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선라이즈>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멈춘, 둘 사이에 ‘Chemistry’가 흐르는 순간
노래는 Kath Bloom, ‘Com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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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년작>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년작)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배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작지만 실험정신 강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온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소박하고 간단한 시놉시스와 튀지 않는 카메라웍, 현실감있게 재잘댈 줄 아는 두 배우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영화 두 편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고맙게도 그는 1995년 이십대의 두 남녀가 여행지에서 겪는 설레는 하룻밤을 <비포 선라이즈>로 담아낸 이후
2004년 <비포 선셋>을 만들어서 주름진 그들의 9년 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줬다. <비포 선셋>에서는 주연 배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도 각본에 참여해 자신들의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현실감 있는 대화들을 들려준다.
<비포 선라이즈>를 내가 처음본 건 고등학교 때. 야자 시간에 한 친구가 어젯밤에 이 영화를 봤다며 들고온 엽서 속에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근사한 한 순간이 담겨져 있었다. 대학생이 된 후 우연히 이 영화를 구입하게 되고, 집에서 늘어지도록 다시 보고 다시 보고 그랬다. 스무살 때 왜 난 이 영화를 보고 배낭을 든 채 유럽으로 떠나지 않았던 걸까. 아마도 그 때 난 영화 속의 에단 호크보다 내 옆에 있는 남자애;;에게 정신이 쏙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때 이 영화를 보고 여행을, 낯선 이와의 하룻밤을, 낯선 곳에서의 연애를 꿈꾸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있었을까. 게다가 이 영화의 미덕은 첫눈에 반하는 것으로 두 남녀의 마술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인생과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재잘대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택했다는 점이다.
<비포 선라이즈>가 설레는 낭만이었다면 9년 뒤에 찾아온 <비포 선셋>은 연애도 사랑도 꿈도 이런저런 삶의 기복을 지나온 삼십대가 담겨 있기에 조금더 짠했다. 에단 호크의 이마에 깊게 패인 ‘상처같은(like a scar)’ 주름과 줄리 델피의 깊어진 표정.
결혼의 권태와 위기를 맛본 극중 제시의 이야기는 그 때쯤 실제로도 이혼을 겪은 에단 호크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그 때 찍힌 에단 호크의 파파라치는 외롭게 혼자 애들을 안고 길거리를 걷는 모습들이 많았다. 줄리 델피 역시 극중에서처럼 실제로 파리를 떠나 뉴욕에 머물며 공부를 더 했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를 그들이 직접 써서 그런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실제로 링클레이터 감독과 에단과 줄리는 굉장히 친한 친구라고 한다. 오랜 친구 에단과 링클레이터는 지금 한 소년의 7살부터 18살까지를 담아내는 영화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인데 아마, 앞으로 10년 쯤 후면 영화를 볼 수 있을 거고, 그 영화 속에서 소년을 지켜보는 40대의 에단 호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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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정말 뭐랄까.. 소박한 보물 상자 같은 영화였다… 지금도 나는 20대 감성을 꼽으로라면 아마 이 영화들로 대신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