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웬만하면 육아나 교육에 관한 키워드로 검색해보는 걸 금하고 있는데(아이심리나 아이의 성장에 대한 책은 많이 보지만 우리 아이 영재만들기, 우리 아이 일류대 보내기 등등 아이를 수단화시키는 목적의 글들과 책들이 너무 많으니까 )
가끔 보면 정말 화들짝 놀란다.

두돌 쟁이 아가들은 무슨무슨 전집의 몇 단계를 떼야 하고
무슨 무슨 은물을 해야 하고
무슨 무슨 시리즈를 밟고 있어야 하며
홈스쿨링은 어느어느 회사가 좋고 등등..

패션에만 유행이 있는게 아니라 교육, 아니 육아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은 저런 게 유행인 것 같다.
돈냄새가 나지 않는(즉 어떤회사와 연결되지 않는) 교육법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해도 어떤 키워드를 넣어도
거의 무슨 무슨 회사들에서 주장하는 교육법들이다.

우리 열음.
내가 굳이 앉혀 놓고 책읽기를 시키지도 않는 편이지만
지 스스로도 손으로 몸으로 노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산다.
새, 벌레, 동물도 밖에 나가서, 집앞 초등학교 자연학습장에서 보고, 공차기 공던지기도 학교 운동장에서 하고,
모래, 돌멩이도 나가서 개울에서 던져보고
집안에서는 차 가지고 놀고, 가위질 하고 설거지 하고
엄마 아빠가 하는 거 쳐다보고 있다가 흉내내고
.

책은 자기 좋아하는 차가 나오거나 벌레 나오는 건 본다고 앉아 있기도 하지만 거의 안 읽는다.

나는 열음이가 지금은 글자보다 그냥 세상 그 자체에서 놀이를 발견하고
지 나름의 경험으로 법칙 같은 것도 발견하고
이거 저거 다 해보고 좌절도 해보고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했으면 좋겠다.
특히나 어린 시절은 아이 그릇의 크기를 만드는 시기라고 생각하기에 만들어져 있는 컨텐츠보단
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험을 많이 많이 하게 해주고 싶다.

평일에도 항상 나가 놀지만 주말엔 특별히 엄마아빠와 함께 꼭 여행을 하는데
이제부터 토요일엔 ornus가 다섯 시간 동안 뭘 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함께 버스 타고 서울 가서
나는 열음이 데리고 다섯 시간 동안 골목, 동네 찾아다니며 산책하다가 ornus를 만나 함께 더 걷다가 집에 돌아오게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건축가 임석재가 쓴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을 가슴 설레며 봤는데
책을 읽다 보면 우리 골목이 만들어진 모양이 우리 삶의 모양새대로라는 걸 느끼게 된다.
골목 돌아가는 방향, 길이 꺾이는 모양새에
사람들 살아가는 모양새, 아이들 놀며 뛰노는 모양새, 풀꽃이 자라나는 모양새도 담겨 있다.

아마도 뉴타운이니 뭐니 해서 이 중 많은 골목길들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며 사라져 갈 것이다.
유모차를 끌고 다녀야 해서 언덕길, 계단길을 못 올라간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되도록 작은 골목길 중심으로, 사람 냄새 나는 동네길 중심으로.

혼자 다니면 편했겠지만 혼자 다니면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나 내게 말걸어줄까.
열음이랑 둘이 다니면서 가슴이 뛴다.

다행히 ornus나 나나 둘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두통약을 먹어야 하는 체질들이라
밖에 나가는 거 좋아하는 열음이를 데리고 많이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

Comments on this post

  1. Dawn said on 2010-04-26 at 오전 9:31

    저도 종로나 홍대앞에 사는것이 꿈인데 남편이 회사랑 너무너무 멀다고 힘들다고 하네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엄마네 주택에 데려가면 용은이가 훨씬 좋아한답니다. 사람들부대끼는 골목이 좋은가봐요. 어제 날씨 좋았는데 또 어디 골목을 올레길삼아 탐방하셨나요?

  2. wisepaper said on 2010-04-26 at 오후 8:49

    토요일엔 가회동 다녀왔어요. 열음이가 드디어 유모차 타는 걸 좋아하게 돼서 다섯 시간 넘게 돌아다녔는데 이젠 도무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 해서 밥 먹기 힘들었다는 게 흠이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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