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이 관찰 + 이것저것
열음이때는 첫째라 이런 글도 자주 쓴 것 같은데 은율이에 대해서는 거의 쓴 적이 없어서 민망하다
호/오의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나는대로 기록해봐야 겠다.
1.
은율이는 요즘 한창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열음이는 돌 지나서 단어로 말하고 18개월때부터 문장을 시도했는데 은율이는 열음이보다 한참 느리다. 열음이는 남보다 운동발달이 빨랐는데 운동발달이 빨라서 근육발달도 빠른 편이라 마음속에서 의도하는 발음을 입으로 낼 수 있는 ‘목, 입, 혀근육’도 빨리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 은율이는 키도 작고 운동발달도 아주 느려서 이제서야 발음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요즘 은율이의 발음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미스테리는 ‘나비야’를 ‘빠비야’로 발음한다는 사실이다. ‘빠비’라는 소리로 ‘나비’를 말하고 있는 거다. 우리가 은율이한테 “뭐? 빠비라구?” 하면 막 화를 낸다. “아냐. 빠비야~” “아.. 나비라구?” 하면 “응” 한다. 그러니까 본인은 절대로 빠비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비라고 발음하고 있는 거다.
나비와 빠비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과 어떤 원리가 숨어있길래 나비를 빠비라고 발음하는지 미스테리다. 요즘, 미국 언어학자가 쓴 “아이들의 모국어 습득과정”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데 아이들이 말 배우기 시작할 때 나오는 발음들은 여러가지 특이 현상이 있다고 한다. 발음기대 현상. 예컨대 ‘tiger’를 ‘가이거’라고 발음하는 거다. t다음에 g자음이 나올 걸 미리 예상해서 t를 g로 발음해버리는 식이다. 은율이의 ‘나비’와 ‘빠비’ 사이에는 뭐가 있는 걸까. 아.. ‘나’ 뒤에 ‘ㅂ’ 발음이 나오니까 미리 ‘바비’라고 발음하는 걸 수도 있다. ‘바’가 ‘빠’가 된 이유는 아이들은 원래 된소리, 거센소리를 가장 쉽게 발음한다.
2.
은율이는 자기세계가 아주 강하다. 어떤 류의 자기세계냐 한다면.. 돌 지나고 15개월 무렵부터 놀이터나 밖에 은율이를 풀어놓으면 자기 혼자 돌아다니며 꽃도 만져보고 돌도 집어보고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 시간 이상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후에 어슬렁어슬렁 엄마한테 온다. 중간에 엄마가 있나 없나 확인도 잘 안 하고, 한번 확인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고, 엄마가 없다는 걸 확인하면 없는채로 그냥 자기 갈 길을 간다. 영아기 아이들한테 이 현상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열음이는 밖에 나가서도 같이 간 엄마와 계속 상호작용 하려하고 끊임없이 나를 자기 놀이에 끌어들인다. 열음이는 호기심이 아주 많은 아이였는데 그걸 엄마인 나랑 나누고 싶어했다면 은율이는 별로 상관 안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랑 노래하고 춤출 땐 상호작용을 아주 잘한다.
3.
동네 깡패짓을 하고 있다. 자기 장난감을 만지는 애들한테 큰 소리로 뭐라 뭐라 훈계하고 자기를 공격하려는 아이를 가차 없이 응징한다. 자기 물건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건 영유아기 아이들의 자연스런 발달과정 중 하나다. 그러나 차차 양보를 배워야 하고, 남을 때리거나 응징하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키도 동네에서 젤 작은 게 동네 누나, 형들에게 워낙 깡다구가 있게 행동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밌어하신다. 타고난 기질인 걸까. 아님 태어나보니 강력한 힘을 가진 형이 존재해서 생존을 위해 스스로 깡다구가 세진 걸까.
4.
열음이는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자기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거나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누나들은 보통 동생을 잘 챙긴다. 열음이는 동생한테 완전 터프 그 자체다. 밖에 나가서도 동생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나 안 처하나 관심이 별로 없다.(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상황까진 생각 안 하는 걸수도.) 근데 웃긴 건 은율이는 지나가는 동네 형들이 열음이에게 시비를 걸면 땅꼬마 만한 게 그 큰 초등학생 형들한테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만의 욕(안돼 싫어 나빠 바부! 등등)을 하며 가차없이 응징한다.(손으로 마구 때리기-.-) 웃긴다.
5.
열음이는 아가 때부터 근육이 단단하고 피부가 탄력 있고 키가 어느 집단에서나 항상 큰 편에 속했다. 신체는 타고나는 부분인 것 같다. 은율이는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났고 작게 태어났는데 지금도 여전히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피부도 야들야들, 근육질도 아니다. 열음이와 신체 차이가 많이 난다. 얼굴이 워낙 동그랗고 통통한데다가 좀 웃기게 생긴 게 작은 키와 어울려서 지금은 귀엽지만, 나중에도 키가 작을까봐 걱정이 되긴 한다. 동네 어른들이 “형은 크고 동생은 작다고” 아주 신기하게 생각한다-.-
6.
열음이는 지금은 아빠엄마랑 차분히 앉아서 책읽기도 아주 좋아하고 만들기 같은 활동을 할 때는 몇 시간이고 차분하게 집중도 잘하지만 은율이만할 때는 안 그랬다. 대근육발달에 더 열심이었다. 높이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기어오르고 뛰는 게 대근육 발달이다. 그 때는 차분히 앉아서 뭘 하지 않고 바삐 움직이며 운동발달에만 열심이더니, 지금은 둘다 잘하고 있다. 은율이는 열음이에 비해 차분히 앉아서 책 읽거나 집중하는 걸 어린 시절부터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니 열음이보다 운동발달이 느리고 대근육발달도 차이가 많이 난다. 만들기도 열음이가 했던 수준에 비해 느린 편이다. 글씨도 못 읽는데 혼자 앉아서 책을 오래 본다.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차분한 기질은 ornus를 많이 닮은 것 같다. 대부분 차분하고 순한데, 화났을 때 유달리 독하고 깡다구 있는 건 나를 닮았다고 그런다-.-
7.
열음이나 은율이나 내가 노래 불러주고 책 읽어주고 만들기도 함께하고 자기들 놀이에 참여하며 시간 보내주면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맘이 아프다. 내가 마가나무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이들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텐데.. 할머니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시지만 아이들을 훈육한다거나 절제를 가르치거나 교육을 하시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아이들은 지난 일 년 간 하고싶은 대로 다 하는 야생마가 되어 있다. 언제까지 할머니한테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고 내년부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내가 믿을만한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하든지, 못 구하면 아이들 어린 시절엔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 일은 좋아하는 거고 아이들은 중요한 거다. 의미가 다르다. 일은 다시 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는 지금 이 시절은 다시 올 수 없기 때문에. 고민중이다. 직장인이었다면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텨야 겠지만 자영업은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내가 교육에 관심이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열음이에게는 더 많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음이 기질은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갈구하며 마음도 여리다. 은율이는 상대적으로 좀 독립적인 스타일인 것 같다.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극단 말고, 일도 하면서 아이들도 돌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 네다섯시간정도 자기 일도 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이들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최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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