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위의 인물, 나이스한 작별 인사

1.경계선 위의 인물

아침 일찍 애들 데리고 집앞 공원 놀이터에서 보냈다. 열음이와 은율이는 둘이 놀고  ornus와 나는 한 쪽 그늘에서 각자 책을 읽으며 앉아 있었다. 둘이라서 엄마 아빠로부터 떨어져서도 지들끼리 잘 논다.

나는 얼마전에 구입해 아직도 빠져 있는 사회학자 정수복의 프로방스 일기를 읽고 있었다. 서양문명이 중세와 근대를 가로지르는 르네상스의 문턱에서 문명의 방향전환기에 서 있던 지식인 페트라르카 이야기를 읽던 참이었다.

페트라르카는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두 세계를 산 인물이다. 그는 두 세계를 오가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각은 한곳에 뿌리내린 정주민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디 페르타르카뿐인가. 프랑스 사람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썼고, 독일사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영국 런던에서 섰으며, 영국 사람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프랑스 파리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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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사이”의 인물이었고, “경계선”위의 인물이었다. 그에게 균형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기우뚱한 균형”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옛 균형이 깨지고 사색과 명상을 통해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졌다.

이 시대의 사이와 경계의 인물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분주하게 머릿속을 돌려본다.

2. 어제 드디어 ornus가 생애 첫 회사를 8년만에 그만두었다.

언제나 그렇듯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애플의 스티브잡스 얘기까지 갔다. ornus가 있었던 조직의 지사격인 산호세 연구소의 전무가 1980년대 애플 초창기 멤버였고, 독선적인 스티브잡스가 주주총회의 결정으로 잠깐 애플 밖으로 쫓겨났을 때 함께 넥스트 컴퓨터를 설립했던 동료이기도 했단다.  ornus  가 회사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리드했던 프로젝트를 이 연구소와 함께 했기에 이 분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이 분과 일하면서 배운 건 Product를 둘러싼 모든 의사결정은 엔드유저(End User)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현재 이 조직의 의사결정이 이보다는 (사내) 정치적 상황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이 산호세연구소에서 적임자를 구하지 못했던 포지션에  ornus가 잘 맞는다고 판단하고 데려가려고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본사 인사의 반대(역시 사내 정치적인 이유)로 무산됐을 때 그분이 ornus에게 했던 말은 “살면서 언젠가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날이 올거에요” 나이스한 작별인사였단다. ornus도 회사를 나오며 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장점을 짚어주는 내용의 편지와 작은 선물을 올려놓고 나왔다. 나이스한 작별인사가 되었을까.

Comments on this post

  1. a said on 2012-07-15 at 오전 12:08

    m군과 uks군에 이어 ornus군도 8년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두는군. 재밌는 우연인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쨌든 축하하네. 고대하던 휴식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2. ornus said on 2012-07-15 at 오후 6:17

    오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다들 8년 언저리에서 첫직장을 나왔네요. 감사감사, 아주 열심히 휴식하고 가족과 있을 작정이에요.

  3. 96심은하 said on 2012-07-16 at 오후 1:21

    아침 일찍 집앞 놀이터에 나가 독서를 한다라…아…이곳 한중막같은 중국 날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하긴, 난 날씨 선선한 계절에도 공원에 나가 책읽는 일은 늘 상상하면서도 실행에 잘 못 옮겼군.

  4. wisepaper said on 2012-07-16 at 오후 9:22

    중국 날씨 여름에 정말… 죽음이죠.

  5.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7-17 at 오전 12:51

    제임스 조이스는 영국 사람이 아니라 아일랜드 사람임. 아일랜드 사람들이 들으면 피토할 것임. ㅋㅋㅋ

  6.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7-17 at 오전 12:52

    아, ornus, 퇴사 축하!

  7. wisepaper said on 2012-07-17 at 오전 7:55

    아일랜드 사람을 영국 사람으로? 정말 피 토하겠네…. ㅋㅋ

  8. 96심은하 said on 2012-07-17 at 오후 4:29

    음..생각해보니 그렇구나. 그 개월수엔 어른의 의도대로 놀이를 이끄는게 별로 안 좋은거같네. 집에 장난감이 넘 많아도 아이의 창의력에 방해가 될 수 있듯이…그럴거 같구나.

  9. 96심은하 said on 2012-07-17 at 오후 4:54

    곰순아, 맛난거 먹으려고 장보러 간다는 말이 부럽구나. 난 장보러 가려면 한짐이야. 언제 비올지 모르는 이 변덕스런 날씨에 우산까지 챙겨야하니. 기저귀가방 속에 우산까지 넣고…유모차는 넘 무겁고…아기띠 해도 무겁고…

  10. wisepaper said on 2012-07-18 at 오전 5:37

    언니.. 기저귀가방에 기저귀에 보온병에 물티슈에 젖병 세 개씩 들고 다니던 저도 이제 기저귀 두 개만 달랑 들고다니는 날이 왔어요. 애들은 큽니다.. 일년만 기다리면 반으로 줄고 2년쯤 기다리면 다시 작은 핸드백을 들 날이 옵니다! 화이팅~

  11. wisepaper said on 2012-07-18 at 오전 5:40

    애들 놀이는.. 애들이 스스로 집안에 있는 물건들 가지고 뭔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위험한 거 빼고는 되도록 저지하지 말고 스스로 놀이방법을 찾고 성취하도록 격려해주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집에, 바깥에 있는 모든 게 애들 놀잇감이에요. 몇 백씩 들여서 비싼 교구 샀다고 뿌듯해하는 어떤 사람들 보면 전 갸우뚱해요~ 놀이 하라고 만들어진 장난감보다 응용해서 만들 게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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