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요구하는 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내 만성적인 피로도 한계에 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요즘은 몇 주째 은율이가 밤에 20분 이상 연속으로 잠을 자주질 않고 깨는데,
은율이는 엄마 껌딱지라 ornus가 안아주면 더 크게 울고 나는 잠이 들었다 하면 깨어나질 못하는 체질이라 몇 주째 아예 내가 밤을 새고 있던 중이었다.
밤을 새면서 아이가 깰 때마다 안아주면서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거다.
아이들에게는 한 번씩 이런 시기가 있다. 아프거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되지만 이유 없이 그럴 땐 기다려야 한다.
언젠간 지나간다. 열음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중요한 깨달음이다. 다만 나는 더할 수 없이 지쳐 있다.
ornus가 늦은 밤에 들어오던 어느 날이었다.
나: “자기야 자기 회사 그만두자..”
ornus: ” 어?? 나도 방금 그 생각 하면서 들어왔어…”
아 좋다. 우리집의 유일한 수입원인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이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의견화합을 위해 에너지 들일 필요 없이 항상 의견이 같다는 것이 기적 같다.
자기는 일하느라 힘들고, 나는 혼자 애 둘 보느라 힘들고, 같이 있지 못해서 지쳐하지 말고 지금 이 시기를 같이 보내면 되잖아!
“우리 같이 있자.. 아침에 같이 일어나서 같이 밥 먹고 하루 종일 같이 아이도 보고 책도 읽자.
열음이가 어린이집 가 있는 시간엔 ornus도 공부하거나 놀 수 있고(은율이는 아빠를 나몰라라 함;)
열음이 어린이집 다녀오면 산으로 공원으로 놀러가고 저녁에 애들 재우고 영화도 보고..
우리… 같이 있자!!!”
“그래! 같이 있자!!
지금이 크리티컬한 시기다.(이 단어 정말 웃기는데 공대출신인 ornus가 잘 쓰는 말이다.)
은율이도 낮에 어린이집 가게 되는 시기가 오면 지금 같은 노동강도는 확실히 줄어든다.
우리 지금 서로 각자 다른 일 하면서 지치지 말고 지금 되도록 같이 보내고 이 시기가 지나가면 또 각자 자기가 하고싶은 일 하자.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일을 줄이기도 하면서 이 시기를 같이 보내자.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다른 계획은? 없다. 얼마간은 백수로 같이 있자! 인생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이렇게 간절히 필요로 할 때는 몇 번 오지 않는다.
그래서 ornus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우린 가진 재산도 없고 통장에 잔고도 없다.
퇴직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요즘 씀씀이로 보니 한 몇 개월 버틸 수 있을 거 같다.
몇 개월 쉬고 퇴직금 떨어져 가면 그 때 가서 다음 계획 세우면 된다.
+ 단 불행한 소식은,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회유과정이 꽤 걸릴 거라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만두지 않도록 회유할 거라고.
그래서 물었다. 회유하는 방법이 뭔데? “지금 참아주면.. 나중에 잘 봐줄게..” 이런거겠지.
그럽 답은 간단하네.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가족과 시간 보내면서 지금 당장 행복한 거라고. 그건 회사가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니 그만두겠다고.
또 하나는,
ornus가 책임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회사 차원에서도 경력 차원에서도 마무리짓는 게 중요한 일이라 시간이 필요하다.
책임 가진 입장에서 나몰라라 그만둘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또한 통상적인 인수인계 과정도 있으니 두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오늘 말하면 내일 당장 그만두고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른으로 사는 이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책임도 중요한 일이니까 기다리기로 했다.
삶 속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 일인지 복잡해서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가슴이 요구하는 바를 따른다.
그러기로 했다.
+ 엄마 아빠 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애들을 함께 키우는 것보다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봤는데,
아니다. 내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도우미가 아니라 ornus다.
아이들이 함께 있고 싶은 사람도 도우미가 아니라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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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그래 맞어. 지금 당장 행복해야해!
부럽다….
회사에서 얼른 놔주시면 더 행복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