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하고 잔잔하고

 

2주간 온가족이 집에서 복작댔다.
비글들은 2주간 겨울방학이었고, ornus도 2주간 다른 동료들처럼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거나 재택 근무.

비글들 없이 우리 둘만의 시간이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겠냐마는..
온집안에서 뛰고 뒹구는 비글들 곁에서 우리끼리 영화 보고 노래 듣고 책 읽고 와인 마시는 것도 나름 산만하고 어지러운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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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애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게 맑다. 너무 맑아 두근거리게 파랗다.
비글도 ornus도 아침에 집을 나섰다.
홀로 남은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며 소파에 누워 있다.
벌써 다섯 번은 더 본 것 같다. 대사를 외울 때까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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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ornus와 함께 하고싶은 새로운 일들을 떠올려 본다.
언제 이루어질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조차 기약이 없지만 우리 둘은 항상 나름대로는 우리만의 프로젝트를 꼼지락거리며 살고 있다.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무언가를 벌이는 한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살아 있기 위해서 꼼지락거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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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집을 나서며 ornus가 당부한 말.
“난 그저 당신이 행복하길 원하는 거야.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자기랑 나랑 웃기 위한 거야.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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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겨울이 오고 난 후 12월 한 달 몸이 많이 힘들었다. 내 몸이 겨울을 이렇게 많이 탄다니…ㅠㅠ
여름 햇빛 쏟아지는 날을 내가 이렇게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 살 때는 덥고 습한 여름이라 여름을 기다려본 기억이 없는데
구름이 많은 겨울을 지나는 지금은,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청명한 시애틀의 여름이 너무나도 간절히 기다려진다.
..

잔잔한 영화를 보며 누웠는데, 창밖의 파란 하늘 때문에 기분이 좋다.

2월 초면 꽃이 피는 시애틀의 봄을 기다리며, 호수와 강으로 놀러갈 청명한 여름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는 종일 나른하고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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