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거라, 네 슬픔아

신경숙 글, 구본창 사진, 자거라 네 슬픔아, 현대문학, 2003.

소설가 신경숙의 에세이.

사실은 좀 메마르고 건조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신경숙의 다른 글들이 그랬듯이 어느 페이지 쯤에서부턴 가슴 밑바닥에 조용조용 파문이 인다.

어쩌면 이렇게 오물조물 맛있으면서도 서걱서걱 가슴을 휘젓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잠자리에 든 밤에는 잠이 오기 전까지 오래도록 유년기를 떠올린다.
어릴 때 살았던 시골집 마당이며, 썰매와 호미가 들어있던 광이며, 툇마루 아래에 묶어두었던 아롱이,
화장실 가는 길에 늙은 포도나무며 찔레꽃이며..

이것은 그저 입가에 웃음을 슬쩍 띄우는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다.
어릴 적 노을이 지는 오후에 엄마 없는 마루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때의 마음 같은 것.
유년의 시기는 한 인간의 평생 동안의 잠재력을 묻어 놓은 깊고 깊은 바닷속 같은 것일까..

신경숙의 글의 밑바탕도 정읍에서 보낸 유년의 나날들인 것 같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유독 동요가 많이 일어난다.
마음 다쳤던 작년 가을 그의 소설 <외딴방>을 읽었던 이틀 동안에도, 오래 울다 몇 줄 글을 끄적이고 치유받고 그랬었다.
문학이 지닌 정화(淨化)의 능력이 있다면 이런 것일 테다.

소설도 좋지만 이런 수필도 가끔 써줬으면 좋겠다.

 

Comments on this post

  1. 하연 said on 2007-05-13 at 오전 6:00

    맞다 맞다…. 이모가 신경숙이나 유안진 좋아하는게 어려서는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지혜의 수필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2. ornus said on 2007-05-13 at 오후 2:07

    지혜한테 글 쓰라고 하면 안 된대..-.-

  3. wisepaper said on 2007-05-13 at 오후 2:11

    기다려바바.. 수필은 유명인이 되고 난 다음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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