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색의자
<녹색의자>
* 감독 : 박철수, 배우 : 서정(문희 역), 심지호(현 역)
묘한 분위기를 가진 여배우 서정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영화를 눈여겨두었었다. 그리고..처음 영화를 보았을 땐 얼떨떨했다. 꽉 짜여진 내러티브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에선 내 영화취향에 맞아떨어졌지만, 생경한 구성과 촌스러운 건너뜀, 연극적인 대사와 톤 등이 불편함을 주는 영화였다.
찾기 힘든 정보들을 찾아다녔다. 이 영화가 2년 전 겨울에 찍었지만 개봉관을 잡지 못해 지금에야 개봉하게 되었다는 사실, 선댄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서정과 심지호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얻게 되었다.
DVD로 영화를 다시 보고 Special Feachures에 있는 메이킹 필름을 보았다. 소년 현과 여자 문희가 막 섹스를 마치고 국에 밥을 말아먹는 씬을 찍고 있는 장면이었다. 말간 얼굴을 하고 재잘거리는 어린 남자배우에게 나이 지긋한 감독이 장면 설명을 한다.
“그런거. 너의 그 싱그러움이 문희를 아프게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가슴께에 욱신거리던 이상한 아픔이 풀리면서 눈물이 났다. 알 것 같았다.
아픔은 싱그러움으로부터 온 것이다. 화양연화.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
대사를 이어가는 현의 얼굴을 쳐다보며 감독이 흐뭇하게, 오랫동안 웃는다.
영화판에서 이미 중견감독을 넘어선 나이의 박철수 감독은, 자신의 어떤 컴플렉스로부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컴플렉스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다시는 오지 않을 싱그러운 시절들에 대한 슬픔일수도 있고, ‘어린 남자와 이혼녀의 성관계’라는 선정적인 소재 뒤에서, 우리 인생과 사랑의 화양연화에 보내는 따뜻한 찬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박철수 감독은 이 찬사를 위해, 남성감독으로서는 놀랍게도(전작들도 여성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욕망과 딜레마를 파고드는 것을 선택했으며, 여성의 시선으로 남성의 몸-영혼-아름다움을 조율한다.
이 영화는 사랑 영화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풋풋한 남자가 가진 묘한 의젓함, 집착과 외로움 속에서 자꾸 불안해하는 여자.
정말 사랑에 관한 영화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남았던 불편함이 두 번째, 세 번째에는..
아픔과 충돌하면서 사랑의 내밀한 기억들을 꺼내게 만드는 ‘진짜 사랑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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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그래..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파멸의 시작이라는…우선 화양연화부터 봐야겠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파멸의 시작이다..” 네가 종종 쓰던 이 표현.. 전부터 저릿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