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유재현,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창비, 2003.

저자 유재현 : 소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차이나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행을 시작했으며, 한때는 캄보디아에 머물며 인도차이나 곳곳을 탐사하기도 했다. 우리 작가 중 드물게 ‘아시아’에 천착하고 한반도와 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하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메콩강을 따라가며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현재와 과거를 짚고 있는 이 책은 전쟁의 슬픈 그림자와 신비하고 위대한 문명의 매혹이 공존하는 땅, 인도차이나에 대한 ‘역사문화기행서’이다.

저자는 인도차이나 전쟁(우리가 흔히 ‘베트남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이 전쟁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이 전쟁은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반도 곳곳에 잔인한 흔적을 남겼다)에 담긴 미국의 지독한 야만을 고발하면서도, 그 미국과 싸워 이긴 베트남을 미화하지 않는다. 1975년 종전 이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 라오스에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인도차이나의 패권주의자’를 자처했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베트남의 위대한 영웅 호치민이 죽고난 후,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는 호치민의 유훈통치에도 비판적 시선을 드리운다.

캄보디아 현대사의 비극, 킬링필드(캄보디아의 공산정권인 폴포트 정권의 학살과 만행)의 오욕에 대해 말하면서도, 폴포트 정권의 잔인함을 폭로함으로써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로파간다로 삼은 베트남의 태도를 문제삼는다.

이 책이 매력적인 또다른 이유는, 인도차이나에 드리운 전쟁의 공과(功過)와 역사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매혹적인 문명(앙코르 문명)과 자연을 애정어린 발걸음으로 여행한 기록들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에 ‘인도차이나’의 땅을 부분적으로 밟아보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저자처럼 땀에 젖어 냄새나는 배낭을 메고, 찬찬히 밟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을 피해 게릴라전을 전개하기 위해 베트남군이 뚫었던 꾸찌터널에 대한 저자의 기록을 남긴다.

“…어두운 터널에서 어느 순간 나는 혼자 남겨졌다. 끔찍한 공포가 온몸을 덮쳤다…그럴 리가 없지만 영영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절망감과 금세라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좁디좁은 터널의 어둠 속에서 나는 그만 주저앉았다… 그것은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움직일 수조차 없는 ‘구멍’이었다…
꾸찌는 전쟁이라는 광기의 신이 만든 지옥이었다. 그들이 버티고 감내해야 했던 전쟁은 꾸찌를 지옥이라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는 극한을 넘어선 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날 밤 나는 호찌민의 호텔에서 악몽에시달려야 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구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그리고 이라크, 가깝게는 한반도를 둘러싼 끊임없는 패권주의를 보면서, 나는 가끔 절망한다. 슬픈그림자는 메콩에만 드리워져 있는 게 아니다.

Comments on this post

  1. J said on 2005-06-07 at 오전 10:44

    이 책… 되게 끌리네… 당장 서점 가봐야 겠어 ^-^

  2. wisepaper said on 2005-06-07 at 오후 4:55

    소설가가 써서 그런지 글 자체도 잘 썼고, 내용도 진지하고 좋아요~게다가 사진도 많구..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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