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시와 한국 입시 잡담
요즘 한국도 대학입시를 끝냈거나 원서를 넣는 시즌이고 미국도 역시 대학원서를 넣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입시철이다보니, 인터넷에서 종종 가는 한국 커뮤니티도 입시 얘기가 자주 나오고, 종종 가는 미국 커뮤니티에서도 입시 얘기가 흔하게 나오고 중.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한국은 여전히 이과에서 탑순위를 다투는 고등학생들이 전국에 있는 의대 먼저 지원해서 의대에 몰리고, 그 다음이 이공계, 그러니까 이공계에서 탑순위를 다투는 과는 컴퓨터공학이나 컴퓨터과학 전공이므로, 이과대 최고점자들이 의대 먼저 몰리는 현상이 눈에 띈다.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전교권에 드는 아이들, 그중에서도 가장 성적이 높고 이과적 머리가 비상한 천재과 아이들은 대부분 컴퓨터사이언스나 컴퓨터엔지니어링부터 지원하고, 그리고 컴퓨터과학과 관련 있는 다른 학문, 물리학, 수학, 아니면 다른 공대부터 지원한다. 보통 알려진 대학교들 컴퓨터과학 전공 합격률이 5퍼센트 미만일 정도로 많은 이들이 진학을 원하는 전공이다. 미국에서 의대는 학부 과정에 없고 대학 가서 자신의 사명감이나 적성에 따라 나중에 의대 대학원을 진학하는 아이들이 따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중에 의대 대학원에 가고 싶은 아이들은 학부는 생물학과에 주로 진학한다. 미국에서 두뇌가 비상하고 천재적인 아이들은 컴퓨터과학이나 물리학, 아니면 전자공학, 기계 공학, 화학 공학, 생명 공학 같은 다른 공대를 진학하는 게 자연스런 수순이다.
사실 의사가 되는 데 비상하고 천재적인 머리가 필요한 건 아니고, 사명감과 끈기, 엉덩이로 밀어붙이는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한 것뿐이다.
비상한 두뇌는 공대나 과학 쪽으로 지원하고, 엉덩이 힘이 있는 애들은 의대 대학원 쪽으로. 미국은 이 길이 확연하게 갈린다. 학부모들도 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이게 어떤 중요한 차이를 가지고 있냐면,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힘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테크 산업의 선도, 과학기술 산업의 선도라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테크 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되고,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힘도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머리 좋은 아이들이 의대 가서 결국 하는 일은 피부과 성형외과에서 보톡스 주사 놓고 리프팅 시키고 성형수술하면서 남은 일생을 보내는 거다. 한국에서 유독 피부과, 성형외과 산업이 발달한 기현상부터 병리적이지만 이 병리성이 추구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불행한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남들만큼 살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사회에서, 이제 얼굴도 남들처럼 생겨야 되는 소름끼치는 인식들이 사람들에게 너무 흔하게 퍼져 있다는 것부터가 병적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게 얼마나 병적인 건지 잘 모른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병이 든 건지, 이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져서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입시에서부터 이런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미국에선 공대에 진학해 테크 산업에 종사해서 성공할 길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고 테크 산업 종사자들의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에, 머리 좋은 아이들이 공대에 진학한 보상을 사회에서 충분히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 보상이 안 되니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가 인생 목표가 돼버린 거고. 한국에서는 이제 소아과 의사도 거의 사라지는 추세고 가장 중요한 분야인 외과적 수술을 담당할 외과 의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선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소득이 높은 의사들은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 의사, 신경외과 의사 같은 정말 생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의사들이다. 미국 의사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분야는 이쪽이지, 남들 미용 성형이나 피부관리나 시켜주면서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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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고 미국 영주권자라서 한국 시민이다. 여전히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내 나라이고, 내가 미국에서 번 돈을 앞으로 쓰면서 살고 싶은 나라도 한국이기 때문에 내가 한국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는 ‘내 나라’이기 때문에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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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갈수록 걱정돼. 내가 살던 대도시도 원래는 애들이 병원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동네였고 대학병원 한개 더 생겼는데도 요즘에는 아이가 열나면 갈 곳이 없어졌어. 맘카페에 응급실 갈 곳이 없다는 글들이 많이 보여.
내가 아는 두명의 의사, 그 중 오이는 기피과 의사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항상 한숨 쉬는 애였고. 한명은 사촌동생, 지금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를 하고 있는데 늘 내가 응원하고 있는 동생. 너무나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ㅜ
기피과 의사수 부족에 대해선 오이에게 들은 말들이 많아서 인터넷에서 의사들에 대한 비난글, 논쟁들이 나오면 난 판단은 안 해. 요즘엔 걍..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선 어떤 분야건 의견 갖지 않는 자세야.
그런데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이과생들이 피부과 성형외과로 빠지는 이 현상에 대해선 니 글에 깊이 공감한다. 이상한 나라..비정상적 나라..머리 좋은 수재들이 유익한 곳에 쓰이지 않고 철학의 부재에 더 깊은 구멍을 파는데 쓰이다니..
에휴..오군같은 인재를 잃은 나라인데 뭐…
전에 내가 얘기했던거 같은데 키성장 주사…한국 엄마들은 그거 안 맞히면 욕 먹잖아. 동네 엄마들도 흉보고 내분비내과 의사도 이상한 엄마 취급을…
그것만 이상하냐. 애들 정신 망쳐놓기 쉬운 입시환경에서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들도 많아지고ㅜ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소아과는 사라지고 소아정신과랑 소아내분비과는 번창하는 듯..
이렇게 자란 애들이 커서 피부과 성형외과 열심히 다니겠지ㅜㅜ
그러니까요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든 문제요. 소아과 없어서 큰일이고, 급한 흉부외과적 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서 당장 몇 년 후 한국에서 흉부 질환 같은 거 심각한 거 생기면 생존하기 힘들어진대요. 기피과 의사수 계속 줄어드는데 아무 대책이 없는..
키성장 호르몬 주사 문제. 그게 지금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전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요즘 강남 애들이 한 반에 반 가까이가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고 하네요. 키가 왜 남들처럼 커야만 행복한 사회인가? 한국 사회 불행의 이유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에요. 미국 의사들은 성장 호르몬 주사 안 줘요. 몇십년 후 부작용 문제 때문에 거의 절대 처방하지 않는 주사 중 하나입니다. 근데 한국은 대부분 처방해준대요.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혀서라도 남들만큼 커야 남들에게 안 밟히고 생존할 수 있는 나라이니 이걸 어떻게 해요. 지금 한국 출생률 진짜 재앙 수준이에요. 근데 이렇게 살기 힘든 사회에서 애 낳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애 안 낳는 그 심정이 저라도 이해 가니까요. 몇십년 후 국가 존속 자체가 위험할 수준의 출생률인데, 20,30대들 애 안 낳는 거 이해가 가거든요. 살아남기 위해 극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환경에 놓인 동물인거에요 지금 한국 젊은친구들이. 제가 돌아가서 살아야 할 나라이고 제가 가장 애착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저는 정말 진심으로 한국 걱정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