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뛰게 하는 일, 진리에 대한 기대
밑에 글 리플에서 심은하님과 한국의 출산율 문제와 삶의 다양성이 존중되기 힘든 현실, 아이 교육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정리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글을 쓴다.
심은하님 말처럼 현재 나는 아이들이 가진 본인 고유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이 본인들 스스로에 맞는 길을 찾아서 걸어갈 수 있게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응원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아이가 무슨 길을 원하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그 자체로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근데 이런 나의 소신과 꿈이 크게 좌절되지 않는 이유는 이 사회의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분도 중요하다는 걸 인정한다.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데, 나 자신 홀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그 의지를 꺾지 않고 살아남기란 굉장히 고독한 일이고 결국 넘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은 개인들과 그리고 함께 연대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회에도 다양성이 보존된 채로도 살아갈 수 있게끔 시스템들이 변화하지 않을까가 내 생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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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들어가서, 현재 은율이가 몇년 째 꾸준히 관심 갖고 있는 분야가 천문학 혹은 천체물리학인데(astronomy와 astrophysics), 만약 한국에서 이 전공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 일단 천문학 관련 학과를 가진 학교 자체가 전국에서 6-7군데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이 전공을 해서 교수가 되는 아주 좁은 길을 빼고 나면 연구소 숫자도 적고, 게다가 언제 정부에서 연구소 프로젝트 자체를 무효화시킬지 모르는 행태를 겪을 수 있으며(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관련 과학 프로젝트 하나를 아예 없애버렸음. 긴말 생략), 주변에서 굶어죽기 딱 좋은 전공이란 말을 듣기 쉬울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에서도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전공인 컴퓨터사이언스나 의학대학원 같은 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실용적인 학문인 건 맞지만, 그래도 미국은 한국과 차원이 다른 다양한 진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서 밀어주려는 나의 의지가 꺾이지 않고 날개를 달 수 있는 거다.
미국이 전세계 1위 국력을 유지하는 국가인 한 우주- 항공 산업과 관련된 분야는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주도해야 한다는 선도 분야에 대한 책임과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분야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가 곧 국가 경쟁력을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미국이 국가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나사( NASA) 같은 국가 기관에서도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테슬라의 일런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 X’라든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만든 ‘블루 오리진’ 같은 사설 기관에서도 사활을 걸고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우주에 대한 연구이다.
그러므로 나는 은율이가 훗날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을 전공해서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적극 지원하고 있고, 지원할 생각이다. (물론 아이의 꿈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든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면 기꺼이 새로운 길을 지원할 거고, 언제 생각이 바뀌든 현재 몰두하는 분야에 쏟은 노력과 쌓인 경험이 한 인간의 자산처럼 쌓인다는 걸 믿기 때문에 나중에 진로가 바뀌어도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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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성향을 가진 은율이의 특성상 많은 시간 얼굴을 맞대고 함께하진 않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은율이와 깊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곤 하는데, 은율이가 처음으로 의미 있게 우주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유한하게 사라지고 소멸하고 그 주기가 다 한정돼 있다. 그리고 짧다. 이렇게 모든 게 유한하게 사라지고 또 금방 바뀌는 세상 속에서 자신은 정말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은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창의적인 일은 별을 발견하는 일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을 때, 나는 은율이 생각에 가슴이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 지난 번 LA 여행 때도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에 방문했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은율이의 관심사를 지원할 방법을 찾다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천체 물리학 캠프를 검색하고 찾아본 끝에 이번 6월에 버클리대학교(UC 버클리)에서 이뤄지는 천체 물리학 캠프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 6월 말에 일주일 간 은율이는 버클리대학교에서 합숙하면서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일주일 간 우리는 실리콘밸리 근처 호텔에서 묵으면서 나와 열음이는 여행을 하고, ornus는 실리콘밸리에 간 김에 일주일 간 본사로 출근하기로 이미 결정을 해놓은 상태이다.
앞으로도 매년 나는 은율이에게 미국 전역 그 어디에서든 양질의 우주 관련 캠프가 있다면 최대한 보내줄 생각이고, 미국 동부, 서부, 중부, 북부 어디서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고 생각을 교류하고 정보를 얻고 동기부여를 강하게 얻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데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별이나 우주를 연구해서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다든지, 대학교 연구실 교수에게 연락해서 논문에 어시스턴트로 참여한다든지 하는 게 미국 대학 입시에 중요한 특별활동(EC)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분야 덕후라서 천체 망원경에 대해서도 정말 잘 아는 오군의 후배(현재 아마존에서 일하는)에게 조언을 얻어서 천체 망원경도 구입할 생각이고. 아이에게 별을 관찰하는 기회를 주고 싶다.
은율이도 이런 전공을 하려면 당연히 좋은 연구 기구나 인맥이 뒷받침되는 훌륭한 대학에 진학하는 게 좋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런 분야에 관한 자신만의 이력을 쌓아서 대학 입시에 대비하는 게 좋다. 그리고 꼭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들이 인생에서 좋은 자산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훗날 만약 관심사가 바뀌어, 다른 길로 간다 해도 나로선 아쉬움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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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망설임 없이 아이의 꿈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일 뿐)
먼저 나는, ornus와 내가 열심히 돈을 벌려는 이유가 사회와 우리 자신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생각의 자유, 진로의 자유를 선물해주기 위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망설임이 없는데 이 분야가 정말로 뛰어난 두뇌가 뒷받침돼야 하는 분야라서 혹시나 아이가 본인이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런 부분에서 나중에 좌절하게 될까, 그 정도의 걱정만 있을 뿐이다.
천체 물리학은 수학과 물리학(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등등)을 기반으로 한 학문이고 순수과학에 가깝기 때문에 공대 같은 응용 전공에 비교해서도 남다른 두뇌의 역량이 필요한 전공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은율이가 별다른 선행이나 사교육 없이도 학군에서 실시한 테스트에서 영재에 속한다는 판정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게 곧 저런 어려운 학문의 길을 가도 된다는 보증이 되진 않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걱정이 좀 들긴 하지만.. 언제든 길을 바꿔도 되고,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다보면 수학, 컴퓨터과학과 연계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순수과학 쪽으로 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라, 테크 업계 같은 인더스트리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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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중요한 건 가슴이 뛰는 일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나 또한 은율이와 함께 우주에 대해 찾아보고 아이를 뒷받침해줄 기회들을 찾아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뛰고 있다. 나에겐 이런 게 가장 중요한 거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유한하고 덧없는 세상에서 느린 호흡으로 우주의 역사를 바라보며 탐구하는 진실 속에서 인간의 현재 위치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아주 소중한 현재의 욕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거대한 진리 앞에서 인간의 고독과 고통은 겸허한 자리로 돌아간다. 이 가슴 뛰는 일에 몰두해볼 생각이다. 어떤 진리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게 될지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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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음이와 은율이는 미쿡에서 자라고 있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모르지만 들은 말로만 종합해보면. 일단 한쿡이라면 은율이가 혼자 방에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찾아보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을 듯.
미국에서 자라는 게 다행이란 말에 적극 동의해요. 근데 미국에 다양한 길이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란 면이 크구요.
은율이가 방에서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준다는 거는 다른 엄마들과 다른 저의 선택이에요. 왜냐면 여기서도 수많은 한국 엄마들이 한국 못지 않은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아이들을 바쁘게 돌리는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일부러 그런 무리들을 멀리 하고 저만의 선택을 한 건 분명합니다. 근데 물론 은율이가 스스로 통찰력이 있고 머리가 좋아서 이런 선택에 적합한 아이란 점은 제가 복받은 거라 감사하구요. (만약 은율이가 막 선행 시키거나 과외를 시켜야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면 제 선택도 어려운 거라서요. 은율이는 제가 선행학습이나 과외 같은 거 안 시켜도 현재까지는 학교 공부에서도 그렇게 달리는 아이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있어서요)
아무튼 그래도 미국이라서 제가 소신있게 살기가 덜 어려운 건 맞아요. 근데 여기서도 한국 부모들은 엄청나게 아이를 잡고 있다는 거… 전 아웃사이더에요. 한국 학부모들과 연을 맺지 않고 사는 아웃사이더.
맞아 한국 엄마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애들 잡지.
그리고 한국 엄마들은 은율이처럼 안 시켜도 잘하는 애면 더 선행 시켜. 영특한 애를 내버려두는건 엄마로서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고 고딩까지 진도 빼지. 사교육 더 시키는게 도리라고 여기고.
너도 내버려두는건 아니고 은율의 관심사에 맞는 활동들 참가시켜주고 아이의 강점에 맞는 지원을 해 주는거지만. 근데 한국 엄마들은 입시 전문가 조언에 휘말려 애를 더 푸쉬하지.
학원 상담쌤들 은율이 같은 애들 보면 학부모한테 한마디 하잖아. 어머 어머님, 왜 이런 애를 학원 안 보내고 내버려두세요, 라고 대역죄인 취급.
나는 너와는 다른 쪽으로 아웃사이더지. 유라가 공부하기 싫어해서 소도시 선택한. 어차피 명문대 싹수가 아니니 학창시절 스트레스 덜 받고 좀더 놀으라고. 학창시절이라도 행복하라고.
남편 직장이 이동네라도 다른 엄마들은 수원이나 안산에 집 얻어서 학교 보내. 남편 출근길 좀더 멀어도.
근데 이런 선택을 해도 공부를 아예 안할 순 없으니 이 와중에도 힘들긴 하다. 애 잡을 때도 있고. 전에도 말했지만 돈 안드는 대안학교가 근처에 있다면 보내고싶어. 요새는 좀더 내려놓는 마음 가지려고 지나영 책도 읽고있어.
또 내가 다른 엄마들과 다른 점은, 난 논술학원에 한때 있어봤잖아. 웬만한 사교육 종사자들 별거 아닌거 잘 알고. 그래서 학원 상술에 잘 휘말리지 않는다는 점. 주변에 학창시절 공부 잘했던 엄마들이 학원 원장들 말에 솔깃하는거 보면 참 어이없거든. 물론 중고딩땐 학원이 필수인 분야도 있겠지만, 초딩 사교육 시장 보면 참 가관ㅜ
유라는 잘하는건 없지만 수영이랑 태권도를 좋아하긴 해. 몸치인데 좋아하는게 신기할 따름. 그래서 그거 두개는 학원 보내고.
이전 동네에서 다니던 태권도 학원 관장님이 유라의 영웅이야ㅜㅜㅜ
내가 독서모임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애들이 커가니 사교육이나 입시얘기가 너무 자주 나와서잖아. 나도 엄마들 멀리해. 사실 독서모임에 대한 실망은 너무나 커. 몇년 전만 하더라도 단톡방에 작가들 얘기, 책얘기 뿐이었거든ㅜ 그때가 잼났지.
암튼 너는 은율이에게 큰 도움이 되는 엄마일 것 같아. 오군이 너로 인해 성장했듯이, 은율이도 그렇게 될 것 같아. 잘 지원해서 훗날 한국인으로서 흔치 않은 천체물리학자로 성장하길 응원해.
아 글고 내가 독모에서 s랑 논쟁이 있었는데. 한국의 수학 교과과정이 전세계 평균 진도보다 1년정도 빠르잖아. 초5부터 수포자 나오고. 난 이것도 국가적 손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s는 한국은 자원이라 할게 인적자원 뿐이니 교과과정 어렵게 해서 경쟁 가속화하는게 마땅하다고 주장했어서ㅜ 이날도 나 완전 기빨려서 잠자기 힘들었다ㅎㅎ
아.. 그 독서모임에 대한 실망 부분 너무나 와닿아요. 작가들 얘기, 책 얘기로 가슴을 뛰게 했던 단톡방이 어느날부터 사교육 얘기로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세속의 냄새가 내려앉기 시작했을 때의 실망감이라니.. 독서모임을 한다는 거 자체가 현실에 대한 초월 욕구 때문인 건데 거기서조차 세속에 함몰돼야 할 때 얼마나 고독해질지. 단톡방 나온거 공감합니다.
근데 그 s 모님은 들으면 들을수록 통찰력의 두께가 좀 얄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보통 자신이 공부를 잘해 본 사람은 알거든요. 공부가 푸쉬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 경쟁 가속화로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 예로 든 수학만 해도, 수학을 진도 빨리 빼서 선행 빨리 시켜서 경쟁 가속화하는 게 진짜 그 나라의 기초학문으로서의 수학의 경쟁력에는 거의 도움 안 돼요. 왜냐면 수학은 학교에서 천천히 가르쳐도 그 근본 원리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아이가 나올 수 있거든요. 실제로 한국보다 수학 진도가 느린 미국에서 왜 대학 이후부터는 결국 중요한 연구 성과는 다 미국에서 나오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미국에서 나올까요. 그리고 언니 말처럼 쓸데없이 수포자 빨리 만들어내서 인력 낭비하고.
사실 저는 아이들 달달 볶아서 입시 경쟁 치르려고 유치원 때부터 극성 떠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보면.. 보다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해요. 이건 좀더 철학적인 문제인데요. 아줌마들이 그런 데 매달리는 건 인간의 근본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거대한 인생의 공허, 권태, 무의미에 시달립니다. 자신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범인들이 대부분이지만요. 근데 인간 누구나가 인간과 삶에 대한 거대한 질문에 맞서 답할 용기가 있지 않아요.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아가는가, 나의 삶은 의미가 있는가, 나의 사랑은 가치가 있는가, 인간을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의 삶의 끝은 어디인가, 인간의 희노애락의 궁극적 도착지는 어디인가 등등. 이런 거대한 질문에 맞서 답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삶의 바쁘고 자잘한 문제 뒤로 숨어서 ‘근원적 의미의 권태와 무의미’를 피하려는 거에요. 잊으려는 거에요. 그래서 바쁜 직장생활로 숨고, 계획을 세우고,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 교육과 사교육, 입시 전쟁에 몸을 던지고, 재태크에 몸을 던지고, 어떤 사람은 마약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바쁜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결국 많은 것들이 인생의 거대한 질문들을 피하려는, 권태를 피하려는 돌진이라고 전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입시 경쟁에 몸을 던진 아줌마들도, 겉은 아이를 명문대 보내서 잘 먹고 살게 하려는 목표를 갖고는 있지만, 과연 그 행위들이 진짜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같은 건 없어요. 그냥 남들처럼 뛰는 거에요. 일단 빨리 바쁘게 달려야 삶의 권태와 불안을 피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남들과 같이 바쁘게 달릴수록 불안을 피할 수 있어요. 멀리서 관조해보면 결국 근본 문제는 이거라고 전 생각해요.
S는 학창시절 범생이었고 공부 욕심이 많았는데 집안이 넘 가난해서 지원이 너무 없는게 불만이었대. 혼자 아둥바둥해서 대학 가고 대기업 취직하고. 어릴때 부모 지원에 대한 결핍으로 지금 여기저기 사교육 돌리고 정보 수집에 열심인 케이스. 아이들 영유 보냈었고 지금 큰딸 중딩 가면 연애하느라 공부 안할까봐 여중 알아본대ㅜ
아마도 s는 자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나같은 사람이 시스템에 대해 궁시렁대면 거슬리는걸수도. 너의 말대로 근본적인 질문은 다 피하고 싶은거야. 삶의 의미를 캐내거나 가치를 묻는 모든 질문은 거슬리겠지. 그 시간에 수량화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하나라도 더 고민하고 의논하고 싶은거지. 그 단톡방은 정보 공유의 방. 나는 정보 공유에 적합하지 않은 멤버이고
근데 난 정말 놀라운 부분이,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기 애가 뒤쳐질까봐 불안해서 공부시키는거지 이 사회의 경쟁이 더 가속화되길 바라진 않거든. (작년에 교육부장관이 초등 입학연령 낮춘다고 발표했다가 난리났었자나.)
근데 s는 나라의 경쟁력을 위해 수학진도가 빠른거에 공감한다니 놀라웠어. 공교육의 수학 진도가 빠르면 자기 자식들이 힘들어지는건데. 정말 난 이 부분이 놀라웠고. 학창시절 담임이 반에서 뒤쳐지는 친구를 자기한테 도움 주라고 맡겼었는데 걔한테 이까지 옮아서 짜증났다는 말을 단톡방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거도 난 거슬렸고.
근데 이런거저런거 다 떠나서 내가 s한테 결정적으로 열받은건, 내가 언제 한번 보검이가 나온 드라마 보고 혜교가 ㅈㄱ한테 만족 못하고 ㅂㄱ이랑 바람난게 이해된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는데. 자긴 ㅂㄱ이같은 애들이나 보이그룹은 아들같고 남자로 안 보인다고. 참나 그럼 난 아들같은 애들을 흠모하는 주책아줌마란 얘긴가. 암튼 내가 티는 안 냈지만 이게 결정적으로 내가 독모를 못 견딘 이유일수도.ㅎㅎㅎ
근데 근본적인 질문.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이건 학부모 타이틀을 가진 아줌마들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 우리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런 질문에 대한 서로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관계는 다 부질없어서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 물론 ㄷㄱ는 s의 수학 진도 국가경쟁력 발언에 대해 “이명박같은 소리 하고있네 “라고 공감해주며 맘카페에서 할 얘길 독모에서 왜 하냐고 하더라ㅜ
확실히 s님은 여러모로 우리가 상종 못할 사람인 걸로….
ㄷㄱ오빠의 짧고 굵은 한마디. 저 이번 여름에 ㄷㄱ오빠 만나고 싶네요. 오군은 준비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