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박상미, 뉴요커, 마음산책, 2004.
* 2005년 1. 21. 금. 강남교보.
금요일 저녁.
서점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책 한 권 정도는 다 읽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웃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다.
뉴요커. 내게 무슨 뉴욕에 관한 특별한 관심이 있다거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어떤 절박함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에게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서구의 어느 도시- 예컨대 뉴욕이나 파리, 프라하 같은-에 대해 특별한 열망을 갖는 일이란 ‘값싼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겉멋’도 있다.
물론 나도 많은 사람들이 동경한다는 뉴욕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 정도는 그릴 수 있다.
욕망 가득한 허기진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 혹은 몰려가고 ‘싶어하는’ 곳.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가 갖는 느낌 – 일반적인 ‘미국문화’와는 뭔가 다른 질감이 느껴질 것만 같은 도시.
빽빽한 고층빌딩. 수직의 도시.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 뉴욕은, 좀 사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게 뉴욕이라든지 유럽이라든지 하는 곳들은 ‘갑갑한 속옷 없이 얇은 끈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다닐’ 장소들이다.
한국에서 그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아무튼. ㅎㅎ
이 책은 저자(박상미)가 뉴욕의 공장지대에서 화가로 살면서 느낀 뉴욕의 욕망, 뉴욕의 땀냄새, 뉴욕의 그림 같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글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특유의 예민함 같은 것이 내 코드의 한 구석과 맞았고, 나는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서 ‘사지도 않고’ 다 읽고 왔다.
다 생략하고,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지금은 없어진 쌍둥이 빌딩 꼭대기를 밧줄로 연결해서 그 위를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를 담은 흐릿한 흑백사진이다. 단지 걷는 것을 사랑할 뿐이라는, 줄 위를 걷는 남자 필립 프티.
도저히 현실적인 높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소름끼치게 높은 두 건물 위에 밧줄 하나를 걸고 걸어가는 ‘점’처럼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인간.
모르겠다. 그 점처럼 작고 연약해 보이는 남자의 사진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저자는 한참 ‘내가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답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에 강렬하게 다가온 남자라고 했다.
나는 왜 이 사진 앞에서 두근거렸을까. 나는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 내게도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나는 아무것에도 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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