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매순간 결핍을 품고 살지만 세속적인 하루 일과에 치여,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 반복적인 일들에 치여,

성찰 없는 웃음을 흘리는 순간순간에 치여 내 결핍을 인정치 않고 살다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오를 때가 있다. 이것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결핍을 견디는 힘으로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하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예술을 하고, 글을 쓰고, 춤을 추겠지.

그러나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결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결핍이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도 고통이지만 결핍이 채워진다는 것은 더한 지옥이다.

결핍 없인 욕망도 없고 갈증 없인 삶을 향한 성찰도 멈출 것이니 그것은 재앙이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다가 좌절하다가 성취하다가 실패하다가

내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이 다음 단계의 내공이 나를 찾아와 줄까.

내 안의 결핍을 가진 채 사람과 사회를 향한 배려를 품고 내 결핍이 만들어낸 고통을 걸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시점.

나는 모자라다오, 나는 고통스럽다오, 자기를 향한 외침이 바깥으로 바뀌는 시점.

..

언젠가부턴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해도

진짜 목마른 진심을 내어놓기 힘들 때가 많다.

허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대화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그의 외로움을 듣고 내 결핍을 말하고 네 삶도 내 삶도 이 정도의 고통과 기쁨을 가지고 굴러가는 것이 다를바가 없구나 하는 소박한 위안과

내 결핍의 일부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금 채울 수 있고 나도 채워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인터넷에 쓰는 아주 사적인 메모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 위선과 가벼운 웃음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만날 수 있겠냐 하는 것이다.

내 안의 결벽주의가 고개를 든다.

가끔 내 결론이 이것도 저것도 다 필요없다 허무하게 귀결될 때 ornus는 인간 사이의 한계를 인정하고 결벽주의를 조금만 버리고 한계 안에서 다른 이와 나 사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다들 어느만큼은 무장하고 살 것이다.

어느 만큼은 냉소로, 어느 만큼은 무관심으로, 어느 만큼은 상대와 사회를 향해 날선 눈빛과 뾰족한 말을 던지는 것으로, 어느 만큼은 쾌락과 취미생활로, 어느 만큼은 바쁜 하루하루 업무량으로..

그러나 누군가 어깨를 진심으로 건드려준다면 왈칵 울 수도 있고 기대보고 싶은 진심이 나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은 없다고 진심으로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을 볼 때 나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Comments on this post

  1. shana said on 2010-05-01 at 오전 1:01

    지혜씨! 완전 동감. 우리 남편도 내게 늘 그런 말을 한다… 더러는 expectation을 낮추라고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같이 차 한잔이라도 하구 싶구나…

  2. wisepaper said on 2010-05-03 at 오전 12:05

    그래.. 기대 낮추면 될텐데 말이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야 할 때 가슴 한 쪽엔 인간관계에 대한 공허함..이 자리잡는다. 씁쓸해지고.. 자 리플로 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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