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장은 모두의 것 – 피터팬의 공식

<피터팬의 공식>, 2005년작.
감독 : 조창호, 배우: 온주완, 김호정

음독자살을 기도한 후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어머니. 친부임을 부정하는 아버지.
카드값을 독촉하러 나타나는 어른들. 막혀버린 길.

열아홉 살 소년에게 던져지는 가혹한 난제들 앞에서 이 아이는 어떤 식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나락 깊은 절망을 어둡게 강요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는 열아홉 소년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나락 깊은 절망 앞에서도 소년은 소년답게 어리숙함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기도 하고,
자신의 넘치는 성적 욕망이 여인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부재로부터 온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수영선수인 소년이 헤엄치는 물이 은유하는 어머니의 양수.
소년이 이웃집 여인에게 섹스하고 싶다고 절규하며 들어가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자궁.

덜자란 우리에게 난제들만 던져주는 비정한 세상.
소년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이 상처가 없었던 곳으로 회귀(또는 퇴행)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성장은 이 회귀욕망을 끊어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인가.
영화는, 고통에 지친 소년이 병실에서 어머니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느다란 생명줄을 끊으려 시도하다 그만두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니라고 답한다.
성장은 이 욕망을 끊어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욕망으로부터 도약할 때 이루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이 대답에 대한 열린 설명으로 보인다.

데뷔작 답게 실험성 강한 판타지 같은 장면들과 지독하게 현실성 있는 화면을 잘 섞어서
가슴 뻐근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을 잘 만들어낸 것 같다.
여성에 대한 묘사에서 남성 감독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친 상징이 영화를 누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독특한 작법으로 자신만의 영화적 리듬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소중한 데뷔작인 것 같다.
(검색해보니 선댄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도빌 영화제 심사위원상, 더반 영화제 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배우 온주완은 다른 스타들 같았다면 이미지 관리 때문에 꺼려했을 장면들도 정직하게 잘 소화해내고 있다.
여타 반반한 스타들이 갖고 있지 못한 정서를 가진 젊은 배우의 발견이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성장은 소년 소녀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매순간 성장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사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Comments on this post

  1. wisepaper said on 2007-11-21 at 오후 9:20

    다시 읽어보니 내 글이 너무 좁다. 이 영화가 세심하게 담아낸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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