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그릇, 화기, 테이블 이야기
이사온 후 1년 5개월 동안 야금야금 변한 거실
어디서든 오래 살고픈 맘이 없기에 고가의 귀한 가구나 커다란 가구는 들이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집이기에 가구의 수도 최소화, 디자인은 최대한 단순,
아이가 뛰어다니면서 흠집을 내도 속상하지 않을 만큼의 가구들만 놓는다.
물론 난 흠집 하나 없는 반들반들한 것보단 살면서 자연스럽게 마루에 생긴 흠집, 손떼 묻는 서랍장이 더 좋다.
그러나 아이란 존재는 태생이 흠집내는 걸 좋아하는 존재다. 아이가 활동하면서 내는 흠집이란 자연스런 생활흠집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니 고운 가구 들여놓고 아이의 활동성을 일일이 저지하기보단 흠집 나도 괜찮을 물건들을 놓고 마음 편하게 쓰는 게 행복한 일이다.
우린 흠집이 적당히 생기는 원목마루를 좋아하지만 열음이를 생각해서 강화마루를 깔았는데 그 어떤 뾰족한 게 닿아도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다-.-
우린 좌식생활을 한다.
부엌 식탁은 물건을 쌓아두는 용도로만 쓸 뿐이고 이 좌식 삼나무 테이블 위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장난감도 여기서 갖고 논다.
얼마간은 식탁에서 식사하고 아이에겐 아이용 높은 의자를 사용하게 했더니 보는 내가 더 갑갑했다.
식사 시간에야 그 높은 의자에 쏙 들어가 식사를 끝내면 될 일이지만, 아이가 평소에도 우리랑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다가
자기 내킬 때 테이블 앞에 와 앉아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나니까 맘이 더 편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그릇들 중에서 ornus도 맘에 들어하는 것들만 꺼내 놓았다.
이것저것 요렇게 놓아도 보고 저렇게 놓아도 보는 테이블 데코가 재미있어졌다.
그러나 나란 사람,
대접 하나면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을 수 있는 헐랭한 사람이라
여러 그릇 애호가님들처럼 뭐 포트메리온 같은 수입 도자기류나 유럽 빈티지 접시들, 또는 동양의 유명 도자기 그릇들을 모으는 고상한 취미 같은 건 없다.
내 취향은 무늬 없는 단순한 디자인에 조금 두껍고 투박한 듯하게 구워진 유백색 또는 무광 검정 그릇들에 한정돼 있다.
유백색 드레싱 볼엔 드레싱만 담는 게 아니라 우유도 담아내고 과자도 담아내고 아무거나 상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램킨 네 개.
높이가 3cm밖에 안 되는 작은 램킨들. 나는 무광 검정색을 특히 좋아한다.
소스류를 담아내도 되고 작은 피클 같은 걸 담아내도 되고.
작은 조약돌 넣어서 테이블 센터피스로 써도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무광 검정색 평사각 접시. 가로 세로가 30cm라 넉넉하고 굴곡이 없어 맘에 쏙 든다.
ornus가 좋아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류 – 식빵 크게 잘라서 두 덩어리 올려놓고 계란 올려놓고 샐러드 올려도 넉넉하다.
이런 식사에선 왼쪽 조개모양 볼에 씨리얼 담아 내고.
굴곡이 화려한 그릇은 내 취향이 아니고 딱 요 정도의 부드러운 굴곡이 좋다.
이 조개 모양 볼에는 따뜻한 수프나 죽, 씨리얼, 과자.
손잡이가 맘에 드는 유백색 머그
역시 난 검정이 더 좋다.
바닥은 뾰족하고 윗면은 넓은 이 볼에는 멸치랑 대파랑 홍고추랑 우려내기만 하면 후딱 만들어먹을 수 있는 잔치국수나,
매실 원액, 양파, 김치, 고추장 섞은 양념장 넣어 만든 비빔국수를 올리면 딱이다.
유채색 그릇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색이 고와서 거의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유채색 그릇들이다
유채색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면 음식이 돋보이지도 않고 입맛이 살짝 떨어진다.
열음이가 좋아하는 색색 접시는 파스타 접시로 쓰면 되고
왼쪽 작은 공기엔 밥을, 오른 쪽 넓은 면기엔 라면이나 우동을 담아내면 귀여울 것 같다.
색색 공기들. 두 번째 도브 하늘색이 이쁘다.
이 진자주색, 인디핑크색 용기는 양념이나 음식을 저장하는 용기라는데 나는 꽃을 담아내는 화기로 쓴다.
나는 화기 역시 이렇게 단순하고 투박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ornus가 퇴근할 때 꽃을 조금씩 세 다발 만들어 왔다.
회사 앞에 괜찮은 꽃집이 있다는데 화기를 센스 있게 데코해놔서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여기 꽃집 얘기를 종종 한다.
화기로 쓸 아까 그 양념 저장용기와 꽃들. 커다란 흰 수국, 노란 카라, 줄호엽란, 여러 색 리시얀셔스, 주황색 다알리아다.
라넌큘러스 한 송이 짧게 꺾어서 낮은 화기에 꽂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은 라넌큘러스 철이 아니란다.
나는 이벤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괜한 날에 이벤트로 으스대는 것보다 평소에 서로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게 좋다.
연애할 때 내 지론도 “꽃 살 바에얀 먹을 걸로!”였다-.-
그런데 오히려 결혼 후엔 화기 쓰는 데 재미가 들려서 가끔 꽃을 사오는 게 좋다.
사실 우리가 더 바라는 건 꽃집에서 사온 꽃보다 집 뒤뜰에서 계절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마음 내킬 때 한 송이 툭 꺾어다가 별 일 없이 꽂아 놓는 거다.
ornus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줄호엽란을 감아서 유리병 안에 넣었다. 이것도 화병으로 산 게 아니라 꿀 들어있던 유리병이다.
꽃 사온 날은 되도록 한데 모아 한 화병에 꽂지만
며칠 지나면 짧게 잘라서 낮은 화기들에 한 송이씩 꽃거나 길게 잘라 긴 화기에 한 송이씩 꽂을 거다.
수국은 짧게 잘라서 진자주색 화기에 담았다.
먹음직스럽다.
사과잼이 들어있던 용기.
화병 따로 안 사고 이런 거 모았다가 여러 개 죽 늘어놓고 꽃잎이 탐스러운 꿏을 한 송이씩 담으면 좋다.
소나무 냄새가 나서 좋아하는 민트색 소나무 서랍장 위에 올려놨다.
나란 사람, 대접 하나만 있으면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라면도 먹고
포크 같은 것도 꺼내기 싫어서 젓가락으로 과일도 빵도 푹푹 찔러 먹는 헐랭한 사람이라
쓰는 사람, 먹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우아한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고 조금은 투박한 그릇이나 화기들 이렇게 저렇게 꺼내서 이리 저리 배치해보는 걸 좋아할 뿐이다.
그릇이나 화기를 쓰는 일에 규칙은 없고 내 마음대로 용도 변경, 편하게 쓰는 게 좋다.
꿀이나 잼 들어 있는 병, 낮은 양념 용기, 네모난 접시를 화기로도 써 보고
넙적한 쟁반 위에 시원한 메밀국수나 비벼 먹는 면 요리를 담아내거나 드레싱 볼에 아이스크림이나 죽 같은 것 담기도 하고.
이것도 평일엔 거의 불가능이고 주말 이틀간은 되도록 노력하는 거다.
아이와 함께 셋이서 거실에 도마 놓고 감자도 썰고 무도 썰고 반죽도 하고 그릇도 이것 저것 맘껏 꺼내고
설거지도 열음이는 의자 위에 올려서 아빠랑 같이 하게 둔다. 본인이 워낙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건 그저 식사라기보단 하나의 놀이이고 그림 그리는 일이고 즐거운 만들기 작업이다.
요즘은 입덧으로 음식을 못 먹고 쳐다보는 것도 힘들다. 입덧 빨리 끝나서 맘 편하게 꺼내놓고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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