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 최재천 지음,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휴머니스트, 2006.

– 목차 –

1.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
유전자로 들썩이는 세상/두 먹물, 드디어 보따리를 풀다/인문학적 본성과 자연과학적 본성
2.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적 유전자
유전자 혁명, 그 후 60년/인간의 탄생을 어떻게 설명할까/가슴설레는 프로젝트/인문학 DNA와 자연과학 DNA
3.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누구를 위한 윤리인가/생명의 시작은/메멘토 모리, 인간의 한계를 긍정하라/기술은 있지만 과학적 사고가 없다
4. 인간 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신화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신, 노동하기 싫어서 인간을 만들다/다윈의 시나리오/DNA 사령부의 비밀 프로젝트
5. 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복제인간과 유전자 클리닉/인문학의 영혼, 생물학의 영혼/”DNA가 영혼입니다” “그건 생물학적 결정론이죠”
6.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도 선생님! 신화는 ‘구라’죠?” “그렇다면 과학도 ‘구라’입니다”
인문학과 생물학의 연결고리/생명은 어떻게든 길을 찾는다
7.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예술은 인간의 본성인가/모든 예술은 구애의 몸짓이다/과학은 진화의 산물이다
8.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교미와 섹스는 어떻게 다른가/동물들도 피임을 한다?/54초형 인간, 59초형 인간
9. 판도라 속의 암컷, 이데올로기 속의 수컷
생물학에 대한 기소장/다윈의 세계 질서/새끼, 여자, 남자/27세기형 가족 공동체의 출현
10.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누구나 동성애적 욕망이 있다/’바람기 유전자’가 꿈꾸는 세상/암컷의 섹스는 교환가치인가
11.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프로이트에 대한 판결문/유혹하는 무의식/인간의 자기 이해 방식을 전복하다
12.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열성유전자를 보호하라/사회진화와 자연진화의 문법/이기적 유전자를 넘어
13.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세계화, 숨을 곳 없는 세상/생태계의 윤리, 인간의 윤리/밀실의 고독에서 공생의 축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대담이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책이 아닐까 했는데 맞았다. 몇 년 전에 휴머니스트에서 출판된, 동양철학자 이승환 교수와 서양철학자 김용석 교수의 대담집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란 책을 읽으며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ornus가 대학 때 좋아했던 컴퓨터공학 전공 교수님께 그 책을 졸업선물로 드렸던 기억도 있다.

이번 책은 그 때보다 더 긴 시간 동안(2002년-2005년)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이 ‘생명공학시대의 인간’을 주제로 나눈 대담집이다.

포스트모던 담론이 횡행하던 20세기 후반 이후 이른바 이론인문학자들이 ‘자기집 허물기’를 수행함으로써 이룩해낸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근대를 지배해 온 ‘이성’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급기야 ‘이성 배척’으로까지 나아가버린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진단하는 도정일은, 신인문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인문학이 과학, 특히 생물학과의 대화를 통해 자극을 받아야 한다며 말문을 연다.

서로 다른 분야의 두 학자의 대담은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과 생물학의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느라 명백히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교집함을 찾아내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차이와 교집함이 드러나고 때론 충돌한 후 진중한 토의를 거쳐 서로에게서 ‘들을 부분’을 찾아내는 모습이 재미를 준다.

나는 아무래도 그간 인문학적인 관점에 익숙해있었기 때문에, 도정일의 얘기가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기회를 준다면, 최재천의 생물학적 관점은 새롭게 들어야 할 부분이 많아 흥미진진 재밌었다. 최재천의 생물학은 그도 말했듯 사회에 반성 없이 떠도는 편견을 ‘생물학’의 연구결과를 통해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은, 실제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는 자연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간단히 뒤집어질 수 있는 편견일 뿐이라는 식이다.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서로의 연구분야에서 찾아낸 ‘인간이해’를 공평하게 나누는 듯하지만 사실 이 대담의 방향성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인문학자인 도정일이다. 그건 아마도 그가 지적하기도 했듯이 자연과학자가 ‘어떻게’에 천착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존재라면 인문학자는 “왜 그것인가”를 묻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자연과학자들이 호기심과 열정에 입각해 인간복제가 가능한 생명공학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방법론을 붙들고 있다면, 그 연구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물어야 하는 이들은 인문학자이다. 그에서 좀더 나아가 자연과학자 스스로도 ‘인간 이해’를 위한 인문학적 관점을 견지해야 하고, 인문학자도 역시 자연과학의 성과들로부터 인문학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덧붙임 1
남의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생물학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우성인자를 남기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생물학적 본성으로 설명이 힘들고, ‘사회적 인정’의 관점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직 입양부모는 아니지만 입양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물학적 지식 제로(!)’의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내게 있어 입양은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돌봄과 희생을 제공하고 받는 관계)를 넘어서는 동반자적인 관계이다. 나는 자식을 내가 돌봐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감정과 신뢰, 쾌감을 주고받을 동반자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나의 유전적 특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유전자를 가진 존재에 끌린다는 설명으로도 가능하다.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자식의 관계가 자신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존재에 대한 보살핌으로 이루어진다면, 내 입양동기는 내 유전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존재에 대한 끌림에서 시작하는 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덕붙임 2
도정일
: 인문학자나 문학자들은 구라쟁이들이에요. 그런데 문학이나 인문학 구라들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믿음 같은 게 몇 개 있습니다. “이 구라 속에 진실이 있다”는 말에 대한 믿음, “나는 마음만 먹으면 허위와 진실 양쪽을 모두 말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라는 주장에 대한 믿음이죠. “나는 거짓말을 통해서만 진실을 말한다”는 소리기도 한데, 이건 문학만이 아니라 인간사 전반을 꿰뚫는 대단한 진실 같아요.

최재천 :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잖아요. “예술이란 우리에게 진실을 일깨워주는 거짓말”이라고. 인문학적 구라의 진실성은 저도 이해하고 인정하고 즐깁니다. 그런데 구라 중에서 위험한 구라가 있어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구라가 아니라 인류를 진짜 오류로 이끄는 구라가 있다는 거죠.

Comments on this post

  1. J said on 2008-01-03 at 오전 6:02

    오! 매우 끌리는 책이구료.

  2. wisepaper said on 2008-01-04 at 오전 2:10

    <서양과 동양이...>는 철학적.인문학적인 베이스가 있어야 읽히는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으므로! 추천합니다.

  3. JY said on 2008-01-04 at 오전 9:40

    ….. 나도 모르게 나의 이름을 J 라 써놓았군…..

  4. wisepaper said on 2008-01-04 at 오후 4:04

    어쩐지.. 분명 말투는 JY언니 리플인데 닉네임은 J라시니..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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