌면 앞으로 열번을 더 결혼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뭐 개인사의 측면에서 봤을 땐 다행이고)
아니, 서태지는 첫번째 결혼 실패후 별거 상태일 때 언론에다 (다른 톱스타들이 하지 못할) “나는 앞으로 동거만 하고 살거에요” 발언을 많이 했다.
근데 결국 또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나이들면서 자기 신변에서 안정을 찾고 싶은 욕망과 부모님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 것 같다.
첫 결혼을 그따구로 병맛같이 했으니 아마도 평범한 중산층이었던 서태지 부모님 식겁했을 거고
아들 등짝을 백 대는 후려치지 않으셨을까 싶다;;;;
(참 요부분이 재밌긴 한데 서태지네 집안은 의외로 멀쩡하고 좋은 가문이다. 작은 할아버님이 우리나라에 오케스트라 음악 초창기에 공헌을 하신
연대 음대 학장을 지내셨고 아버지 형제분들이 교수 의사 쪽이다. 서태지의 엔지니어같은 성향은 발명가이신 아버지를 닮기도 했을 테고 음악 재능도 유전자 영향이 있는 건지.. 아무튼 좋은 집안에서 서태지같이 미친 녀석이 나왔는데
부모님이 뒷목 잡고 쓰러지실 일이 많았을 거다;;)
평범한 인간인 내 관점에서 봤을 때 서태지를 비판하고 싶은 부분도 굉장히 많고 맘에 안 드는 부분도 굉장히 많은데
그건 평범하고 교양있는 내 잣대란 거다. 서태지에겐 그런 교양이 없다.
서태지 음팬 중에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어떤 팬이 서태지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 같은 매력이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에 나도 동의했다.
서태지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성장해가며 우울과 좌절을 승화한 분위기 있는 노래를 만들어주지 못할 거다.
서태지는 실제로 자기는 우울한 적이 없다고 했다-.-(허세인지 컨셉일지 모르지만 요즘 시대에 이 발언은 스타로서 굉장히 불리한 발언이다.
요즘 대중이 스타에게서 원하는 건 “너도 힘들었구나.. 너도 우울증이 있었구나..”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예능 나와 진솔발언을 하는 거다.)
서태지는 앞으로 더 병맛 같고 희한한 자폐성을 보여줄지도 모르고 의외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활동방식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참 병맛같은 이번 결혼 발표글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새로운 음악여정”을 기대하라는 말이었다.
1집-4집, 5집-8집.. 그리고 다음 앨범 9집..
서태지는 앨범 네 개 단위로 자신의 활동방식을 쪼갰다.
나는 관찰자 입장에서 킥킥대며 지켜볼 수 있는데
서태지에게서 수도승 같고 고결한 우상을 봤던 팬들은 지금 서태지에게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뭐…
앞으로 배신을 더 때릴수록 재밌을 것 같다.
서태지의 희한한 결혼, 비밀, 사기 등등 모든 고백은 서태지의 5집-8집까지 노래 속에 다 들어있다.
서태지가 티비 나와서, 방송 나와서, 또는 신문에서, 인터뷰에서 말하지 않았을 뿐-.-
왜 저렇게까지 언론과 척을 지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도 있긴 하고 동료 뮤지션들과 교류도 없이 혼자만의 세계 속에 있는게
안타깝기도 한데, 그건 평범한 내 생각이고
서태지는 앞으로도 교양있는 다른 동료 뮤지션들과 섞이기 힘들 거다-.-
(사실 난 태지가 동료 뮤지션들과 교류도 하고 음악작업도 같이 하는 거 보고 싶다.
8집 때 이적 라디오에 나올 때, 몇 달 전부터 끝나고 뒷풀이 술자리라도 가지면서 서태지와 안면을 트고싶다던 이적은
방송 끝나자마자 휘리릭 집으로 떠난 서태지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아쉬워했다. 좀 더 들이대지, 내가 다 아쉽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 TrackBack URL
Comments on this post
너 애기 듣고 이적쇼 찾아봤는데. 음악의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차라리 김진표랑 했으면 더 적나라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어 좀 그런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오늘 2회까지 보고나니까 그래도 이적이 가진 게 많은데(예능감은 부족하지만) 거기서 터지는 아이러니에서 주는 것도 있을 거 같고..존박의 발견임. 멀쩡한 애가 멀쩡한 표정으로 바보짓하니까 좀 재밌고..ㅎ
1회에서 김진표 나온 부분이 젤 재밌었음-.- 신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