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먼저 간 14살 아이 기사를 보고
“나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는데 엄마는 친척들이 있는 데서 나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내 자존심은 망가졌습니다. 교육만 강조하는 한국의 사회 구조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무조건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요. 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먼저 갈게요. 엄마 아빠, 동생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제 무덤에 아이팟과 곰인형을 함께 묻어주세요.”
경향신문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142210555&code=210000
14살 짜리 아이가 20층에서 떨어져 죽기 전에 남긴 유서다. 스티브잡스를 만나러 먼저 가겠다는 구절에서 심장이 베이는 것처럼 아프다. 며칠 전에는 이보다 더한 기사를 봤다. 전교1등을 강요하던 엄마에 대한 미움으로 엄마를 살해하고 시신을 몇 개월간 방치해둔 집에서 살다가, 그동안 집에 무관심하던 아빠가 몇 달 만에 들어오던 날 아빠에게 이 소년이 한 첫마디는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버리지 말아요” 였단다. 이 아빠는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폭력적인 남편이었고 엄마는 이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아이의 성적에 대한 집착으로 바꾸며 살았다고 한다.
자식을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인 지경에 이른 엄마들에 대한 분노도 분노지만 무심한 아빠,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이 어떤 사슬을 만들어내는지도 읽을 수도 있다. 물론 가장 잔인하고 직접적인 첫 번째 가해자는 우리 사회다.
요즘의 부모들과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데에는 더 교묘하고 아주 풍성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10년 전에도 20여년 전에도 우리 사회의 엇나간 교육열은 비슷했다지만 그 때보다 지금이 더 악랄하다. 지금은 백일 된 아가, 돌쟁이 아가한테도 기백만원이 넘어가는 전집을 사 안기고 방문교사를 붙여 학습지를 시키는 사회다. “다중지능”이네 “통합지능”이네 말은 사려깊게 붙여놨지만, 이 교육법을 광고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자식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부모들의 열망을 이용하는 데에 있다. 결국은 나중에 공부 잘 하기 위해선 지금 이런 교육을 해 둬야 한다고 말이다.
네 살 열음이를 데리고 길을 걷다보면 프뢰벨이네 몬테소리네 다양한 전집과 학습지 광고를 하는 외판원들이 내 손을 잡으며 “얘 한글은 어느 정도 읽어요? 영어는요?” 하고 묻는데, 난 기가 차서 한 마디 한다. “네 살 짜리 아이가 왜 글자를 읽어야 하죠?” 네 살 짜리 아이는 글자에 갇힌 정보를 판독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온 몸의 감각을 사용해 세상을 배우고 그릇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는 시기에 있다. 북유럽에서는 7살 이하의 아이에게 문자교육을 시키는 것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11개월짜리 아가인 은율이가 노는 것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아이는 스스로 이미 온몸으로 세상을 공부하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물컵을 보면 정신없이 기어가 책상을 붙잡고 직립, 물컵을 손으로 들어 찰랑찰랑 흔들어서 액체가 흔들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드디어 물컵을 쏟고선 열광한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치면 물방울이 공기중으로 방울방울 흩어지는 걸 제 스스로 배운다. 네 살 열음이는 이미 이런 실험은 다 해봤고 책상 위의 물컵을 쏟으면 번거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걸 깨달아 알고 있다.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실험대상이고 놀잇감인 아이들에게 집안의 물건들은 제한하면서 책을 읽어준답시고 끌어앉히는 게 무슨 소용인지.
아직 돌이 안 된 어린 아가 하나를 키우는 한 지인이 나한테 정말 고민이 많은 얼굴로 “아이랑 노는 시간이 없어서 저녁 때라도 집중적으로 놀아줘야 될 거 같아요. 아이 전집 뭘로 사셨어요? 어느 회사 것이 좋아요?” 하고 묻길래, 책을 사 주고 싶다면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걸로 몇 권 사서 읽어주고, 그보단 아이가 노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사랑과 공감이나 듬뿍 주라고 했다. 정말로 안타깝다. 돌쟁이 아가를 키우면서 전집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고민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도 한국 사람들 특유의 성적지향주의의 일면을 본다. 성적은 결과가 말하는 것이다. 종일 아이를 관찰하며 아이가 노는 곳에 공감해주는 일은 별 성과가 없는 일 같지만, 종일 아이에게 책 열 권을 읽어주면 열 권의 분량만큼은 아이에게 뭔가 해준 것 같고 내 아이도 열 권만큼은 뭘 얻은 것 같이 느껴져서 덜 불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서너살 짜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아이에게 외국어 교육이라는 목표를 달성시키는 데 관심이 없고 그냥 재밌는 리듬처럼 영어노래를 들려주는 거라면 뭐 상관이 없겠지만 진짜 아이에게 영어라는 외국어를 가르치는 게 목표라면 위험한 일이다. 36개월 이전의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감 발달, 그리고 안정애착 형성과 특히 정서지능 발달이다. 36개월 이후 아이의 뇌는 전두엽이 왕성하게 발달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아이에겐 인지발달이나 외국어교육을 시키는 것보다는 조절능력과 절제능력을 가르치고,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 나누는 일, 배려, 도덕심과 같은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교육열이 높다고들 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도 관심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교육열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저 오직 아이의 성적이라는 하나의 과녁을 향한 것일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인간으로 자라났으면 좋을까. 예컨대 행복을 알고 주위와 나누며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행복이 무엇이고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층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행복과 건강이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것에서 오는 거라고 결론 내린 거라면 인간을 어떻게 그렇게 얄팍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 슬프고 속상하다. 한편으론 요즈음의 각박한 시스템 속에서는 공부를 통해 거창한 행복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져서 더 머리가 아프다. 공부 외에 여러 가지 재능으로 먹고 살 길이 다양한 시스템이 없으니까.
우리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나와 ornus의 지론은 “될놈될 할놈할”이다. 공부는 지들이 하고 싶으면 하고 될 거면 될 거라는 거다. 요즘 부모들은 숙제도 함께 하고 성적을 높이기 위해 같이 뛴다는데, 그건 우리가 도와줄 일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할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성취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은 영유아기 때 그 뿌리가 길러진다고 한다. 이 때 충분히 관심을 주고 그 다음엔 동기부여 정도가 부모의 할 일이지, 앉혀놓고 공부시키는 건 독이 될 뿐이다. 부모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를 잘 하건, 공치기를 잘 하건, 노래를 잘 하건, 어떤 상황에 있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기르는 일이다. 자기 목소리과 자기 색깔을 내며 주위와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보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한 가지 분위기가 있는데 뭔가 하면 시큰둥이다. 어릴 때부터 집과 학습지 선생님, 학원, 학교를 오가며 어떻게 해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견고한 시스템의 벽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가 무언가 하면 시큰둥인 것이다. 차라리 반항의 열기를 읽을 수 있다면 더 건강할지 모르겠다. 열 몇 살 아이들이 오고 가는 공간에서 시큰둥을 느낄 때 그 시큰둥 뒤에 꾸깃꾸깃 접혀 넣어졌을 아이의, 인간의 열정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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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딴 얘기이지만, 애들 감기가 너무 오래가면 폐렴 아닌지 CT 찍어보세요. 엑스레이만으로는 잘 안 보인대요. 저희 어머니가 감기를 너무 오래 달고 살아서 CT 찍어보니 장기간 폐렴이었다고. 가래 검사해서 균에 맞는 항생제를 처방받고 2달은 약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문득 생각나서 적습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있는 곳으로 가보세요. 설대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샅샅이 검사했으나 허탕치고, 강남검진센터에서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원인을 잡았어요)
맞아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이나 기침감기 오래 가면 가장 주의해야 할 게 폐렴이래요.. 어린 아가들은 폐렴 걸리면 며칠만 방치해도 큰일 나거든요.. 다행히 요즘 열음이는 이사오고 나선 한 번도 병원에 안 가고 있고(천식기가 있지만 아직은 감기에 걸리지 않네요), 은율이는 기침감기보다는 콧물만 조금 나면 바로 중이염에 걸려서 고생하고 어제부터 또 장염 시작이네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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