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 솔로 앨범 듣다가 잡담

RM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인 ‘들꽃놀이’에서 보여주는 생각은 사실 내가 아예 깊이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는 젊은 친구들의 음악이 보여주는 생각보다는 한 단계 더 걸어가고 있긴 하지만(그렇기 때문에 내가 들어보는 거고), 그 이상의 무언가 고유성을 가지고 내 생각에 파고드는 부분은 크게.. 없다. (여담인데 BTS의 다른 멤버, 진이 낸 솔로곡은 그건 세상에 대한 진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 색깔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류의 음악과 우주를 향한 생각은 그냥 콜드 플레이가 주야장천 보여줬던 색깔이기도 하며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이 만든 세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진이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 곡이 좋은 곡인건 만든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뜻일 뿐. 이런 게 바로 운이 좋은 인간의 삶이란 거다.)

다시 알엠 타이틀곡으로 돌아와서.

한 인간이 자신이 그저 한 인간인 모습 이상의 박수갈채를 세상으로부터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자아가 비대해질 때, 자신이 밟고 선 땅이 하늘로 솟을 때, 자신 이상의 환호가 자신을 붕 띄울 때, 성찰하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나는 나 이상일 수 없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과잉의 환호가 인간인 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알아야 성찰적인 사람인 거다. RM의 솔로 앨범의 주제가 보여주는 것들이 이런 거다. RM은 성찰적인 인간이라면 마땅히 하게 되는 그 생각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그동안 불려진 세상의 모든 노래들이 말하지 않은 영역에 발을 내딛는, 세상을 확장하는 특별히 고유한 것인가? 질문해봤을 때는 딱히 그것까진 없다.

인간이 자신 앞에 자신이 예상한 삶 이상의 삶이 쏟아질 때 작동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나’를 확보해나가고 싶다는 욕망이다. 나 이상의 환호가 나한테 쏟아지는 게 과연 좋기만 한 일인가? 아니다. 성찰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과잉된 환호가 나를 찌르고 나의 자아를 부순다는 걸 알게 된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환호를 받게 되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나 자신을 지키는 노력에 실패한 스타들이 마약에 빠지거나 섹스에 빠지거나 탐닉에 빠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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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태지가 떠오른다. BTS가 받은 환호는 거대한 외국의 세상으로부터 밀려온 박수갈채지만, 서태지가 받은 환호는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없던 대중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에게 쏟아진 지대한 환호다. 서태지의 음악은 젊은 세대만의 세대성을 확인시키고 그 이전까지의 한국 대중문화와와 결별하고 그 다음 세대의 한국 대중문화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과정에서 쏟아진 거대한 관심이기 때문에, 박수갈채 그 이상의 비난과 반대가 뒤따랐다. 이건 단지 대중음악의 영역이 아니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집단의 구호보다 중요해지는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징후로서 출현한 아티스트가 서태지이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서태지를 굉장히 적대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BTS가 앨범을 내면 앨범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얼마나 유명한 무대에서 초청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내주는지 뉴스들이 쏟아지는데, 서태지가 서태지와아이들로 활동할 때는 새앨범이 발표되는 날마다 TV 뉴스에서 서태지를 뜯고 씹기 위해 코너를 할애해 난리와 비난과 환호와 갈채를 동시에 쏟아냈다. 한 인간이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태지의 노래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때 주로 젊은 세대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뱉어내면서도 점점 갈수록 특히 솔로 1집부터는 그 주제가 확연히 자신의 자아를 파고드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서태지가 자신의 자아를 파고든 방식은 분열적 양상인데, 서태지와아이들 시절 ‘제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분열적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하다 솔로 앨범으로 갈수록 자아에 대한 탐구가 더 집착적이 되다못해 나중엔 암호처럼 변해간다. 한 인간이 자신이 받은 과잉 관심으로부터 자신의 인간됨을 보호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방식인 거다. 서태지는 게다가 미국에서 비밀결혼을 한 것도 이런 양상에 불을 지핀 셈이 되어 그의 노래 가사는 솔로앨범에서 점점 더 타인이 해독 불가능한 암호 같은 단어와 문장을 쏟아놓게 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욕망을 강렬하게 갖게 될 때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서태지의 이런 집착적인 자아 탐구는 나중에는 내게 피로감과 회의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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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알엠 솔로 앨범.

물론 난 지금도 이 앨범의 몇몇 곡을 즐겨듣고 있고 특히나 이이언의 음악적 색깔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이언이 함께 작곡하고 편곡한 노래 ‘Change pt.2’는 굉장히 자주 듣고 있다. 사랑도 친구도 사람도 세상도 모든 건 변한다는 이 노래 가사도 내겐 특별히 새로운 생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없다.

알엠은 얼마 전에 어떤 방송에서도 자신은 한 사람을 평생 동안 사랑하는 결혼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아마도 그는 사랑과 욕망의 차이에 대해 깨닫게 만드는 관계를 경험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 욕망이나 케미스트리 다음의 여정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은 욕망이나 케미 다음 세상이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랑은 서로가 구축해나가려고 만들어가는 어떤 세상을 향해 노력하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알엠은 사랑이 욕망이나 케미나 끌림이라는 것까지만 생각해봤기에 사랑이 일종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의지’라는 걸 몰라서 그런 거다. 욕망이나 케미나 끌림은 사랑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이후가 중요하다. 그 이후는 ‘의지’의 세계다. 세상을 같이 만들어나가려는 의지. 약속을 지켜나가려는 의지. 신뢰의 세상을 창조하려는 의지. 일종의 창조와 창작에 대한 의지다. 윤리적 삶을 창조하려는 의지. 내가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 의지가 있으면 사랑은 평생 동안 가능하다. 욕망과 케미는 호르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고 호르몬은 생물학적으로 유효기간이 있다. 신비로운 일은,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와 함께 욕망도 영원히 지속된다. 하지만 사랑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호르몬이 끝나면 욕망은 끝나는 거다. 의지가 있는 인간이라면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의지의 문제라는 걸, 한 세상을 창조하려는 의지의 영역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22-12-29 at 오전 10:34

    사랑이 의지의 영역이라는 말, 너한테 처음 들어보네. 넌 그만큼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려. 나도 반성하게되네.
    Rm이 결혼이 자신 없다고 했구나. 사랑 자신 없어서 비혼. 이건 걍 요즘 젊은애들의 흔한 생각인건지 rm이 똑똑한건지. 한편으론, 평생 한사람 사랑할 자신 있다고 깜냥도 안되면서 대책없이 결혼을 흔하게 해대던 우리 세대보다는 진보?했다는 생각도 들고. 니기 말하는 욕망이나 케미 다음의 사랑이 공감은 된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내 딸 유라가 방탄 팬이어서 rm에 대해선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고픈 의지가 깔려있나보다 나에겐ㅎㅎㅎ
    요샌 더보이즈도 좋다 하고ㅎㅎ 나보고 인피니트 올드하다고ㅎㅎㅎ
    서모 오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며칠전 내가 재벌집 막내아들 정주행했거든. 내가 원래 심은하 다음으로 동일시하는 배우가 송혜교이기에 난 지금까진 송중기 비호감이었어. 세상이 중기 불쌍하다고 혜교를 욕해도 난 중기 안티였지. 근데 재벌집 비서 수행 역할이 너무나 잘어울리고 배우로서 정이 가기 시작함. 영국 싱글맘 애인 소식도 왠지 월드스타같은 스캔들로 느껴지고ㅎㅎㅎ
    삼천포로 빠졌는데 난 재벌집막내아들에 나온 서태지 얘길 하고싶었어ㅎㅎ 내가 사실 서태지 비호감이었다가 너를 통해 조금더 알게되며 인정하거든. 근데 90년대 배경 드라마에는 왜그렇게 껄렁껄렁 희화화된 이미지로 나오는건지ㅜ 여자애들이 질질 짜기만 하고ㅜ 암튼 태지 팬들이 보기엔 불편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겠다싶어.
    여러가지 수다가 뒤죽박죽인데 읽어줘서 고맙ㅜ

  2. wisepaper said on 2022-12-29 at 오전 11:39

    제가 그동안 ‘의지’란 단어만 안 썼을 뿐 사랑이 욕망과 다르게 ‘책임을 만들어가는 윤리’의 영역이란 글은 굉장히 자주 써서 언니도 가랑비에 옷 젖듯 무의식적으론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에요. 네 전 끌림은 욕망의 영역이고 사랑은 윤리(의지를 가지고 만들어가는)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윤리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알엠 같은 요즘 세대들이 이전보다 진보한 건 맞죠 사랑과 결혼에 대해. 예전엔 아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남들따라 결혼을 한 건데, 요즘 세대는 그래도 “내가 과연 사랑과 결혼에 적합한 인물인가?” 고민은 해본다는 거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분명 진보인데, 요즘 세대 중에 그 다음 단계로 갈 줄 아는 성찰적인 사람들이 많은가 그 점은 회의적이에요. 분명히 저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사랑과 결혼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윤리와 의지의 영역인 사랑을 해낸다는 게 모두가 이런 성찰이 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근데 이 진리를 깨달은 경험을 한 친구들은 사랑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건데 거기까지 가기 너무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요즘 친구들은 아예 내가 왜 사랑을 해야돼? 그깟거 필요 없어 태도거든요. 게다가 결혼은 더더욱 이제 경제적인 영역이 되었기에 김영하 말대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갖춰진 사람만이 결혼으로 들어가는.. 결혼이 사치품인 시대마저 되어버렸고. 물론 경제적인 거 갖춰져도 난 한 사람에게만 얽매이는 결혼은 못한다고 보는 자유분방한 세대들도 전 다 이해하고.

    태지오빠야 뭐 워낙 시대적 아이콘이었으니 시대적 아이콘인 사람과 그 시대는 정형화된 채로 때로 희화화되기도 하고 그러는 거니까요. 시대적 아이콘이기 때문에 희화화되는 거지 아이콘이 아닌 사람을 희화화할 순 없으니까. 드라마하니까 생각나는데 응답하라 94에서 성시경이 ‘너에게’ 리메이크해서 부르게 됐을 때 성시경한테 서태지가 문자 메세지를 보내 설명해주고 목소리 넘 맘에 든다고 그랬대요. 하지만 문자는 시경 본인이 아니라 회사 번호로 보냈다고. 제 친구랑 저랑 성시경한테 미운정이 들어있어서. 욕하면서 정들어 있는 동네 남사친 같은 인간인거죠. 원래 남사친은 씹으면서 친하게 지내는.. 갑자기 급성시경.

  3. wisepaper said on 2022-12-29 at 오전 11:52

    근데 방탄도 유라가 좋아하기엔 이미 나이가 아저씨들이거든요 ㅎㅎㅎ 신기하네요. 요즘 여기 미국 중딩들은 스트레이 키즈 좋아하는 거 봤어요. 유라는 게다가 초딩. 우리 동네 돌아다니다 보면 초등학교 여자애들 미국애들이 저한테 한국인이냐며 걸그룹들 줄줄 얘기하면서 나보고 아냐고 물어요 ㅎㅎ 여자애들이 걸그룹 좋아하고 동일시하며 크는 그런 시기거든요. 귀여워요.

    • 심은하 said on 2022-12-29 at 오후 12:05

      ㅎㅎㅎ 성시경 그런 일화가 있구나.
      요즘 애들 연애랑 결혼 사치..맞아. 내 사촌동생도 30대 의사인데(여자) 이모가 선보라고 난리치니까 사짜 아님 선 안 보겠다고. 공무원도 싫다고. 근데 이건 백퍼 결혼 싫고 선보기 싫어서 핑계임ㅎㅎ
      솔직히 난 유라가 결혼 안했음 좋겠어. 사랑도 두렵긴 해. 이상한 남자 만나서 데이트 폭력? 헤어질때 스토킹? 당할까 극단적인 걱정이 먼저 들고..레즈나 돼라ㅎㅎㅎㅎㅎ
      맞아 방탄도 내가 봐도 올드하지. 근데도 유라네 반에 좋아하는 여자애들 아직도 있더라고. 스트레이 키즈도 한때 좋아했어. 유라는 걸그룹은 안 좋아해. 걸그룹은 유딩때까지 공주놀이 하던 애들이 초딩 가서 걸그룹 놀이 하는건데. 유라는 애기때도 공주 극혐자였어서ㅜㅜ

  4. wisepaper said on 2022-12-29 at 오후 12:12

    유라 공주 극혐자인거 넘 웃겨요 유라 캐릭터 있으심. 언니 닮아서. 유라가 이 그룹 저 그룹 아주 갈아치우며 섭렵하는 좋은 모습 보여주네요. 남성편력 ㅋㅋ 그래요. 순애보일 필요 있나요. 이남자 저 남자 계속 바꾸라고 하세요 화이팅. 공주 극혐에 남자는 갈아치우며 그렇게 살아야지 여자는. 남자놈들만 조신하게 살면 돼요. 언니 저도 딸 있으면 상대 남자놈이 과연 좋은사람일지 굉장한 회의가 들거 같아요.

    • 심은하 said on 2023-01-01 at 오전 12:27

      의외로 요즘 초딩 여자애들 태연과 아이유 팬 많아ㅜ 태연과 아이유는 내가 봐도 올드한데 왜 초딩 여자애들이? 신기하고 궁금해지는 현상이야ㅎㅎ 유라 사촌언니도 6학년인데 3년째 태연 광팬. 초4 밑으론 아이브나 여자아이들 따라하고. 유라도 아이브랑 여자아이들 노래는 듣고 누드인지 머시긴지 열심히 듣길래 식겁(정말 나 올드하네ㅎㅎ).
      그래도 태연 목소리는 소시 시절부터 비호감은 아녔는데. 아이유는 목소리가 영 내 취향 아니어서 별로지만..유라 또래들의 스타이니 어디가서 욕 못하고 나도 아이유 싫어하지는 않은 상태가 되었어ㅎㅎ
      유라가 자기도 아이유 콘서트 가보고싶다고ㅜㅜ

  5. wisepaper said on 2023-01-01 at 오전 5:30

    태연은.. 초딩들이 놀토 잘 봐서 그런거 아닐까요? 초딩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일 수 있어요.
    아이유는 저는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뭔가 한꺼풀 씌워진 방식의 창법이라서 저는… 취향이 아닌 거 같아요. 여자 가수가 열심히 살아주는 거는 고맙죠. 그냥 제 취향이 아닐 뿐… 여자들만 알아보는 그 무언가 있잖아요. 진솔한 스타일이 아니라 무언가 항상 겉에 씌우고 있는 느낌이 있는. 그냥 저는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편히 보이는 여자들에게 끌리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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