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못해 쓰는 이야기

1.
은율이를 갖게 되었다는 걸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대부분은 우리의 평소 생각을 알고 이해하던 사람들이기에 그냥 다른말 없이 “축하해~ 몸조심해~” 정도의 안부인사가 대부분이었다.
근데 간혹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고 잘됐네. 자기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맘도 알고 그런거지. 자기자식을 못 낳아보면 그런거 모른다. 잘 됐네.”

가깝지도 않은 사람의 저런 무신경한 말 따위. 그 순간에는 그냥 훗하고 웃고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집에 와서 잠들려고 누우면 저 말 속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폭력에 나도 상처를 받고 가슴이 쓰라린다.
아, 왜 그냥 웃고 넘겼을까. 당신 말은 틀린 말이라고 바로 잡아주고 올 걸 그랬나.(누구나 잠들기 직전, 왜 그 때 이 말로 받아치지 못했지? 하며 거침없이 하이킥 한번쯤은 하지 않나요-.-)

“우린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은 적은 없지만
내 자식 낳아본 적 있고 낳아서 기르고 있고 그러니 당연히 부모맘이 어떤 건지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맘을 아는 것도 아니거든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우리 삶을 경험해본 적 없으니 당신의 경험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거랍니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나면 그래.. 그렇다.
나도 수년 전부터 입양을 생각하고 살았어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생물학적으로 낳고 안 낳고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정도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진 못했으니까.. 그 사람도 그럴테지 하고 넘겨버리려고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이 아이를 내 자식으로 여기고 매일매일을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하며 이런저런 고통과 행복을 함께 겪어가며 성숙해가는 삶의 과정이다.
어느날 하루 아침에 단지 유전자가 섞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끔찍하게 사랑하게 되는 그런 퐌타스틱한; 일이 아니다. 자식사랑이란게 그런 퐌타스틱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하루하루 계속되는 육아의 지난한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람일 거다. 아마도 배우자가 더 많이 고생하고 있겠지. 아마 나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거다.

“내 자식이니까 이뻐보이는 거지, 으휴 내자식이니까 참지.. 으휴 내 자식 아니면 어떻게 키워?” 가끔 육아 스트레스에 지친 엄마아빠들이 이런 넋두리를 하는데 우리도 백번 공감이다.
우리도 “열음이가 우리자식이니까 참지, 으휴 남의 자식이었으면 이꼴 저꼴 다 봐 가며 이걸 어떻게 키워?” 한다. 우리 보고 옆집 아이 데려와서 키우라고 하면 힘들거다. 그앤 우리 자식이 아니니까.

처음에 은율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아주 잠깐 당황했었다.(지금은 당연히 아니다 어허허)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일이기에 당황스러웠고 우리가 생각한 또 하나의 기회를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속상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열음이를 한창 키우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 둘째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고 만약 다시 둘째를 갖게 된다면 열음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나고 싶다고 계획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여력 안에서 최대한 기를 수 있는 아이 수가 두 명 쯤일 거라고 판단하기에 하나 남은 기회가 뜬금없이 차단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순간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은율이를 가진 게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하고 얼굴이 궁금하고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있다. 은율아 꼭 건강한 모습으로 1월에 만나자~)

이 글을 읽으며 속으로 혹시 “자기네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뭐 대단한 인간들이라고 그렇게 살겠다는 거야? 혹은
생물학적 자식보다 입양한 자식을 더 원한다니 심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거나 자신을 기만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건 그 사람의 일생 가운데의 특정한 경험이나 지속적인 생각 또는 일시적이고 충격적인 생각 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여러 계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과정일거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가진 여력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것이 사람 하나를 사랑으로 품어내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고 앞으로도 우리가 가진 여력의 범위만 더 커진다면 또 한 명 더 이렇게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누군가에겐 희한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출산에 대한 욕심은 없고 여력 된다면 세상에 이미 있는 아기를 잘 키우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관심은 있는거다.

2.
아이를 키워보니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 하나가 있는데 사람이 사람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확신이다. 물론 성인들 중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따위 필요없어 나 혼자도 괜찮아” 하는 쿨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는 절대 아니다.
아이는 사랑 없인 마음이 병들고 몸도 병든다. 널 사랑해. 너는 우리에게 소중한 보물이야. 우리가 다 받아줄게.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마. 하는 절대적인 사랑을 지속적으로 부어주는 존재를 통해 형성된 자존감으로 아이는 생존할 수 있고 건강하게 한 인간으로 세상에 설 수 있다. 물론 이건 많은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입증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 자존감 없이 세상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건 사회 전체적으로도 불안한 일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내 사적인 결정에 터치하지 않길 바라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사적인 결정들도 존중하고 어지간해선 터치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내 오지랖으로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마음이 되고 환경이 된다면, 부모 없이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는 일을 더 많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고 권하고 싶다.

뉴스를 보니 어쩌면 국가 이미지를 위해 해외입양을 점차 줄여 나갈거라고도 하고 없애려고도 한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젊은 이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그 기사 밑에 달리는 “해외로 입양되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우니 해외입양을 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며 나는 기가 막힌다.
어떤 이들은 해외 입양 과정에서 복지기관이 브로커 역할을 하며 돈을 받는 사례가 있다는 걸 비판하면서 해외입양의 불합리함에 대해 떠든다. 나는 이런 반응 역시 기가 막히다. 브로커가 있다면 없앨 일이고 문제가 있다면 고칠 일이지만 해외 입양을 없앨 일은 아니다.
한국 아이의 부모가 시퍼런 눈이건 시뻘건 머리건 시커먼 얼굴이건, 한 아이에게 부모가 없는 일보다는 백배 낫다. 한 나라의 그 따위 국가 이미지보다 한 아이의 인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안에서 자국 입양률이 형편 없고 지금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는데 그놈의 국가이미지 때문에 한 아이가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큰다고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떨려올 때가 많다.

내가 복지기관에서 알게 된 바로는 우리의 자국인입양률이 생각보다 굉장히 낮고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입양률도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가들은 신생아 일시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입양이 안 되고 보육원으로 간다고 한다.
(한 가지 부연설명 하고 싶은 건 입양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직접 선택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복지기관의 원칙은 부모가 될 이들과 수개월간 심리상담을 하고 자격을 심사하며 그 부모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환경의 아이를 복지사가 임의로 연결해서 첫만남을 만들어준다. 우리도 그렇게 열음이를 만났다. 대부분의 부모는 첫만남에서 그 아이로 결정하게 되고, 만약 이 첫만남에서 아닌 것 같다란 마음이 들어 입양결정을 한번 유보한 이들은 결국 입양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육원은 한 아이를 먹여주고 재워주긴 하겠지만 소수의 보호자가 다수의 아이를 관리하는 그런 시스템으론 한 아이의 인생이 건강하고 여유롭게 자라나기엔 한참 부족한 곳이다.
만 3-4세 이하의 아이들이 있는 영아원에 하루라도 가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다. 내 발을 붙잡고 매달리며 안아주세요 안아주세요 하고 우르르 달려오는 애들은 만 두세살 짜리 애기들이었는데 그보다 더 큰 애들은 이미 포기를 배웠기 때문에 그냥 무심하게 서 있기만 한다.
첫돌 되기 전 아이들은 방 안에서 수십명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다같이 따라 우는데 인력이 부족한 영아원의 보육자 입장에선 습관적으로 울음을 달래주러 가지 않은 채 가만 놔둔다. 그럼 어느 순간 저절로 울음이 멈추고 이게 반복되면 아기들이 잘 안 울게 된다고 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한 아기가 세상을 믿을 만한 존재로 여기고 살아갈 힘을 갖게 되는 건 자기가 울 때마다 즉시 반응하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양육자와의 애착 덕분인데, 이렇게 아이를 방치한다는 건 세상을 불신하고 상처입은 채로 살아갈 미래의 성인들을 양산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거다.

3.
우리가 공개입양을 선택한 건, 우리보다 입양의 역사가 더 길고 그에 따른 문제도 더 오래 겪어온 선진국에서 비밀입양보다 공개입양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경험이 쌓여 있기 때문이고 한국에서도 입양모임에서 들어보니 실제로 공개입양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가족의 개념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면 비밀입양을 했다가 커서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세상에 비밀은 없다)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안정적으로 잘 자라난다고 한다.
공개입양에 대한 우려는 입양을 안 해본 사람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걱정들인데 실제로 입양되어 어릴 때부터 입양에 대해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뿌리나 현재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건강하게 받아들이는데 외부의 시선들 때문에 불편한 게 아마 더 클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데,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고 언젠가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데 자신의 뿌리나 출생과정이 비밀에 쌓여있는 경험을 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했다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열음이에게 열음이의 생물학적인 뿌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도록 오픈할 것이며, 열음이의 생물학적 엄마(누군지 모르지만 복지기관에 문의는 할 수 있다)와 열음이가 원한다면 만나게 해주고도 싶다. 입양된 아이가 자신의 생물학적인 뿌리에 대해 궁금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능하면 이 궁금증을 해소하게 해 주고 싶다. 간혹 티비에서 입양아가 생물학적 부모를 만나는 일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몇 년 이상 키우다가 입양보내는 경우가 아니라 신생아 때 입양되는 아이의) 실제의 경우, 그 때 아이의 반응은 다른 게 아니라 궁금증이 해소되었다는 안도감이 클 뿐이지 그 이상의 감정은 생기기 어렵다고 한다. 티비에서 보여주는 경우는 몇 년 이상 키우다가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그 아이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만났으니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또 방송에 먹히니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기껏 키웠는데 생물학적 부모한테 아이가 애정을 보이면 속상하지 않을까? 글쎄 나는 자식이란 존재가 내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음이뿐 아니라 은율이도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더욱 열음이는 생물학적 부모 덕분에 우리가 이 사랑스런 존재를 만난 게 가능한 일이니, 우리만이 부모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상하지 않다.

우리만큼 우리 열음이를 끔찍이 사랑하고 육아도 오랫동안 도와주고 계시는 우리 엄마는 아주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열음이한테 그냥 말하지 않고 키우면 안 될까. 니네들 외국나가 살 계획 있다며.. 그럼 그냥 모르게 하고 살면 안 될까. 열음이 맘고생하면 어떡하니..”
나는 우리 엄마의 이 마음을 알기 때문에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과 우리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거다.
나는 자식이 겪을 문제를 회피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기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가끔은 마음이 아파온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에.. 열음이 마음을 우리가 백퍼센트 이해한다고 할수는 없는 일이기에. 내새끼 열음이가 이 문제를 극복하는 경험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릿저릿하다. 그냥 열음이를 내가 낳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같은 경험을 한 입양부모와의 모임이 필요한 것 같다. 아이를 입양한 부모들의 경우 오랫동안 불임으로 고생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낳은 자녀도 있는 상태에서 또 입양한 경우가 더 많다. 그 아이들은 부모와 자식 관계라는 게 꼭 혈연으로만 맺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뤄지는 거라는 걸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유연하게 자란다고 한다. 비밀입양되었다가 비밀이 드러난 가족이라면 생물학적 자녀와 입양자녀 사이에 갈들도 겪겠지만 처음부터 공개입양해서 지지고 볶고 같이 자란 아이들의 경우에는 입양에 대해 특별히 다르다는 시선을 품지 않고 그냥 자라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매일 같이 구르고 지지고 볶는 형제끼리 유전자가 어떻고 핏줄이 어떻고 할 이유가 있겠냔 말이다.

언젠가 한 지인으로부터 자신은 간혹 입양해서 아이를 파양하거나 제대로 잘 못 키우는 사람들 때문에 입양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생물학적 부모들이라고 해서 자식을 다 잘 키우는가? 생물학적 부모들도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숙고와 노력이 없으면 자식 잘못 키우게 될 수밖에 없다. 입양한 부모라서 다를 게 없다. 입양했다가 파양한 사람들의 경우는 제가 낳은 자식 버리는 부모들의 경우와 비견될 것이고. 

실제 통계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부모가 되는 일이야 별다른 숙고 없이도 자연스럽게 혹은 계획 없이 실수로 부모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입양부모의 경우는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해 많이 숙고하고 결정한 일이기에 확률상으로 안정적인 부모가 되는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막연한 우리의 바람은, 앞으로 우리의 경제상황이 더 좋아지고 마음의 여력이 더 커져서 또 이렇게 아이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우리의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나아갈지 우리도 모르는 일이니까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싶다.

4.
이 부분은 입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육아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살아가는 일에 대해 더 여유롭고 폭넓게 생각하게 됐다. (물론 아이 기르는 일 아니라 다른 일로도 이런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당연히..) 이전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뭐 하나 잘못되면 다 잘못될 것처럼 여겼는데 이젠 열음이를 기르며 은율이를 품으며 오히려 내가 어렸을 때 품었던 꿈에 대해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건 전에도 썼지만 내 경우엔 몇 가지 행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나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회사생활 속에서 자아정체성이 많이 흔들리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유형의 인간이라 전에 내가 품었던 꿈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던 중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숨을 돌리다보니 앞으로의 삶에 대해 용기가 더 많이 생겼다. 물론 이건 쉼 없이 커리어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유형의 직장여성이거나 잠시라도 맞벌이를 쉬면 생계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므로 나의 경우에 국한된 경험이다. 지금 내가 마치 거북이처럼 느림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일하던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강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내가 도전해야 할 일이 터무니없이 어렵게 느껴지게 됐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그냥 애 키우듯이 닥치면 다 하는거지 뭐..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크다. 아니 그에서 더 나아가 나의 행복이 내가 버는 연봉이나 지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흔들리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근원적인 자존감과 삶에 대한 숙고에서 얻어진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

5.
이런 글을 쓸 때면 몇 번이나 그냥 쓰지 말까 망설이게 된다.
이 공간이 내 일기장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구석진 공간이고 알린 사람도 몇 없지만 혹시라도 알고 들어오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 속내를 노출해도 될까 걱정할 때도 있다.
별다른 고충 없이 열음이도 은율이도 척척 잘 키워내는 모습만 보이면 얼마나 더 쿨해보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근데 난 쿨하지 못한 인간이다. 쿨한 것도 싫다. 나는 그저 생각과 경험이 여물지 않아 매일매일 이런저런 고충 속에서 더 나은 삶의 방향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쿨하지 못해서 쓰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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