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동연,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문화과학사

 이동연,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문화과학사, 1999.

1장 다문화, 세대문화, ‘서태지’ 효과
2장 대중음악은 새로운 전선을 욕망하다
3장 이중의 감수성: 욕망기계로서의 서태지
4장 랩과 힙합의 정치학: 게토문화의 전이과정
5장 펑크, 하드코어, 악마주의: 교실 ‘이데올로기’와 ‘체제’ 유감
6장 억압된 것들의 회귀: 동화와 축제,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요소들의 의미화과정
7장 서태지, 대중음악, 문화
8장 인더스트리얼과 자유정신: 이른바 “테이크”의 문명론
9장 서태지와 하위문화 스타일
10장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저자 이동연 씨는 196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영문학과 문화이론을 전공하였고, 현 한려대학교 교수이자 문화연대 간사이다. 저서로는 [문화연구의 새로운 토픽들]과 [스포츠,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하위문화는 저항하는가], [하위문화: 스타일의 의미] 등이 있다.
“서태지에게 있어 결핍은 저항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욕망은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결핍은 외재적이기도 하면서 내재적이다. 그를 결핍되게 만든 사회의 구조들이 외재적이라면, 그를 끊임없이 소수자로 만들게 하는 자폐적인 감성이 내재적인 구조이다. 그 특유의 내재적인 자폐성향은 저항의 순간에 그 순도와 강도를 높이는 토대가 된다.”

 


이 책은 서태지가 은퇴한 후,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음악적으로만 [솔로 1집-5집]을 발표한 후, 그 파급력이 서서히 잦아들 1999년 무렵 발간되었다. 이 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같은 저자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란 책은 서태지가 [4집-컴백홈 앨범]을 내기 직전에 나왔다.

고등학교 때 나름 문화연구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 속에 “리뷰”, “이매진”, “문화과학” 등과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담론 잡지들을 숨기고 읽곤 했다. 그 중 “문화과학”은, 가장 잡지적인 “이매진”, 그리고 좀더 전문적인 계간지였던 “리뷰”의 전문성을 완전히 능가하는 거의 논문 수준의 문화연구서였다. 그 “문화과학”의 편집장이라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현 중앙대 교수인 강내희 교수였고, 이 책의 저자인 이동연 씨는 강내희 교수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문화과학”에 글을 종종 썼던 문화비평가였다.(현재 이동연 씨는 문화연대 간사로 일하고 있다) 수능시험을 본 후 난감한 점수를 받아든 나는(그 때 저런 난감한 책들을 읽을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정독해야 했던 것이다.-_-) 약 일주일간 절망하기도 했으나(^^), 내 점수대로 갈 수 있는 이런 저런 학교들을 알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중앙대에 원서를 넣었다. 참 어이없고 난감한 이유이지만, 강내희 교수와 이동연이라는 이름에 나름 호감을 갖고 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의 선택이었다고나 할까. ^^

아무튼 각설하고, 이 책의 서문을 거의 그대로 빌려 말하자면,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2장은 서태지의 음악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서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90년대 대중문화와 대중음악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테크놀러지의 발전, 세대문화의 출현, 문화공간의 다양화, 주체의 감수성의 변화 등이 90년대 문화의 중요한 화두이며, 이는 서태지 음악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 조건이자 과제라는 것을 짚고 있다. 3장에서 8장까지는 서태지와 서태지 음악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3장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토에서 탈주하려는 욕망의 이중적 특성에 대한 이른바 ‘주체분석’이라 할 수 있고, 4장부터 6장까지, 그리고 8장에서는 서태지의 음악을 시기별로 장르별로 구별하여 랩/힙합, 평크, 하드코어, 슬래쉬, 인더스트리얼의 특성들을 용어 설명과 함께 분석하고 있다. 9장은 스타일 분석을 통해 서태지의 외재적인 정체성의 함의들을 분석하고, 10장은 문화주체로서의 서태지의 내재적인 정체성과 그 파급효과를 결론삼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저자 이동연 씨가 1995년 2월에 서태지와 함께 나누었던 대담을 부록 삼아 싣고 있다.

서태지의 오랜 팬인나는, 그에 관한 무수한 기사들과, 잡지들, 책들, 박사논문 등, 서태지와 관련된 텍스트라면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다. 크하.;;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텍스트의 유형은, 문화담론의 성격을 띄지 않고 순전히 음악적으로 분석하는 ‘내공 깊은 리스너’이자 ‘음악 매니아’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들이다. 그러므로 이동연 씨의 이 책은 서태지 관련 텍스트 중 내가 좋아하는 일순위 유형은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서태지 관련 수많은 텍스트 중 이 책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이유는, 이동연씨의 글에서, 그간 타 문화비평가에게서 느끼기 힘든 서태지에 관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평가에게서 애정이라니, 객관력을 상실한 글이 될 위험이 있지 않냐고?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서태지의 음악뿐 아니라 서태지라는 주체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는 글의 저자가 서태지를 향한 애정 있는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서태지의 100분의 일도 읽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서태지의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 서태지라는 주체에 대한 분석 중 “이중의 감수성, 욕망기계로서의 서태지” 부분은 그런 의미에서, 여타 비평가 중 그나마 공감할 만한 논의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서태지에게 있어 결핍은 저항의 무기였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욕망은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결핍의 충족은 필요와 욕구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결핍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핍되게 된 구조에 대해 새로운 표현형식과 내용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고, 때로는 그 말이 카니발적인 다성성을 담아내다가 때로는 극단적인 냉소와 분노, 정신분열증으로 돌변했다. 그의 결핍은 외재적이기도 하면서 내재적이다. 그를 결핍되게 만든 사회의 구조들이 외재적이라면, 그를 끊임없이 소수자로 만들게 하는 자폐적인 감성이 내재적인 구조이다. 그 특유의 내재적인 자폐성향은 저항의 순간에 그 순도와 강도를 높이는 토대가 된다.”

서태지의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부분인 6장에서 저자는 1집부터 3집까지의 서태지의 노래를, 다소 작위적이지만, ‘파괴적인 것(난알아요, 하여가,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내맘이야, 널지우려해)’, ‘그로테스크한 것(환상속의 그대, 죽음의 늪, 수시아, 제킬박사의 하이드)’, ‘서정적인 것(너와함께한 시간 속에서, 너에게, 아이들의 눈으로, 영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지점으로서 유희와 축제의 공간(우리들만의 추억, Rock’n Roll Dance, 내모든 것, 마지막 축제)을 설정하고 있다. 이런 분류가 가진 함정은 저자도 물론 주지하고 있지만, 서태지의 감수성의 원천을 흔히 인기를 모은 파괴적인 곡이 아니라, 서정적인 감수성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흥미 있는 대목이었다. 신기하게도 서태지가 최근의 인터뷰에서조차 자신의 노래 중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를 최고로 꼽는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 책의 8장, “인더스트리얼과 자유정신 : 이른바 ‘테이크’의 문명론” 부분은 서태지의 솔로 1집을 분석하고 있는데,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임과 동시에, 내가 서태지라는 뮤지션에게서 가장 기대를 갖고 있는 테크노적 성향에 관한 대목이기도 하다. 좀 길지만, 이 부분의 몇몇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다.(사실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심한 전파 노이즈 속을 뚫고 이성의 폭력을 향해 냉소의 칼날을 세우는 그의 찌그러진 목소리가 차라리 저 살벌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TM)’의 비타협적 분노와 ‘콘’의 기괴한 정신분열증세처럼, 숨막히는 자본주의의 맨땅에 헤딩하는 철혈 욕망기계였다면, 우리는 다시 돌아온 서태지를 보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 없는 분노, 결핍 없는 반항, 단절 없는 적개심이, 일탈의 극점으로 달리고 싶어하는 사운드의 모든 이유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기성 집단으로부터의 소외, 내면적 자폐성향, ‘창조사역의 고통’으로 얼룩진 상처의 흔적들은 냉소와 반항의 메시지, 스크레칭과 디스토션의 거친 음향효과 속에 잠복되어 여전히 그 ‘슬픈아픔’을 지워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컴백은 결핍되고 응축된 슬픔의 흔적을 지워내는 새로운 시각, 문명의 파괴와 생성의 경계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아 끊임없이 흘러다니는 ‘유목민적’ 탈주를 완전하게 성취하지 못하는 듯하다. 테크놀러지를 전유하고 실험하는 변이들을 찾아나서려는 욕망은 자신의 과거를 늘 반추하며, 때로는 억눌린 상처로, 때로는 그를 지켜주었던 사람들의 추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솔로 1집]은 “새로운 실험-찬사와 비난-고통과 좌절-또다른 도전”이라는 지난 4집까지의 사이클을 기억하며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회고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단지 과거에 안주하는 회고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를 가지고, 은퇴하기까지, 그리고 그 창조적 사역의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자신의 음악적 여정을 새로운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앨범은 테크놀러지 장비를 이용한 사운드 효과만을 방법적으로 사용해왔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테크놀러지와 자본주의 문명 자체를 중심 토픽으로 삼고 있다.”

‘Take One’의 인트로에서 들려지는 거대한 우주선이 이동할 때 내는 것 같은 묵직한 소음은 기술문명의 시작을 예고한다(이는 서태지가 밝힌 곡 설명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Take Two’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중 역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탄생과 진보에 있어 생명의 보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테크놀러지의 유토피아적 요소와, 역으로 전체 인류와 생명의 파괴를 위협하고 있는 테크놀러지의 디스토피아적 요소의 역설, 이는 기술문명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접근에서 부딪힌 역설이요, 그의 음악생산 과정에서 발견되는 역설이기도 하다. ‘Take Two’가 전체 앨범에서 형식과 내용에 대한 주제를 모두 포괄하는 유일한 곡이기는 하지만, 앨범에 실린 곡들은 곳곳마다 그런 주제의식을 내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인더스트리얼과 같은 첨단 테크노 음악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반유토피아적 징후를 야기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인더스트리얼이 단지 하이테크 문명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문명에 대한 ‘역동일시(disidentification)적’ 비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테크놀러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비판적 대상 사이의 경계에 대해 항상 의문시하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Take Three’‘Take Four’- 에로스(생명본능)와 타나토스(죽음본능) 사이의 계주운동이 잘 드러난 곡이다.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나, ‘변신-성장-은퇴-도피-컴백’이라는 청년시절의 삶 자체도 이 둘 사이의 줄타기라 할 수 있다. 서태지에게 있어서 그 경계는 선택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횡단해야 하는 갈등과 투쟁의 공간이다. 에로스는 타나토스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타나토스는 에로스 속에서만 존재한다…….’Take Three’와 ‘Take Four’ 이 두 곡 중 전자가 음습한 마이너 고딕 사운드를 바탕으로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 밖으로 끌어내려는 주문행위(invocation)라면, 후자는 경쾌한 메이저 펑크사운드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과거의 자신을 타자화하려는 관찰적 행위이다…… “난 어둠 속에 깨어 있어(Take Three)”, 이것이 바로 서태지의 딜레마이고 역설이다. 그의 외침은 어둠 속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지 않고 깨어 있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만 깨어날 수 있다는 역설이다.”

‘Take five’ ‘Take six’는 음악 속에서 대중과 팬들을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으로 견인해 내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국의 땅에서, 마치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안정된 공간에서, 날개를 달고 새로운 비상을 꿈꾼다. “이제 난 또다시 일어서는 거야 날 힘있게 다시 만들거야(Take Six)……서태지의 컴백앨범은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 슬픈 아픔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그 흔적의 녹들을 털어내는 분노와 냉소의 반격을 가한 채,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의미를 확인한 채, 그의 앨범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나는 마치 서태지의 [솔로1집]이 서태지의 음악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는, 다시 일어나기 위한 씻김굿 같다. 자신의 영광과 오욕을 반추하고, 상처를 일일이 불러내, 잔인하지만 고통과 공존하는 희망을 찾아내는….. [솔로1집]이 없었다면, 서태지가 다시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다시 일어날 수 있었기에 [솔로1집]이 나왔을 것이다.

이동연 씨가 이 책의 8장에서 집중 분석하고 있는 테크노 음악 혹은 일렉트로니카 음악, 테크노와 록음악을 섞은 인더스트리얼 음악은 내가 서태지라는 뮤지션에게서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다. 빼도 박도 못할 ‘록음악 키드’인 서태지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록뮤지션의 영역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지만, 순수한 록음악은 서태지의 감수성이 무디게 나타나는 영역 같다. 오히려 ‘테이크 2’ 같은 노래에서, 그의 천재성과 재기발랄한 분열적 편집증의 징후를 본다. 그리고 서태지의 록음악은 표면적으로는 밴드 음악이지만 작법은 지극히 테크노적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나이를 먹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디지털 기기의 효과를 극대화한 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서태지의 7집에서 인트로나 각 브릿지곡들은 서태지의 8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게다가 서태지는 최근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8집 앨범은 7집 활동이 끝나자마자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8집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 끝났음을 내비치고 있다. 나의 기대가 맞아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정말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Comments on this post

  1. ornus said on 2004-04-24 at 오전 12:26

    나도 8집 기대돼. 자기가 그렇게 빨리 작업을 시작하고 싶다는데, 궁금궁금

  2. wisepaper said on 2004-04-24 at 오후 1:29

    장황하게 [솔로1집]에 대한 분석을 저렇게 또 덧붙여놓은 것은, 개인적으로 [솔로1집]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앨범이 서태지의 음악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었던 은퇴와 [솔로1집] 발표를 통해 ‘상처를 씻어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우리는 계속 음악을 하는 서태지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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