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둠’은 연약하다 – 장미의 이름

* 장미의 이름(1986년작)
* 감독 : 쟝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배우 : 숀 코너리, 크리스찬 슬레이터

너무도 유명한 철학자이자 소설가, 기호학자인 움베르트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존하는 <비극론> 외에 <희극론>의 존재를 가정하고, <희극론>은 웃음을 금기시하던 중세의 암흑시대에 인위적으로 소실시켰을 것, 이라는 상상을 토대로 이어지는 추리가 이 작품의 기본축이다.

오늘은  종일 ornus와 함께, 대학 때 흑석동 영화마을에서 빌려봤던 희귀하지만 재밌었던 영화들 다시보기로 하루를 보내면서,
마지막 작품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웃음’을 금단의 영역으로 은폐하고, ‘두려움’을 신을 향한 복종의 주춧돌로 삼아야 했전 중세.
이 작품의 주된 배경인 수도원은 그 중세를 축소해놓은 소우주 같은 곳이다.

확실히 ‘두려움’이나 ‘어둠’은 인간의 감정을 쉽게 굴복시키지만, 어둠의 틈새로 ‘빛’이 들어가면 쉽게 금이 가고,
언젠가 모든 은폐되었던 것들은 사라지고야 만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나약한 영역이다.
진실은 밝은 곳에 있지 않을까. ‘웃음’이나 ‘기쁨’, ‘행복’,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자유롭게’
‘굴복시킬 수 있는’ 진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둠이나 금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중세의 종교권력은 오래 고여 썩은물이 되었고,
어둠으로 굴복시키려던 욕심은 어리석은 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이다.

영화는, 원작의 방대한 철학적 종교적 내용과 깊이를 다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추리사건에만 집중한 듯 한데,
두 시간짜리 상업영화로 축소하기엔 나름대로 지혜로운 짜임새를 갖추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세의 암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수도원의 분위기는,
CG의 힘을 빌리지 않은(1986년작임) 투박함 때문에 더욱 매혹적이며,
함께 수도원 살인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와 그의 어린 제자 수도사(크리스천 슬레이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미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의 조합, 그리고 어둠과 비밀들을 간직한 여타 수도사들과의 어울림도 흥미로웠다.

연륜이 묻어나오는 카리스마를 지닌 윌리엄에 비해, 유약하고 아름다운 기운이 배어져 나오는 소년 수도사.
당시 10대였던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맡은 소년 수도사와, 화형당할 마녀로 몰리는 여인과의 정사장면은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오히려 아름다운.

* DVD가 출시되면서 오래된 이 영화를 구해볼 수 있게 된 것이며, 덕분에 개봉당시 잘려나갔던 장면들이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Comments on this post

  1. ornus said on 2005-12-19 at 오전 9:21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봤다 ^^

  2. wisepaper said on 2005-12-19 at 오전 10:58

    나두 옛날부터 읽어봐야지 생각은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못읽은..

  3. 암헌 said on 2005-12-20 at 오전 1:06

    내가 ‘웃음’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영화이기도 했지..

  4. ornus said on 2005-12-22 at 오전 9:46

    참, 암헌이 쓴 그 웃음에 관한 글 보고싶어 ^^

  5. white said on 2006-01-09 at 오후 2:03

    영화는 본 적 없이, 원본 소설만 읽어 보았지.

  6. wisepaper said on 2006-01-21 at 오후 11:29

    ㅋㅋ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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