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가 지쳐 독서 &..

1. 독서에 빠진 열음
 열음이가 놀다 놀다 지쳤는지 요즘에 우리에게 하는 가장 큰 요구가 책 읽어달라는 거다. 우리는 웃음이 난다. 열음이는 어렸을 때 우리가 책을 읽어주려고 가져가면 표지를 덮어버리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 이후 한 번도 열음이에게 책을 억지로 읽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가 싫다면 시키지 말자가 우리 철학이다. 하고픈 일을 잘 하게 만들어주자는 거다. 돌 지난 이후 정말 비오는 날, 눈오는 날만 빼고는 하루에 서너시간은 반드시 들로 산으로 뛰어놀며 키운 열음, 집에 와서 정적인 활동을 할 때도 여태까지는 거의 항상 블럭 쌓기, 로보트 만들기, 조립하기를 했지 책을 읽어달라는 표현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런 열음이가 최근 한 달 전부터는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독서활동;에 푹 빠졌다.

입아프고 힘들어서 두 권만 읽자 그래도 10권씩 가져와 읽어달란다. 어제는 내가 “책에 나오는 토끼랑 양이랑 염소랑 오리가 열음이 잘 때 책 속에서 빠져나와 우리 거실에서 놀다가 열음이 깨기 전에 책 속으로 쏙 들어간다”고 얘기해주었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 “책 속 친구들이 어젯밤에도 책에서 빠져나왔느냐고, 열음이가 보고싶다고 하진 않았냐고” 묻는다.

어느날 열음이는 책 읽다가 지쳐 또 책을 멀리할지도 모르겠다. 궁금하다.

 

2.
하.. 오지랖퍼들을 드디어 나도 만났다. 놀이터에서 남자애들 둘과 놀고 있는 내게 다가온 아줌마들께서 “아들만 둘이냐” 묻고는 세상에서 젤 불쌍해뵌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 딸이 나중에 여행도 보내주고 친구도 되어주고 이쁜것도 사다주고 말도 잘 통한다”며, 어서 셋째를 낳으라고 훈계를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거다. 자식은 내 의지로 낳고 키운거지 자식이 낳아달라고 키워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식이 나중에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원하지도 않는데 부모가 먼저 친구 만들라고 자식을 낳는다니, 어불성설이다. 나는 훗날 자식과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 얘네들은 자신의 인생을 가는 거다. 나는 자신의 인생을 걸어갈 아이들의 뿌리가 든든해질 수 있도록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지,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받으려고 원하는 것도 없다. 성인이 된 후 나로부터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유일한 일이다. 그러나 이 바람 속에서도, 언제나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염두에 둔다. 원래 삶은 그런 거다. 기대를 배반당하는 것.

나는 사랑에 푹 빠지기도 잘 하는 사람이지만 어느 부분에선 냉정하다. 그리고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되 냉정한 기질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최선을 다 하되, 그 다음은 내것도 아니고 내것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식은 독립시킬 거지만 나하고 젤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ornus다. 지금까지는 대화 잘 통하고 마음이 교감되고 육체적, 정서적 끌림이 충분하다. 그러나 훗날 더이상  ornus 와 그런 관계가 되지 못한다면.. …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Comments on this post

  1. ornus said on 2012-07-01 at 오전 1:04

    난 자기 육아법이 우리아이들을 아무런 편견에도 얽매이지 않게 하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2. 96심은하 said on 2012-07-01 at 오전 1:36

    나는 울엄마 여행 보내준적도 없고, 별로 친하지도 않고, 이쁜것도 잘 안사주는 편인데…그래서인지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던데..ㅋㅋㅋ

  3. wisepaper said on 2012-07-02 at 오전 9:36

    ornus/  고마우면 회사 가지 마세요..

  4.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7-11 at 오전 12:41

    흠, 나 보면 딸 필요없는 것 같고, 내 동생 보면 딸이 있으면 좋은 것 같고 뭐. 그건 걍 자식의 성향이나 성격 탓이지뭐. 우리나라 아들들은 죄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자식이라서 그렇고.

  5. 96심은하 said on 2012-07-11 at 오전 12:46

    그래 나도 내가 애엄마라는게 아직 어색하고 실감 안나구..흠…

  6.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7-11 at 오전 1:51

    ㅋㅋ 훨씬 이뻐 정말 다행이야!! ㅋㅋㅋㅋㅋㅋ 나는 행여나 나든 남편이든 닮은 인간 또 생긴기는 거 전혀 바라지 않기에, 일단은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고. ㅋ

  7. wisepaper said on 2012-07-11 at 오후 12:49

    경국지색 심은하님의 딸인데 오죽하겠어요??? ㅎㅎㅎ

  8. 엽기곰순이 said on 2012-07-11 at 오후 11:56

    아, 글쿠나.. 내가 참으로 일반화된 고유명사 심은하씨를 쓰고 있었구나… 아… 이럼 안 되는 거였어… 심은하였던게야..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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