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쓰는 소망

아파 누워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나마 하는 일이라곤 종일 책을 읽거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이다. 아프지만 않다면 나에게 너무나도 잘 맞는 백수생활이다.
그나마 이것도 증세가 심할 땐 힘들다. 그냥 꺽꺽대며 울음 참고 있는 수밖엔..-.-

한동안은 시골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만 주구장창 보았고
최근 일주일 동안엔 핀란드 디자인 관련 책과 영국 작가 포터에 꽂혀서 그가 쓴 피터래빗 이야기 시리즈,
그가 살았던 영국의 호수지방 힐탑 농장, 니어소리 마을, 자신의 재산을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해 시골의 땅을 사들여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모습들.. 에 관련된 책들만 줄곧 읽고 있다.

………..

ornus와 인생을 함께하기로 생각한 스무살(지금 생각하면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우리가 함께 나눴던 대화는 10년 후엔 묶여 있지 말고 겁없이 떠나고 돌아다니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보니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여전히 같고 날이 갈수록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의 바람은 내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다. 슬프지만 이것은 대외적으론 비밀이어야 하는 얘기다. 특히 회사엔-.- 그치만 우리가 언제 떠날지 우리도 모르는데 회사라고 어쩌겠어-.-
아이 둘 데리고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도 하고 싶다. 보러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고 살러 다니는 여행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우리의 많은 시간을 풀타임 직장에 할애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일하면서 되도록 많은 시간 아이들에게도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ornus는 작년에 육아휴직만 가능하다면 1년 이상 열음이만 키워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선 불가능이었다.)

겨울에 은율이가 태어나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첫돌 이전이 데리고 다니기가 가장 쉽다. 안고 다니면 되기 때문에. 돌 이후엔 제멋대로 가려고 해서 어렵고, 두돌 이후엔 부모의 생각을 이해해주니 또 데리고 다니기가 좀 수월하다. 내년엔 열음이가 세돌이 지나고 은율인 첫돌이 안 됐을 때이니 우리가 돌아다니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것 같다.

그 다음 인생은 또 그 다음에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라 믿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린 지난 10여년간 이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틈틈이 정보도 많이 찾아봤고 우리가 잃을 것들, 우리에게 닥쳐올 걱정거리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고 또 고려해보았다.
10년을 정착해서 살았으니 앞으로 얼마간은 좀더 유연하게 살아보고 싶고 그 다음엔 그 다음의 삶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가진 것을 늘려가며 간직하고 지켜가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아직 젊은 우리 시기에 가진 것을 지켜가는 일에 들어가는 우리의 힘을 보다 자유로워지는 데에, 비우는 데에 쓰고 싶다.

우리가 원했던 일을 경험해본 이후에, 가진 것을 비워본 이후에, 결핍을 겪어본 이후에 우리에게 남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길 만한 시각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실험해보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이다.
책도 학교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오직 체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실험하고 싶다.
마음이 맞고 서로의 소망을 아껴주는 삶의 동반자와 아이들이 생긴 것에 나는 눈물나게 감사한다.

인생이 마음먹은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사실 올해에 떠나고 싶었는데 아기가 생긴 것도, 우리 삶에 뭔가 또다른 뜻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겠거니 믿기 때문에 그냥 쉽게 “그래? 그럼 계획을 늦추면 되겠네” 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덜대지 않는 것이다.
떠남이 목적이면 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불편함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면 될 일이고
정착이 목적이면 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핍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면 될 일이다.
지난 시간 동안 이것에 대해서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단순히 떠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에게 얽힌 많은 잔가지들을 떼어내고 가장 단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나에 대한 절실한 고민이고 삶에 대한 숙고이기도 하다.
조금더 바란다면 사회에 대한 공부도 체험적으로든 교육을 통해서든 더 많이 해서 앞으로 우리가 이루고 싶은 일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고민, 가족에 대한 노력이 무르익으면 더 넓은 공동체로, 더 넓은 사회로 우리의 생각이 확장되어 사용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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