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언어의 번역, 인간과 인간의 사랑
말라르메는 인간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에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언어와 언어 사이를 헤맨 사람들은 거꾸로 인간의 언어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개의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서로 겹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언어는 ‘눈’에 해당하는 낱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낱말로 ‘함박눈’에 해당하는 말을 가진 언어는 많지 않다. 한 언어가 적시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언어는 적시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산이라 부르고 어떤 것을 들이라 부르고, 그렇게 말로 분별되는 세계는 그 분별하는 말만큼 확실한 것이 아니다. 말에는 그렇게 부르기로 하는 정식 계약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부르기로 양보하는 이면 계약이 있다. 언어는 통일될 수 있어도 이 이면 계약은 통일되지 않는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것이 다른 부류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되며, 어떤 언어로는 절실한 진실에 다른 언어는 관심조차 없다. 언어가 서로 만날 때 이 불확실한 것들이 솟아올라와 산과 들을, 사랑과 증오를 새롭게 고찰하고 새롭게 정의하게 한다.
진리는 늘 새로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한 언어의 관점에서 다른 언어는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숨은 진실을 쌓아놓는 저장고와 같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중에서
언어와 번역에 늘 깊이 천착해온 학자인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글을 읽다가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를 잇는 번역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윗 글에서 ‘언어’를 ‘사랑에 빠진 한 명의 인간’이란 단어로 대체해서 읽어봐도 정확한 진실에 도달한다.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인간’이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의 언어’와 ‘다른 언어’가 만나 번역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나의 언어와 다른 언어의 차이는 한 명의 인간과 다른 인간의 차이만큼이다. 하나의 언어에 ‘함박눈’이 있지만 다른 언어엔 함박눈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한 명의 인간에게 있는 어떤 것이 다른 한 명의 인간에겐 없을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이 적시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한 명의 인간은 적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한 명의 인간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넘어가질 수 있다. 한 언어에게 확실한 것이 다른 언어에게는 불확실한 일이 되듯, 한 명의 인간에게 확실한 것이 다른 한 명의 인간에게는 불확실한 것일 수 있으며, 한 명의 인간에게 절실한 진실이 다른 한 명의 인간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언어와 언어가 서로 만날 때 불확실한 것들이 솟아올라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고찰하고 새롭게 정의하게 하듯 한 명의 인간과 한 명의 인간이 만나서 생기는 다름에서 오는 불확실성이 새로운 세계의 진리를 발견케 한다. 우리가 아주 똑같다면 사랑에 빠지기도 힘들지만 사랑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닿을 수조차 없다. 모든 새로운 세계는 다름이 선사하는 불안과 불확실성, 고통을 통해 발견된다.
인간이 나와 다른 한 명의 인간을 통해 자신이 여태껏 알았던 진실과 가장 많이 다른 진실을 새롭게 알기 위해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보통 우리는 ‘다름’을 쉽게 배척하게 되고 귀찮게 여기지만, 사랑할 때만큼은 사랑이라는 마취제 때문에 끈질기게 그 다름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제 없이 누가 고통을, 귀찮음을 참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일종의 병이며 약이다. 다름을 감내하는 병이며 약이다. 다름을 감내하면 새로운 세계에 닿는다. 이전까지 나의 자아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진실과 진리에 귀기울인다. 아무리 귀기울여도 ‘다름 – 차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가장 하나가 되는 것같은 순간인 섹스에서도 완벽한 합일보다 약간 남은 미궁의 세계가 다음을 갈망하게 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약간 남은 ‘다름’의 세계가 계속해서 관계의 다음을 이어가게 만든다.
더이상 상대의 다름을 알고 싶지 않을 때, 상대의 다름이 이해하고픈 미궁이 아니라 관심 두고 싶지조차 않은 성가신 일이 될 때, 아마 사랑이라는 병은 끝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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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지금의 내 상황에 맞는 글이 올라왔네ㅜ
너는 어떤 상황에서 이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5년간 하던 독서모임을 그만뒀어.
단톡방에 그만 두는 이유만 말하고 대답도 안 듣고 나와버리고. 멤버들 연락처 다 차단하고.
안 좋은 일이 있던거도 아닌데 이렇게 매정하게 연락처들을 차단한건, 전에도 한 번 나왔었는데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했던 멤버들이 있었어서. 그래서 이번엔 다 차단ㅜ
어느 순간부터 독서모임 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어. 내가 3년 전부터 사업자 등록했잖아. 그 이후로 법이 아주 난해하게 꼬여서 너무 힘든 상황이 왔는데, 우리 아빠만 머리 싸매고 공부하고 고민하시다가 대장암까지 걸리시고ㅜ
너는 이해 안 될수도. 나는 한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야. 뇌도 에너지도 소용량.
너처럼 재테크 본업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워ㅜ
그럼 독모만 안하고 단톡방엔 계속 남아있어도 되는데 굳이 나왔던 이유는, 이 단톡방도 내 인생에 방해가 된다고 느껴졌어. 난 눈팅 스타일이 아니라서. 내 일상이 지연되고 집중이 안되니..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이 모임 멤버들이 모두 다르잖아. 비슷한 멤버가 단 한명도 없어.
사실 난 대학때나 일할 때도 나와 비슷하거나 가치관의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만 있었거든. 그런데 이 모임은 나에게 신세계였어. 화장 안하고 편한 차림으로 카페에 오는 모습들도 너무 아름다웠고. 한명 한명 입을 열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쏟아져나왔었고.
나와 다르면 이해 안되고 싸우고만 싶었던 나였는데, 이 모임에 무슨 화학적 작용의 비밀이 있었던건지 의문이야.
다름의 잔치인데 끝날때마다 공동작품이 탄생되는 느낌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련조차 사라지고 나오게 된 이유는 뭐라 설명될까. 사실 난 그녀들 아무도 다시 만나고싶지 않아.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그 마음을 갉아먹을만큼 지친 사건?들이 많았겠지. 이제는 나에게 해가 될만큼. 사랑이 끝난건가.
근데 전에 얘기했던 은주언니와 미옥언니는 아직도 좋아. 특히 미옥언니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너무 평범한데 전혀 속물스럽지 않은 사람. 평범하면 속물 아닌가? 근데 속물스러움이 안 느껴져. 그런 사람은 처음 봤어.
하지만 미옥언니조차 갠적으로 연락은 못하겠어. 내가 붙임성 없고 사람 잘 못 사귀잖아.
ㄷㄱ한테 어제 얘기했어. 만약 미옥언니 남편이 우연히 자기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같은 자동차 관련업계임) 그때부터 난 세상이 내 편이라고 생각할거라고.
이 글을 읽고 처음에는, 언니가 기껏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을 그만두게 된 게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해봤는데요. 다시 생각해봤어요. 살다 보니까 어떤 인간 관계든 이별이 된다는 건 섭리 같은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언니도 그동안 노력하고 했겠죠. 근데도 그만두고 나왔을 때는 기한이 다한 저무는 관계였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또 다른 길을 걸어가야죠. 그 중 특히 좋은 사람은 인연이라면 다시 또 만나게 될 수도 있구요.
그리고 그런 단톡방에 남아 있지 않은 건 저는 충분히 공감해요. 정말 친한 사람과의 일대일 톡이 아닌 이상, 저도 그런 단톡방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쏟아지는 톡들이 제 삶에 침범하고, 별 의미없는 이야기들인데도 나의 생각에 침범하고 하는 낭비 같은 일들을 경험하고 나니,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오게 되더라구요. 저 역시 그런 성향이 있어요. 내가 의도해서 끌어가야 하는 인간 관계여야 하지, 나한테 중요하지도 않은 여러사람들이 수다를 쏟아놓는 그런 단톡방에 내 생각이나 삶이 휘둘리게 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요. 제 삶은 제가 주체적으로 끌어가야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가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붙임성도 좋고 적극적이에요. 언니도 저한테 이렇게 솔직히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 거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붙임성이 없다는 게 잘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언니가 붙임성 좋아보이는데… ㅠ
언니가 저한테 재테크 본업도 하고 책도 읽고라고 말해서 ㅎㅎ (여담인데 맞아요. 저 요즘 책도 읽지만 제 투자 본업;;에 집중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락장이 금융 자산을 매수해 둬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언니. 살다 보니, 그리고 우리가 점점 나이들어갈수록, 인생의 섭리처럼 헤어지는 사람이 있고 인연을 더 잘 이어가게 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고(이건 점점 줄죠) 그렇게 흘러가는 거 같아요. 언니가 이번에 어차피 그만둔 일에 대해서는 잘했다 생각하고 또 다른 새로운 길로 걸어가보세요. 그리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암튼 붙임성 없다는 언니가 저에게는 만나주기도 하고 그런게 황송하네요 하하
아참, 아버지 대장암은 어떠신 건지. ㅠㅠ 대장암은 췌장암보단 위험하진 않지만, 이게 만약 치료가 되어도 예후를 잘 봐야 하고 굉장히 까다로운 암이라던데.. ㅠㅠ 많이 안좋으신 건지 전혀 몰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아빠 대장암은 수술 전에 의사가 가능성을 열어두었던 다양한 나쁜 상황들보단 괜찮았어. 나는 사실 보호자가 될 수 없는 나약한 멘탈이잖아. 나는 수술 전날까지 동생이랑도 엄마랑도 연락 안했어. 너무 무서워서 견디기 힘들었거든. 모든 상황 전달은 ㄷㄱ가 나에게 해줬고. 수술 전 의사의 말들 편집해서 나에게 전해주고ㅜ
근데 생각보단 심각하진 않았고, 지금은 건강관리 중이셔.
독서모임은 어디든 그렇겠지만 자기계발서류의 멤버가 꼭 있잖아. 자기계발서류의 인간이 나쁘다는건 아냐. 난 오히려 그런 극히 이성적이고 건설적이고 세상의 긍정적인 면만 보는 사람과의 교류도 필요하거든. 내가 워낙 파괴적이잖아ㅜ 배울 점은 있지 그런 멤버에게.
그런데..생활의 태도 면에서 배울 점이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지.
사실 자기계발서류의 멤버는 딱 한명이었어. 근데 그녀의 존재가 이렇게 날 지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S라 지칭할게)
S는 어린 시절의 극한 가난을 극복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자수성가한 앤데.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나약한 인간들이 전혀 이해가 안된대ㅜ 전형적인 한국형 자수성가 부류지.
그리고 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잖아. 치열하게 살아본 적 없는 내가 뭔 할 말이 있겠니.
최근에는 오이가(의사) 쇳밥일지를 읽고 좋았다고 글을 올렸는데, S가 자긴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고ㅜ 자긴 가난 극복하고 대기업 취직했고, 공장에선 용접공들 안전에 신경쓸 돈이 없는건 당연한거니 불합리한건 어쩔 수 없고 등등(난 쇳밥일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이건 걍 s에 대한 예를 든거)
이 대화가 내가 그만둔 이유의 전부는 아니고, 이런 식의 불통이 쌓인거지. 그리고 S는 단톡방에 사교육 정보를 많이 올리거든ㅜㅜ 나는 유라의 기초 학습에는 신경쓰고 있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도 지겹게 회의하는 인간이고ㅜ 한국의 수학 교과과정이 너무 빠르다고, 이게 사교육 열풍도 원인 중 하나라고 늘 불평하잖아. 그럼 S 입장에선 내가 투덜충으로만 느껴지겠지.
근데 멤버중 반 이상은 단톡방에서 말이 없거든. 그러니까 S가 인싸는 아냐. 실상은 독서모임에서 그닥 비중이 없는 멤버야. 그런데도 내가 왜 나머지 모든 멤버들한테까지 정이 떨어진건지는 의아해. 나도 날 모르겠네.
그래도 2년 전까진 국문학도 멤버가 작가들에 대한 게시물을 많이 올렸어서 단톡방이 그렇지 않았는데ㅜ 걔가 탈퇴했거든ㅜㅜ (걔는 리더와의 불화로. 리더가 책을 냈는데 국문학도가 했던 말과 글들을 표절해서ㅜ)
글구 굳이 사교육 게시물들 아니더라도, 세상의 어두운 면을 스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난 그런 사람 못 견뎌ㅜㅜ 단 한 명이라도 못 견디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처음 가입했을 때는 s가 독모를 쉬는 중이었어. 내가 독모 가입한지 2년이 지났을때 s를 처음 만났고.
아버지 심각하진 않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언니, 그 자기계발서류의 인간. 사실 언니는 그 사람을 그래도 높이고 존중해주느라 저한테 그 사람의 성향을 존중하는 표현을 지금 쓰고 있는데요. 저는 그 사람의 그런 문제는 성향으로 여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성적인 통찰이 안되는 인간인 거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통찰력이 쌓여서 세상의 시스템의 불공정함이라든지, 개인 성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사회 구조의 한계라든지 이런 점에 대한 근원적인 사고가 가능해야 되거든요? 그 사람은 그런 사고가 안 되는 인간인거에요. 단지 긍정적이고 세상의 어두운 면을 스킵하고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두둔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ㅠㅠ 하.. 저도 그런 인간 있다면 결국.. 나오게 됐을 거에요. 공부를 하는데 왜,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만 하는 걸까요. 우리가 지성을 쌓는 이유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보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무튼, 언니가 지친 이유는 꼭 한 가지만은 아니겠고 복잡한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저런 사람이 있다면 저도 지칠듯요. 언니도 여러 문제가 쌓여 있다가 누군가 크게 임계점을 건드리면서 참고 있던 게 더이상 참기 싫은 일이 되면서 나오게 되지 않았을까 해요.
그러게 나도 s가 5년 넘게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ㅜ 그렇다고 걔가 대충 읽은것도 아니고 항상 성실했거든. 5년간 책 읽으면서 점점 성찰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멤버는 눈에 보여.
난 S가 왜 우리 독모를 하는건지 가끔 이해가 안 가기도 했어. 비교적 가벼운 책들이 아니거든. 상당히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고. 근데 s가 독해력은 나쁘진 않아. 머리는 좋아서 힘들진 않은건지. 어려운 책 못 버티면 이미 떨어져 나갔을텐데. 그냥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깊은 생각의 여유도 없는 애고. 말할수록 아이러니네ㅜ
뭐 무슨 목적이었는진 몰겠지만 분명한건 독모 멤버들의 학력, 직업이나 남편 직업, 사는 수준 등등의 측면에서 이용의 가치가 있는 멤버들이 많긴 해.
나는 정보교환에 적합한 인맥은 아니잖아. 은근히 내 말 무시하는 것도 느껴졌고. 못되거나 싸가지 없는 애는 아닌데 느낌이 오잖아. 그리고 s도 임대업을 하거든. 내가 한때 너무 스트레스 받았을 때 같이 공부하며 의지할 동지가 필요해서 나도 사업자임을 오픈했었어.(내가 어디가서 내 사업 분야 안 밝히거든. 아무리 내 사업이 코딱지라도 워낙 적폐로 낙인 찍힌 분야라서. 근데 용기내어 커밍아웃했지) 근데 반응이 좀 당황스러웠어. 난 s가 평소에 사교육 정보 공유에 적극적이길래 업계의 정보공유도 도와줄 줄 알았거든. 근데 첫마디부터 뉘앙스가 공유하기 싫은 뉘앙스. 괜히 커밍아웃한거지ㅎㅎ
(재밌는 상황이 떠오르는데, 오이도 적폐로 낙인된 직업인-의사-이기에 2년만에 직업 커밍아웃ㅎㅎㅎ 암튼 오이는 책 읽으며 점점 더 성장하고 있음. 나와 닮은 부분과 다른 부분이 공존하고.)
미옥언니는 고졸이고 공장에서 일했던 분이야. 근데도 그 어려운 책들을 꾸준히 읽어오시고, 사고방식은 진보에 가까워. 여기저기 사회활동도 많이 하시고. 어찌어찌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잘 사셔. 나는 세금 나가는거도 투덜대는데 그언니는 아낌없이 여기저기 뿌려대는 분.
어쩌다 쓸데없는 얘기들 막 나오네ㅎㅎ
암튼 한편으론 자유로워졌지긴 했다 내가.
황헌산 책도 읽어보고프네ㅜㅜㅜ 아 나 이럼 안되는데!
본인이 임대업을 한다고 이미 말했으면서도 언니의 말에, 본인은 입을 싹 닫았다구요. 아… 알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타인에게 이득이 될 만한 정보는 절대 말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사는 게 본인 자유이긴 하지만 저도 굳이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스타일이에요. 그냥 세속적인 사람이네요. 개인의 능력과 자수성가의 신화를 믿는 세속적인 사람.
아무튼 언니가 나름 매력적인 사람도 만나고 괜찮은 사람들도 만났던 모임인데 끝나게 된건 아쉽지만 인간 관계란 게 시효가 끝나갈 때가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섭리. 이런 삶의 섭리 가운데서도 오래 가고 자연스럽게 오래 지켜지는 인연들이 그래서 소중한 거 같아요.
음..나도s가 세속적 스타일이어서 싫다는 생각, 내 머릿 속에 세,속,적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적이 있지만 금새 지워냈던건 나 역시 세속적이지 않은 인간이라 할 수 없기에..물론 나는 s보다는 조금 어리버리하고 손해도 가끔 보고, 글구 쇳밥일지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공감은 되지만. 가끔은 내가 부족함 없이 고생 없이 자라서 덜 세속적인건지 궁금하기도 했어.
기생충의 조여정..별로 세속적이지 않잖아(물론 나는 기생충의 조여정에 비하면 가난한 집 딸이지만). 반지하에 사는 기생충들이 세속적으로 그려졌잖아. 누군가를 세속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살아온 과정이 물질적으로 궁핍한 적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여유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
근데 니 댓글 보고 생각해보니 오군님은 어려운 환경이었던 시절 겪고 자수성가한 케이스이니 꼭 그렇지도 않겠다.
가난하게 살았건 아니건간에 타고난 인문학적 소양의 차이인건가.
글구 난 관념론자잖아. 관념론자들이 관계에서 좀 이기적이기도 한게, 난 속편하게 떠나고도 머릿속으로 자유롭게 그녀들을 만나고 있거든. 특히 지금 오이의 충격이 클거야. 오이가 참 나를 많이 따랐어. 내 팬이고. 내 블랙유머에 열광하고. 걔는 친정이 너무 가난해서 소녀가장 의사였어. 전형적 이과생, 수학 과학 덕후인데 철학에 대한 목마름이 강한 애고.
미옥언니는 마니또 선물교환때 나에게 그림책과 잠옷을 줬었거든. 나 지금 미옥언니가 준 잠옷 입고 있고. 그 그림책 영원히 안 버릴거고. 불안에 시달릴 때 미옥언니의 느긋하고 온화한 표정을 떠올릴거고. 내가 비과학적 비논리적 강박에 시달릴 때 오이의 핀잔을 떠올릴거고. 암튼 난 관념적 만남이 편해. 어차피 죽으면 천국에서 영혼으로 만나는거고ㅎㅎㅎ
성규의 덤덤한 표정도 자주 떠올려. 관념적 덕후야ㅎ
그리고 너도 못 만나지만, 누군가와 협상할 일이 생길때마다 널 떠올리면 힘이 돼. 너도 내 관념적 인맥의 한 명ㅎㅎㅎㅎㅎ
네. 타고난 인문학적 통찰력의 차이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오군이나 저나 어렵게 살 때나 여유 있게 살 때나 힘들 때나 쉬울 때나 환경이나 사회의 구조 때문에 개인의 노력이 막히는 삶에 대한 통찰이 늘 있었던 걸 보면요. 그리고 은율이 같은 어린 아이도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통찰이 있는데 지금보도 훨씬 어릴 때 이런 적이 있어요. 자신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가보고 맥도널드 같은 데도 가 보고 느낀 건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더 싸움이 없고 너그러울 수 있고, 맥도널드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더 분노나 문제를 만들기 쉬운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이 그렇기에 여유가 나오는 거고 삶이 빡빡한 사람들은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거라고. 그들도 환경이 바뀌면 또 다른 표출을 할 수 있다고. 개인의 문제를 단지 개인 인격의 문제로 보지 않고 뒤에 있는 환경과 사회 구조의 문제를 보는 말을 하더라구요. 이런거보면, 확실히 통찰력은 타고나는 소양이 큰 겁니다;;;;;
오이님과 미옥님 같은 이런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독서모임 정말 좋았네요. 그리고 언니의 관념론자로서의 삶은 저는 분명 배울 필요가 있어요. 유물론적으로 만지지 않아도 관념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 ㅎㅎㅎ 아니 근데 저는 협상할 일이 생길 때 떠올리는 건가요. ㅎㅎ
오..은율이는 분석력이 있구나. 속이 깊네.
협상할 때 내 본래 캐릭터 그대로 나가면 슈퍼 진상이 되거나 바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지ㅎㅎㅎ 다른 누군가를 꼭 떠올려야 해. 전에 무언가 협상?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떠올린 사람이 우리 아빠랑 너야. 협상 전 멘탈관리로. 뻔뻔함과 유들유들함을 장착하기 위해 난 김모씨의 딸임을 속으로 되뇌었고. 너를 떠올리면 강단이 생겨.
아마도 강해져야 할 순간에 너를 떠올리는 사람 좀 있을 것 같아.
그렇군요. 강해져야 할 순간에 저를 떠올려야 한다는 말이.. 기분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