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코스 전력질주

자주 안 가는 엄마들 많은 사이트 들어갔다가 식겁하고 나왔다. 그래도 참고할 만한 글들이 가끔 있어서 검색하고 눈팅하러 한 달에 몇 번은 가는데, 이번엔 영어유치원이 화제였다. 요즘 6,7세들은 영어유치원이 필수인 분위기인 거 같아 보였다.

영어유치원, 일반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아동발달에 관련된 공부를 한 교사가 유아기는 모국어로 사고의 심화와 확장을 경험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에 유치원에서 영어를 씀으로써 얻는 실익보다는 모국어로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지 못해 손해보는 부분이 훨씬 크기 때문에 영유가 문제 많다는 글을 올렸는데 영유를 보내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화나고 난리가 났다.

동의한다.

근데 영유는 둘째 치고 그 밑에 달린 리플들 보고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있다.

“영유 보내고 나면 논술, 국어도 쳐지지 않아야 해서 책으로 뒷받침하고 국어, 논술학원도 다녀야 하고

수학은 선행이 필수라 초등때 중등과정은 떼야 하고 사회, 과학을 위해선 어떤 프로그램이 필수고 인성교육(하.. 이것까지 챙기는 꼼꼼함!)을 위해선 뭘 해야 한다”고 스케줄 다 정해놓은 강남엄마들, 그리고 그 엄마들 흉내내고 있는 분당엄마들, 전국의 모든 엄마들이 입시 스케줄러 같이 보였다.

마라톤 출발하는데 앞코스 백미터는 꼭 전력질주 하겠다
고 떼 쓰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문제의 연속이고 이 때 필요한 건 든든한 자존감과 문제해결 능력, 절망에서 다시 일어나는 회복능력이다. 나는 내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이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행복하고 건강한 어린시절을 보내게 해주는 것, 문제를 성취하고 해결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을 알 수 있도록 동기를 주고 실패와 실수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뒤에서 든든한 조언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될놈될 할놈할이다.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있기 마련. 누구나 다 1등하고 누구나 다 일류대 갈 순 없으니 저런 관점대로 하면 낙오자가 90퍼센트일텐데 저 엄마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기대가 배반당할 거고 그 배반당한 기대로 인한 상실감을 자식에게 정신적으로 보복할 것이다.

인생에 낙오자는 없다. 실수와 절망에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더더욱 확신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의 정서와 행복감은 부모의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지만

재능 부분은.. 없는 걸 있게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있는 재능을 좀더 갈고 닦게 만들 수는 있다. 물론 이 부분도 아이가 원할 때 해야 한다. 부모가 원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열음이 은율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배우길 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뒤받침해주고 싶다. 

가끔 가다 중고등학교 자녀, 대학생 자녀, 취업준비생 자녀들이 느긋하게 리플 단 거 보면 재밌다

“너네들 그렇게 뛰는 거 다 별 소용 없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야….”

 덧)
유아기 아이들과 그 부모가 나오는 방송을 가끔 보면 대부분의 집들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부모책은 하나도 없고 아이들 책만 벽면 하나가득 쌓여있다. 우리집 거실과 안방엔 ornus와 내 책이 99퍼센트고 열음이 책은 열음이가 읽고 싶을 때 자기 방에서 몇 권씩 들고 나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우리는 책 읽으라고 해 본적이 없다.
그냥 우리가 읽고 싶은 우리책을 읽을 뿐
이다. 물론 우리책 우리가 읽는 건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 가능해졌다. 그 전(36개월 이전)에는 아이와 정서적 스킨쉽, 구르고 놀고 오감발달이 제일 중요하다. 이제는 엄마아빠 책 읽으라고 만들기도 하고 블럭쌓기도 하며(물론 종종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우리를 호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들끼리도 노니까, ornus랑 나의 독서가 가능해져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Comments on this post

  1. 96심은하 said on 2012-07-23 at 오후 1:11

    자존감과 문제해결 능력,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회복능력, 이것이 중요하다는것 전적으로 동의해.

  2. 96심은하 said on 2012-07-23 at 오후 1:19

    아 글고 영어유치원…

  3. wisepaper said on 2012-07-25 at 오전 1:51

    언니 생각 구구절절 공감해요. 불안감이 엄마들을 달려가게 만들었죠.

  4.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8-10 at 오후 3:55

    글치, 인생이 참 긴데… 그래서 나는 지금도 참 걱정인데, 내가 영어 유치원 안 다녔는데도 이런 이유는? 근데 그거 알지? 내가 리플 단거 보면 대부분 진정 내 중심적인거. 아… 이게 문제인가? 영어 유치원이 문제인 건 동의하는데, 영어 때문에 개고생 하는 애들과 그 부모들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다들 니네 가족 같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빼빠네 가족들은 모두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케이스가 아니까. 열심히 가정 교육 하고 놀면서 영아기를 보내고, 직장 때려치운 아빠랑 종일 놀아보는 경험을 하고, 책 읽고 글쓰는 엄마랑 놀고, 운과 때가 잘 맞으면 유아기를 미쿸이나 해외에서 보내면서 자연스레 영어 하고.. 이걸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암튼 그런 부모들과 아이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경기장 안에서 배틀할 밖에. 피 터지게 싸우지 않으려면 약은 꼼수와 비겁한 지름길이 우선이고, 피 터지게 싸우게 된다면 이겨야 하고, 이기면 유지해야 하고. 정신 없는 인생을 살다가 죽을 때, 아, 나 왜 이런거니… 하고…

  5. wisepaper said on 2012-08-11 at 오후 12:40

    맞아. 어떤 부분에서 우린 이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처럼 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근데, 우리보다 더 여유롭고 우리보다 더 좋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 중에.. 우리처럼 할 수 있는데 우리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더라. 알아서 그런건지 몰라서 그런건지 둘다 겠지. 나도 매일같이 고민하는데 나의 선택은 그래도 환경 그 이상으로 내 의지로 가능했던 것 같애. 예컨대 아이들에게 학습지 선생을 들이는 대신 같이 뛰어놀며 키우자, 아이들을 더 풀어놓고 키우자 같은거..

  6.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8-11 at 오후 2:17

    그래,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 선을 넘어 올 수 있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고. 깨어나야 하는데. 의지를 자꾸 흔들어 깨워야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