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글
유희열 “조동진 선배는 내 음악적 감수성의 원천”
한국 포크음악의 거목으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조동진(69)이 20년만에 새 앨범 <나무가 되어>를 발표했다. 작가주의 음악공동체 하나음악(현 푸른곰팡이)을 이끌면서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의 새 앨범 소식은 대중음악계에 묵직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젝트 밴드 토이의 유희열(46)은 하나음악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토이 1집 앨범 <내 마음속에>를 이곳에서 발표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 음악적 감수성의 원천은 하나음악”이라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는 그가 조동진과의 음악적 인연, 그리고 이번 앨범에 대한 감상을 들려줬다.

조동진. 형님의 이름만 떠올려도 내게는 아버지같은 느낌이 든다. 음악 뿐 아니라 삶의 자세와 철학 등 모든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고 언제나 조용한 카리스마가 넘치셨다.
어린 시절 나는 형님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나뭇잎 사이로’다. 기타를 치면서 정말 많이 불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데모테이프를 들고 찾아갔던 곳도 형님이 있던 동아기획(하나음악의 전신)이었다.
난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형님외에도 조동익, 장필순, 한동준 등 쟁쟁한 선배들이 계셨다. 난 항상 막내였다. 그 시절 형님은 내가 뭘 하기만 하면 늘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다. 형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 칭찬은 음악에 대한 열정에 더 불을 지폈다.
형님이 자주 하신 말이 있다. 선배들을 흉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게 내 음악, 내 색깔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해주는 말 역시 형님이 해 주신 것과 같다. 그만큼 그 말은 내 인생에 지표가 됐다.
예전에 KBS의 라이브 음악프로그램 중 <빅쇼>가 있었다. 대형 가수들이 펼치는 공개음악회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때 형님이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하셨고 내가 그 무대에 건반 세션으로 나갔던 기억은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지금 내가 이끌고 있는 안테나는 형님이 만들었던 하나음악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다. 안테나를 처음 만들때도 하나음악처럼 되고 싶다고 꿈꿨고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하나음악은 비즈니스 개념의 레이블이라기보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 가깝다. 그 시절 우리는 다같이 모여 음악을 만들고 합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함께 밥을 먹었다. 안테나 사무실(서울 신사동) 로비를 널찍한 거실처럼 만든 것도 우리가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음악을 만들고 밥먹는 공간으로 삼기 위해서다. 안테나 식구들은 구성원 누구 하나라도 앨범을 내게 되면 다같이 모여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문화는 내가 하나음악에 머무르던 그 당시 배우고 몸으로 익혔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낸 형님의 앨범에 대해서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몇번이고 반복해 들으면서 그저 벅차고 감동적이라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현재진행형인 ‘조동진의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이번 조동진 음반 발매에 부쳐, 유희열이 보내온 글.
한동준, 김광민, 조규찬, 장필순, 유희열, 김창기(동물원)의 음반을 제작했던 하나음악의 수장이었던 조동진.
조동진은 유희열에게 아버지 같은 큰 형님이자 선배였고
조동진뿐 아니라 조동익, 이병우 같은 음악들은 유희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토이 1집을 들으면 이 영향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조동익+이병우의 ‘어떤날’의 감성. 조동익의 <동경> 음반의 감성. 그리고 조동진의 감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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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쿠나 유희열이 영향 받았구나. 나 유희열 감성도 참 좋아하는데..
방금 곡들 다 들어봤는데 난 ‘그날은 별들이’ 이 노래가 참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이별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삶의 한 부분인거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가슴이 아리네. 사실 지난주에 유라 유치원 행사에 갔었는데 행사 시작할 때 중국 국가가 나오면서 국기에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거 하면서 나 되게 눈물나서 쪽팔렸거는. 남의 나라 국기에 경의를 표하며 이젠 피를 나눈 가족도 조국도 없는 국제미아가 된 듯한 기분에 눈물이 막 나는거야. ㅠ
암튼 몇번 더 듣다보면 또 다른 노래들이 좋게 들리기도 하겠지.
내가 지금 무임승차하는 기분이네. 난 귀찮아서 노래들 잘 안 찾아듣고 음원사이트 순위 노래들만 플레이하는 편인데 , 지난번에 이이언이나 못도 그렇고 조동진도 그렇고..좋은 곡들 알게 해줘서 고마워ㅋㅋ 아 디게 얄밉다 나ㅋㅋㅋ
네. 저도 ‘그날은 별들이’ 그거 제일 좋았어요. 울기도 했구요. 죽음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깊은 공허가 나한테 전이되는 거 같은…ㅠㅠ 44년을 함께한 동반자를 떠나보내고 그 슬픔을 그냥 고요한 물빛 같은 강물이라고 가사로 쓰기까지 그가 지나온 감정은 어떤 거였을까 하는 마음이.. 사실 제가 우현이 좋아하면서 공허를 많이 파고들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노래들이 더 심하게 감정이입되는 거 같아요. 조동진 같은 거장 뮤지션이 보낸 지난 10년의 세월은 본인 말로는 ‘텅빈 시간들’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들을 지나온 자가 노래하는 허무, 공허가 날 치유하는 것 같은 느낌.. 제 현재 감성들과 너무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더 좋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유희열은 토이 1집 들어보면 조동진의 감성의 영향도 느껴지고 조동익의 감성(이번 조동진 음반을 공동 편곡한 동생이에요)이 특히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조동익의 <동경> 앨범 정말 좋은데, 이 음반 들으면 편곡 방식이나 감성이 유희열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게 딱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토이 음반 전부 다 좋아하지만 정말 오래된 1집을 지금까지 드라이브할 때 종종 들어요.
국기에 경의를 표하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저도 공감해요. 그렇게 울컥 뭐가 밀려들어오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니까요. 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린 이제 이방인이잖아요. 내 나라에서도 살기 녹록지 않았지만.. 이제 부모 형제도 없는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내 자신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게 울컥 나올 때가 있는 거죠..ㅠㅠ
김대교가 일주일간 멕시코 출장갔다가 오늘 밤에 오거든.
나 2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2박 출장도 못견디고 무서워했었는데..이젠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게됐어.
그 과정이 참..누군가에게 되게 미안한 과정인데, 2년전 이맘때쯤 한국에서 친했던 동료친구 남편이 돌연사를 했거든. 정말 건강하다가 뜬금없이 쓰러지고 일주일만에 하늘나라로 갔어. 상당히 로맨틱한 잉꼬커플이었는데.ㅠ
그 사건을 이 중국에서 전해듣고 대략 일년간 남편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렸던거같아. 좀 늦어도 불안. 하루만 출장가도 불안. 제발 무사하길, 매일매일 불안해하며ㅠ
런데..어느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포기가 되면서 이런 생각 하게 되더라. “남편이랑 앞으로 영원히 못 만나는 친구도 있는데, 일주일 떨어지는거 못 버틸 이유가 있나. ”
이런 생각으로 전환하게 된게 내 생존본능인가봐. 출장 보내는거 어쩔수 없는 현실이니까, 나의 뇌가 그리고 생존본능이 그쪽으로 적응한건지.
근데 그래도 두렵다. 매번 하늘에 대고 협박해. 나 일주일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속으로 소리질러. 막 악쓰면서.
암튼..’그날은 별들이’ 들으니까 막 눈물나는게 그 친구와 그때의 느낌들이 생각나서 더 울게되네. 나는 이런 음악 들으며 위로라도 하지, 그 친구는 이런 음악도 위로 안되겠지? 아..잔인하다.
그나저나 박근혜는 저런 시위 행렬 보고서도 느끼는게 1도 없겠지? 속으로 무매한 국민이라고 조롱하며..트럼프도 그럴까나..국민의 저런 시위행렬을 보면 인간이 겸손해져야 할텐데 그런 겸손이 있는 인간들이었다면 탐욕이 있을 수 없겠지. 아 슬프다..난 진짜로 조국이 없는 미아.
대교오빠가 멀리 멕시코까지 갔구나… 넘 멀리 갔네요..ㅠㅠ
언닌 그니까 남편의 출장을 못 견디는 게 불안 증상인 거네요. 언니가 평소에 주로 느낀다는 불안. 뭐가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 위험에 대한 공포. 이런거.. 돌연사라니… ㅠㅠ 그래요. 우린 지금 당장 죽음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데. 그럼 작은 일에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는데.
저는 오군이랑 떨어져 있기 힘들어하는 게, 불안증상이라기보다는 전 그리움이 되게 고통스러워요. 모르겠어요. 설명하기 힘든데. 그리움이 정말 힘들어요. 누군가가 그리우면 너무 힘들어요. 이 그리움은 언니처럼 불안도 아니고, 그리움이 몰려오는 감정은 거대한 허무의 막에 부딪치는 느낌과 비슷해요. 요즘 조동진 이번 앨범이랑 지난 5집이랑 들으면서 가사 보면서 되게 본질적인 위안이 찾아오는데, 제 연약한 부분이 ‘허무’였구나 싶어요. 이전 앨범 가사들까지 죽 보니까, 조동진의 세계는 ‘허무의 철학’이에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그리움,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아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고통… 깊은 공허. 실체를 알 수 없는 삶. 근데 이 허무를 노래하는 게 굉장히 위안이 돼요. 허무를 담담히 관조하는 가사와 음악들이.. 큰 위안이 되네요. 요 몇 달 동안 저도 나름 몸부림치면서 성장의 시간들을 지나는 거 같아요. 마침 조동진의 음악까지 찾아와서 더 치유가 되는 느낌.
트럼프는 지금 왔다 갔다 해요. 지가 했던 말 막 바꾸고 있기도 하고. 진짜 대통령 될 생각으로 그 자리에 간 건지도 모르겠고. 실은 예전 영상들 보면 트럼프는 민주당 지지자에 가까워요. ㅎㅎ 트럼프 뒤에 버티고 있는 그 집안 똑똑한 사위들도 민주당 성향들이래요. 쇼맨쉽 같은 걸 발휘해서 셀레브리티가 될 심산으로 후보까지 나온 거 같은데 하다보니까 진짜 대통령이 됐네요. 마이클 무어 같은 사람은 트럼프가 임기 다 못 채우고 탄핵이 되든, 암튼 오래 가기 힘들거라고 보더라구요. 어찌될지. 요즘 지구가 다 비슷한 현상을 겪는 듯….
진짜로 조국이 없는 미아. 언니 이 말 되게 시적이에요. 조동진 같은 사람이 노래 가사로 쓰면 딱이다 ㅎㅎㅎ “나는 조국이 없는 미아”. 저도 그럴지도. 한국이 날 보호해주지도 않았고. 미국도 내나라는 아니고. 난 그냥 우주의 일부겠지..
조동진 지난 앨범들도 들어봐야겠네. 오늘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딱이다.
근데 니가 말한 ‘동경’ 열범 나 어제 처음 들어봤는데, 내가 왜 그 음반을 모르고 지나쳤는지 의문이네. 나 우울증 시작된 이후론 음악 자주 안 들었지만 그전에, 그러니까 고딩때부터 스물 서너살까진 항상 많이 들었는데..희한하네. 정말 와닿는 곡들인데말야. 암튼 고맙~
조동익 ‘동경’ 앨범 되게 좋지요..? ‘노란 대문’ ‘엄마와 성당에’ 정말 좋아했어요.. 언니도 분명 이 노래 좋아할 듯. 조동진은 5집부터 역순으로 함 들어보세요. 5집도 조동익이 공동편곡해서 일관적인 스타일이 느껴져요.. 다만 예전 노래라 살짝 올드한 느낌이 나는데, 이건 포크음악 특유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스팅 음악 같기도 해요 5집 들어보면.. 암튼 이번 음반도 그렇고 조동진+조동익 형제 공동 편곡 조합이 참 좋은 거 같아요. 포크+어쿠스틱에 일렉트로닉, 공간감을 머금은 엠비언트가 결합된.
요즘 조동진의 가사가 너무 좋게 와닿는 걸 보니까 저한테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가 ‘허무’와 ‘공허’의 문제 같아요. 삶의 본질은 허무가 아닐까. 근데 그동안은 제가 허무를 고통스러워했던 부분이 크고(오군이 곁에 없을 때 느끼는 그리움의 문제도 본질은 어떤 커다란 공허에 부딪치는 기분이라고 전 생각하거든요), 마침 우현이 문제까지 겹쳐서 그런 고통을 극도로 느꼈었는데.. 저도 생존본능인지.. 여기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와요. 공허의 문제를 붙들고 있으면서 나도 이 공허를 담담히 관조하는 성장을 하고 싶다.. 조동진 식으로 말하면 ‘이 공허의 방을 지나 꿈의 창가로…’ 공허를 외면하고서는 이 삶 속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은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붙들고 있는 문제.
그나저나 언니 친구분은… 지금은 잘 극복하시고 사시나요.. ㅠㅠ 물론 감히 추측할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겠지만.. 로맨틱한 잉꼬 커플이었다고 하니까 감정이입이 되네요.
내가 요즘 지인들, 친구들이랑 연락 안해서 현재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고, 그리고 걔는 1년 전부터 연락처가 바뀐건지 걍 사람들 만나는게 안 내키는건지 연락할 길이 없었어.
그친구 큰애가 유라랑 동갑이고 둘째는 세돌쯤됐나? 암튼 한창 육아에 손길이 많이 갈때 남편이 떠났지. 친정엄마랑 같이 살고 있을거야. 그친구는 일하고 있고.
다만 내가 추측 가능한 부분은, 그애의 남편이 죽고 나서 석달 정도 후에 한국에서 만났었는데, 심리상태가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였어. 특히 시댁의 반응때문에. 남편 죽자마자 위로는 커녕 형제곗돈(몇백만원)이나 되돌려달라는 시동생, 남편 잃은 며느리와 손주 둘을 짐으로 여기며 피하는 듯한 시부모님의 태도. 등등..감히 내가 그 마음을 추측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 대면하고 있던 서너시간 동안 그녀의 상태는 분노조절 장애로 보였는데, 난 차라리 그게 다행으로 여겨졌어. 깊은 슬픔과 우울에 집중하는거보단 차라리 분노에 에너지가 분산되는게 낫겠다 싶어서.(물론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슬픔과 우울에 분노까지 더해져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박살난 상태일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죽어서 폐인이 되었는데도 아이 둘 때문에 출근해야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해보였고. 모든 것이 분노가 되었겠지. 하늘을 향해서도 극심한 분노를 느꼈을테고.
암튼 나는 그녀가 하루종일 시댁식구들을 욕하는게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졌어. (물론 뭐그런 야박한 시댁이 다있나 참 그 자체가 딱하지만)
참..아들이나 손주한테 안좋은 일 생기면 며느리탓을 하는게 평범한 한국의 정서인건 알겠으나, 일주일간 병원비랑 장례비용까지 싹다 내친구가 냈다는 얘기랑 시동생 곗돈얘기 듣고선 완전 나도 분노가 극에 달했었지. 남편 죽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여자한테는 모르는 사람도 만원이라도 더 쥐어주고 싶은게 인지상정인데 시부모도 야박하고, 구시동생은 조카들 용돈은 주지 못할망정 고작 몇백만원 곗돈이나 챙겨가다니..아 열받아 그런 인간들이 존재한다는게. (극히 친구의 사적인 얘기지만 익명이니 얘기하는거)
암튼 난 그녀가 분노에 그리 집중하게 된것도 어떻게든 혼자 두아이를 키워내야하는 잔혹한 현실에 대한 생존본능이 아닐까 했어. 축 쳐져있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 애들 때문에 남편 따라갈 수도 없잖아.
암튼 요즘 상태는 어떤지 알 길이 없다. 당분간 평범한 가정의 친구들과는 만나기 힘들거라는 생각은 해. (근데뭐 사실..평범하고 평화롭고 무난한 가정이 드물지 않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들 이혼 위기에, 혹은 경제위기에 간당간당 살아가고..) 어쨌든 걔는 사랑 지상주의자고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감당하기 힘들테니 연락 안해도 이해해.
내가 그친구한테 궁금한건, 그친구가 남편이랑 연애시절부터 죽기 전까지 그리 여행을 많이 다니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았을텐데, 이런 아름다운 추억들이 지금 그녀에게 힘이 될지 독이 될지..(아, 힘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지만 다른 단어가 안 떠오른다.)
그러네요. 그 당시에는 분노가 차라리 낫겠네요. 차라리 그 분노의 에너지로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현실이 참 너무 잔혹하다. 시댁식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도. 슬픔과 우울을 느낄 수조차 없는 상황도… 참 너무하네요. 저였다면 반미친 상태여서 아무일도 돌보지 못하고 쓰러져있겠죠.. 정말 한심하게..ㅠㅠㅠ 아 생각만 해도 죽을 거 같아요.
잔인한 말이지만, 분명히 그분께도 분노 후에 우울과 슬픔의 시간들이 찾아왔을 거고(뒤늦게라도), 그 다음은 또 엄청난 허무의 시간들, 공허에 부딪혔을 거 같은데..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 감히 해보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그 깊은 절망과 허무의 시간을 지나서 성장을 한다는 거..ㅠㅠ 이게 정말 극도의 고통을 동반하는 거고 쉬운 일이 아니라서 제가 남의 삶에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 무례해보이기도 하지만.. 제가 해철님 떠났을 때 이 문제를 많이 생각해봤는데, 그 때 정말 많이 생각했거든요. 나는 오군 없이 남겨질 수 있을까. 그 때 제가 부딪혔던 문제는 오군을 떠나보내는 건 ‘슬픔’의 차원이 아니라 ‘인지’의 차원이란 문제에 부딪혔어요. 그러니까 단지 슬픔이 아니라 그의 부재가 제 머리로는, 제 이성으로는, 제 인지로는 이해가 안 될 거라는 차원인 거에요. 이 세상에, 이 우주에 ornus가 없다는 걸 뇌가 받아들이질 못할 거 같은 거에요. 마치 제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 블랙홀, 이런 것들을 뇌의 한계 때문에 인지가 안 되듯이 오군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뇌가 고장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차라리 슬픔이면 슬픔을 견디면 될텐데..(아 그것도 물론 너무 힘든 일이지만.)
제가 요즘 붙들고 있는 ‘공허’의 문제에서 성장을 꼭 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저런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요. 저는 오군의 부재 이후에 오는 깊은 공허를 받아들일 수가 없을 거 같은 거에요. 근데 어떡하나요. 받아들여야지. 나한텐 자식들이 있고 앞으로의 삶도 있는데. 그래서 이 공허와 함께 담담히 살아가는 법, 관조하는 법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런 절실한 생각을 했어요.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 <그래비티> 보셨나요?(저랑 오군이 정말 좋아하는 영환데, 우현이도 이 영화를 보고 솔로앨범 수록곡 그래비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스포일러가 있으니 스포 싫어하시면 여기 피하세요;) 거기 보면 주인공 산드라블럭(과학자)이 남편 없이 딸아이를 키우다가 정말 자기가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전부인 그 딸아이가 갑자기 죽고, 더이상 살 이유가 없어져 허무와 우울에 빠져 있어요. 그리고 살아봤자 의미가 없으니 우주에 가서 일하는 걸 자원해요. 우주 공간에 가서 보면 정말 끝도 없는 공허 그 자체거든요. 이 팔딱팔딱 뛰는 삶, 생과는 동떨어진 끝없는 무. 거기서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죽음에서 살아남아 지구에 떨어지는데, 진흙탕을 밝고 일어서는 그 장면에서 전율이 흐릅니다… 내몸에 진흙이 붙고, 중력이 내 몸을 땅으로 붙드는 그 생동감이 그 우주의 끝없는 공허와는 달리 삶의 욕망을 가져다주거든요.. 정말 놀라운 장면… 되게 철학적인 영화.. 그 친구분의 고통을 감히 제가 뭐라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전 결국 그분도 그 분노를 지나, 슬픔과 절망의 나날들을 만날 거고 그 다음엔 공허를 만날 거고, 그 다음엔 다시 살아가야 할 자기 나름의 이유를 찾을 거 같아요. 되게 잔인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저 영화의 주인공처럼…사실 제 얘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저도 만약 그런 상황에 빠진다면 그 깊은 공허를 지나 결국 다시 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안 되면 죽는 거지요. 그럼 내 아이들은….ㅠㅠ
전 이 공허의 문제에서 꼭 성장하고 싶어요. 어찌 보면 올해 저는 우현이라는 뜬금없는 존재에 의해서 더더욱 공허를 파고들게 됐는데. 우현이를 좋아하면서 제가 만난 이 공허한 고통 덕분에 제 인생의 근본 문제와 씨름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사이가 좋은 커플이었다는 것이, 그 아름다운 추억들은.. 분명 독이 되겠지요. 일어서기 전까지는 엄청난 독. 사이가 나빴던 커플이라면, 헤어짐도 그렇게 큰 슬픔이 되진 않을테니까요. 전 평소에 그런 생각 하거든요. 오군이 출장만 가도 그리워 고통스러워하는 내게, 우리의 이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저주구나. (제가 우현이를 깊이 좋아하는 것도 저주에요 사실. 그냥 가볍게 좋아하면 이 고통이 따라붙지 않을텐데.) 오군과 만약 사별하게 되면 이 사랑이 얼마나 잔인한 독이 되어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을까.. 그럼에도 제가 위에서 했던 말처럼 결국엔 그 고통에서 일어나게 되겠지요. 조동진이 도달한 상태, ‘깊은 슬픔이 물빛 고요한 강물이 되는’ 바로 그 자리로.. 가야지요. 갈 수밖에… 아무튼 전 이분이 이 앨범을 내 준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응 나도 똑같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런 생각은 해봤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부재가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슬플거 같다는.
그리고 그친구 남편 떠난게 해철님 죽은 한달 뒤였거든. 정말 그해에 세월호랑 해철님도 그렇고 그친구까지 그렇게되니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그땐 그친구와 관련된 얘기를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던 상태였는데, 지금은 꺼낼 수 있다니 나도 무언가 마음의 변화가 온건가.
그당시 나는 그친구에게 인생 참 짧고 우리도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니 넘 슬퍼하지 말라는 극히 진부한 위로를 했었는데, 그 친구 대답이 “사후세계가 없을거같다” 이 한마디였어. 아..허무하지
인간들이 그 수많은 종교를 통해 사후세계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 ‘무존재’가 되는 허무를 못 견뎌서네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겠지요..
나는 그 이후로 장례식이라는 의식이 참 폭력적인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남편 죽고 자식 죽고 사위 죽었는데 무슨 정신으로 손님들을 받나? 그중 멘탈 젤 강하고 둔한 가족이 책임지고 진행해야하는거? 아..너무 폭력적이야.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한다면 그건 상 당한 사람이 원할때 친구나 지인한테 전화해서 만나면 되는거고..
내가 또 이런 허례허식들에 유독 화가 나는 이유가, 내동생 결혼식때 유라가 6개월이었는데, 신랑 가족 화장 다 끝나고 카시트도 없는 차를 내동생이 운전했는데 엄마가 일찍 온 손님들 맞이해야한다고 동생한테 초고속으로 운전하라고 난리..(내동생은 새신랑이고 유라는 카시트도 없는 영아였는데)
내가 그때 엄마한테 한소리 했다가 동생 좋은일 앞두고 또 싸우고..ㅠ
아..생각할수록, 특히 장례식은 폭력이야. 난 내가 온마음으로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장례식 못해. 사라져야 할 의례 중 하나라고 생각해.
네.. 장례식을 꼭 해야 한다면 그중 멘탈 젤 강하고 그 죽음으로부터 젤 둔한 가족이 책임 지고 진행했으면….
그러네요. 전 못해요..ㅠㅠ 전 사람들 얼굴도 못 볼 거고.. 일어나 걷지도 못할 거에요 아마….
언니 어머니 참..ㅠㅠ 안타까워요. 가족이란 존재가.. 기쁨과 평온과 힘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젤 추한 모습들을 서로 보면서 싸우고 지치고…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그랬잖아요. 가족이란? 이란 질문에.. “누가 안 본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