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과 후안무치, 자신만만

* 스틸사진 – 이명세 감독, <인정사정 볼것없다> 

“…한번쯤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찍는 5명을 안다, 그 5명은 오즈 야스지로, 페데리코 펠리니, 채플린, 자크 다티, 버스터 키튼이라고요…버스터키튼은 오늘 명단에 올렸습니다. 오늘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그는 정말 영화를 영화로 찍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내가 생각했던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영화적 공간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아는 것입니다…영화적인 것만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그는 영화는 단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정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란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수는 쪼개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수는 확장의 대상이지, 분석의 대상은 아닙니다…극장 문을 나서면서 나는 속으로 버스터 키튼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첫 번째 고백입니다.
……………………………………………..한섭형 잘 지내지? 명세(이명세 감독이 뉴욕에서, 평론가 강한섭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내가 수업시간에 이 편지를 소개하자 몇몇 마음이 아름다운 학생들은 건드리면 곧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일갈했다. “이명세는 영화철학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경계하라!”

나는 영화 예술의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영화의 에센스는 끊임없이 변한다….게다가 본질주의자들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명세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예술 근본주의자들은 속물적인 세상에 분노하면서 그 울부짖음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의 기본 성격을 오해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오해의 힘으로 영화예술이라는 우물의 깊이를 더해 마침내 지층의 심연에 도달해 펄펄 끓는 마그마에 도달하기도 한다…

…<형사 Duelist>의 반응은 관객과 전문가 공히 3할 열광, 3할 시큰둥, 3할 불만, 나머지 무관심인 것 간다. 이명세가 목표로 했던 맥시멈 머니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래서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으면 동원이와 지원이의 운명적인 키스신 정도는 있어야지.” 하니까 “대결장면에서 칼날들이 부딪치는 것이 ‘쪽, 쪽, 쪽’ 입 맞추는 거라며 그서도 모르냐”는 식이다. 당신은 “여전히 철 안 든 아이 같다”는 중앙일보 이후남 기자의 도전에 “영화란 영원히 영(young)한 거다”로 답변하는 독선과 후안무치, 그리고 자신만만. 그래서 이 엇갈리는 대화에 흥미를 잃고 자리를 일어서려고 “세상의 중심에 서서 큰소리치는 것이 바로 생존이야”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명세 이 독선의 고집쟁이 또 아니란다. 영화는 큰소리치는 게 아니라 연애편지를, 그것도 작은 쪽지를 관객에게 띄우는 것이란다. 그러면 이것이 행운의 편지가 되어 도미노식으로 전염병이 되어 세상에 퍼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관객은 어부란다. 통합영화 1호감독(이명세 스스로 자신을 칭하는 말)이 풀어놓은 무한의 물고기 중에 능력껏, 취향에 따라 몇 마리 잡아가는 거란다.

<형사>는 반드시 흥행해야 한다. 그래서 이명세 좀 타락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명세 또 나한테 전화 걸어 새벽까지 술 마시자고 할 거니까. 그리고 진정한 영화, 영화의 진수, 어쩌고 할 테니까..

– 이상 강한섭(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영화평론가)


나는 이명세 감독 세대가 아니다. 따라서 나는 그의 걸작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나는 당연히 <인정사정 볼것없다>에 열광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날. 나는 흥분했었다.
‘영화적인 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란 이명세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흔히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폄하하는 이명세 영화의 ‘그 영화적인 순간과 공간, 이미지’에 열광한다.

그가 부럽다. 저렇게 뻔뻔하게 자신이 옳다고 외치는 이사람.
단순한 것은 쪼개질 수 없다고, 진리의 근본주의자처럼 말하는 이명세가. 부럽다.

독선과 후안무치, 자신만만.


Comments on this post

  1. ornus said on 2005-09-13 at 오후 7:09

    똑같이 이명세 영화 좋아하면서 자기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거샤? 질투나. ㅠㅠ

  2. wisepaper said on 2005-09-27 at 오후 12:50

    어라….?…

  3. ornus said on 2005-09-27 at 오후 1:33

    엥? 지금 보름지난 리플을 보고 놀라는건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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