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가 없다, 여행 준비, 안도 다다오

1. 프린터가 없다

서핑하다보면 책으론 나오지 않은 내용인데 값진 정보나 깊이를 담고 있는 글들이 있어서 프린트하고 싶을 때가 간혹 있다.
또 여행을 준비할 때는 워낙 다양한 정보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웹으로만 보기보단 그때 그때 프린트해서 소장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는데
문제는 말이다.

우리집에 프린터가 없다!!!
그리고 여태까지 살면서 한 번도 프린터가 있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한동안 프린터와 복합기를 만들어내는 사업부에서 일했던 사람이 집에 있는데도 프린터가 있었던 적이 없다!!

아무튼 여태 꾸역꾸역 어떻게든 살아왔는데 이젠 프린터 하나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프린터는 별 기능 없고 고장 안 나고 속도 느려도 그냥 프린트만 되면 되는 그런거. 집구석에 놀고 있는 몇 번 쓰지도 않은 루믹스 LX3카메라 중고카페에 내놔야 겠다. 프린터값 이상은 건지겠네.

2. 여행 준비, 건축, 안도 다다오

언제나 그랬지만 여행의 진짜 시작은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다. 아니 어쩌면 이게 본론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큰 틀에서 잡다하게 정보를 찾아보다가 내 관심사에 맞는 몇 개의 주제에 따른 동네 – 거리들로 방향이 압축되고 그 다음엔 거리의 모양, 집, 건축물로 관심사가 좁혀진다.

이렇게 내가 가야할 곳이 몇 가지 거리로 압축되고 나면

일단
조금 큰 틀에서 거리가 만들어진 모양새, 사람 모여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흐름, 그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거리 또는 애초에 거리 생긴 모양새를 따라 만들어지는 흐름, 그것을 바꾸는 새로운 움직임은 무엇일까에 관심이 가고
그 다음엔 거리를 이룬 건물 하나하나에 담긴 미적, 공학적 의미들 알아내보려고 애쓰는 과정도 재밌다.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들의 99퍼센트가 인상과 감상이 담긴 여행기들인데 물론 이곳들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지만 역시나 가장 큰 감흥이 이는 곳들은 거리나 건축물을 전문적인 관점을 섞어서 풀어쓰고 있는 블로그들이다. 특히나 건축학 전공자들의 건물 바라보기가 부럽고도 재미있다.
전문적인 관점이 없을 때도 물론 건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순 있다. 일단 거리와 건물은 이미지로 다가오고 인상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감상을 아주 잘 다듬어봐야 추상적인 인상비평 혹은 감상문밖에 되지 않는다.
어려운 용어로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건축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관점이 들어가면서 맛나게 쓰인 글들에 눈길이 간다.

사실 대학때부터 건축학은 공부해고픈 분야 중 일순위였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하긴 자신이 없다. 물론 건축학이 미대에 속하는 곳도 있고 건축엔 철학과 역사, 사회가 담긴다고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공학적인 아이디어와 숫자들과 친숙한 사람이어야 건축을 재밌게 할 수 있다.

나는 무슨 트라우마에서인지 숫자와 공학쪽으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가난한 공대생과 연애를 한 것도 물론 사람이 좋아서였겠지만 어느 부분은 공대생에 대한 의미부여 때문이었을거다. 요즘 보면 공대생에 대한 자조 섞인 재밌는 우스개들도 많지만 여전히 공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내게 일정 이상의 환상과 분위기를 가져다준다. 거칠게 요약하면 너드 스타일에 가까운 멋없는 이미지도 좋다-.-)

지금까지 그저 단순 취미였던 건축에 대한 관심을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빠져들다 보면 어쩌면 며칠간의 여행은 아무것도 아닌지도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준비하다가 배우는 것들이, 느끼는 감성들이, 스쳐지나가는 이런저런 단상들이 더 소중해진다.

 

많이 알려진 안도의 작품 빛의교회와 물의교회 – 아쉽게도 오사카에 있어서 이번 여행에선 가볼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건축가 중의 한 사람은 안도 다다오. 이 사람은 정규교육을 통해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다. 1960년대에 약 8년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건축물을 홀로 답사하며 공부한 것을 시작으로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가장 일본적인 건축관을 지녔으며 은유적인 건축으로 인정받는 건축가다. 일본적인 건축관은 무엇이며 건축이 은유적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의 건축물을 일단 보면 나대지 않으나 견고한 선이 먼저 다가온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여겨지는 이런 요소들이 그의 건축을 또한 매우 근대적이라고 평가받게 한다. 건축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그 이름은 들어봤을 근대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의 책을 보며 독학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가 정규교육으로 건축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 내게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주 단순한 선과 박스로 이루어진 근대적인 건물에 빛, 물, 계절 등 자연을 끌어들여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감동을 주는 작품들.

도쿄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중 유명한 특정 몇 군데만 둘러봐도 이틀 이상 투자해야 할 것 같다. 

Comments on this post

  1. ornus said on 2010-07-26 at 오후 8:07

    프린터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다고 배송지연될 꺼란다.

  2. 엽기곰순이 said on 2010-07-27 at 오전 2:08

    뭐야? 혹시 삼성프린터 샀단 말이야???

  3. wisepaper said on 2010-07-28 at 오전 12:12

    난 브랜드 상관 없고 무조건 단순하고 그리고 싼거!! 이런데 돈 들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4. ornus said on 2010-07-28 at 오후 12:57

    나름 애사심에 사내쇼핑몰을 통해 사려고 했는데, 재고가 없다네.

  5. 엽기곰순이 said on 2010-07-29 at 오전 12:16

    글치… 프린터는 hp라고 봐.. ㅋ

  6. wisepaper said on 2010-07-29 at 오전 11:40

    왜 이러셔. 제록스껄루 사주지. 제록스 덕분에 뉴욕땅 밟아본 이후로 쓸데없는 제록스 사랑;;

  7. ornus said on 2010-07-29 at 오후 5:39

    제록스 좋은데, hp가 더 싸더라고 @_@

  8. 엽기곰순이 said on 2010-07-29 at 오후 10:51

    에이.. 무신… 솔직한 건 좋지만, 그래도 hp가 낫지.. 사실로다가…

  9. wisepaper said on 2010-07-30 at 오전 12:44

    싸게 샀으면 된거야. 잘산거야. 오늘 택배왔는데 열음이가 다 뜯어서 펼쳐놓으려는 걸 간신히 말렸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