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아이를 기른다는 것..

방명록에 친구 암헌이 쓴 육아와 교육, 놀이방법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변하려다가, 글이 길어지기도 하고 내 생각도 정리할 겸 아예 글 하나를 새로 쓰게 됐다. 사실 요즘 ornus 없이 혼자 남자 애 둘 돌보느라 정신 나가기 일보 직전!!, 내 코가 석자라 누구에게 조언을 할 처지가 아니라 하소연하고픈 처지다…ㅠ.ㅠ 

1.
교육철학에 관해서는, 어떤 어떤 교육방법보다는 더 근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책들을 읽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건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성찰하고 노력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좋은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대한 관심이고 좋은 사람의 키워드는 자존감이더라. 성인이 된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격의 여러 문제 중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대개가 자존감과 관련이 있고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핵심은 영유아기 양육자와의 애착관계.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집중한 책을 읽기 전에 심리학이나 정신과 관련 책, 그 중에서도 자존감을 키워드로 하고 있는 책들을 검색해서 읽는 게 제일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 다음은.. 내 부모를 생각해보는 것. 아이의 문제행동 뒤에는 반드시 문제의 부모가 있는데 안타까운 건 이 부모 뒤에도 역시 문제의 부모가 있다는 거다. 이 부분은 <독이 되는 부모> 란 책을 추천.  목차를 보면 극단적인 부모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데,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이 극단적인 부모의 성향을 조금씩은 다 갖고 있고, 이런 성향들을 의식하지 않으면 대부분 자신의 부모의 양육방식을 답습하기 때문에 내 자식한테도 이어진다는 거다. 이 책은 부모가 아닌 20대 보통의 여성들이 많은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상처나 성격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많이들 읽고 추천하는 걸 보면서 알게 된 책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제일 많이 생각했고 두 번째는 나의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나의 부모님도 사실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었고 어린아이였다고 생각하면서 부모에 대한 연민도 갖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책들과 나의 짧은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내가 확신한 건 아이들을 대할 때 확신하고 있는 총론이 있으면, 각론은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또는 상황별 도움이 되는 책들(기질별 양육법, 아이 개월수에 맞는 대처방법을 다루는 육아책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처하면 된다는 거다.
나의 총론;은

첫 번째, 아이와 마주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선공감 후훈육(교육)”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충분히 공감받고 수용받은 아이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훗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세 돌 이전에 충분히 수용해주라고 한다. “아.. 네 감정이 지금 이러이러한 상태구나. 이게 갖고 싶구나. 이렇게 하고 싶었구나” 감정 먼저 읽어주고 그 다음에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훈육하는 거다. 물론 위험상황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바로 훈육해야 한다.

두 번째는 아이 발달 단계와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맞게 아이를 이해하려는 거다. 먼저 발달 단계.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아직 뇌발달 자체가 전영역에 걸쳐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 생각대로 교육하면 안 된다. 실감나는 예를 하나 들자면, 돌 지나 세 돌 무렵 이전의 아이는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심해서 친구가 놀러와서 장난감을 만지려고 하면 “안 돼”라고 소리치기 일쑨데, 이 시기 아이는 소유 개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보통의 부모는 일단 양보를 시키려고 하는데 이게 실수다. 자기 소유를 충분히 확신받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양보를 가르침받은 아이는, 소유와 나눔에 대해 건강한 개념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야 장난감 친구 안 주면 욕심쟁이야. 얼른 나눠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이 장난감은 네 거야.. 맞아 네 거니까 친구가 가져가는 게 아니야. 잠깐 같이 갖고 놀고 이따가 다시 줄거야” 같은 방법으로 교육해야 하는 거다. ebs 다큐에서 지나치게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아이에 대해 나왔는데 전문가의 솔루션은, 그 아이의 방 안의 물건들에 다 그 아이 이름을 써주고 이것이 다 충분히 네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소유욕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아이는 친구와 자연스럽게 자기 물건을 공유하게 되더라. 이 시기가 지난 아동이라면 당연히 소유욕보다는 나눔에 중점을 둬서 가르쳐야 하는 거고. 이건 단적인 예지만, 내 아이의 뇌가 어디쯤 발달하고 있는지 모르고 성인인 내 눈으로 바라보면 아이들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 자연스러운 발달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지식으로 알고 나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기질에 대한 존중. 타고난 기질에 맞는 양육방식이 뭔지 알아야 한다는 것. 아이의 기질은 다 다른데 옳고 그름은 없고 바꾸려 노력할 부분도 아니기 때문에 기질을 존중해야 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기질별 육아 혁명>이란 책과 그 외 기질을 키워드로 하고 있는 책들 추천하고 싶다.

세 번째, 정서는 충분히 공감해주되 훈육은 일관성 있고 단호하게. 아이에게 자상한 부모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부모란 아이에게 해도 될 일과 안 되는 일의 한계를 가르쳐야 하는 훈육자라는 걸 간과하는 것이란다. 단호한 훈육이 필요한 몇 가지 상황에서 하지 않겠다고 조르는 아이에게 우유부단하게 상황정리를 못하는 부모는 아이의 불안감을 키운다고 한다. 그 때 아이가 바라는 건 단호하게 한계를 그어주는 부모. 그리고 이 한계선을 일관성 있게 지켜야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2.
그 다음..어떻게 놀아주는 게 좋을지에 대한 답변은.. 놀이방법에 관한 책이라면 다양하게 많을 거니까 어떤 책을 봐도 다 도움이 될 거 같고, 내 철학은 이것 역시 키워드는 공감이라는 거다.
아이와 가장 잘 놀아주는 부모는 아이가 하고 있는 놀이에 지속적으로 공감을 표해주는 부모이고, 아이와 노는 법을 모르는 부모는 자꾸 아이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더 흥미있을 놀이로 아이를 유도하려고 하는 부모라고 한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부모가 된다는 건 간단한 건데, 아이들은 이미 우리보다 창의적이고 모든 걸 놀이로 바꾸는 재능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공감을 보내주는 게 가장 좋은 것이란다. 예컨대 빨간 자동차를 가지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에겐 “빨간 자동차가 부릉부릉 달려가는구나!”라고, 세모블럭을 네노블럭 위해 쌓아서 집을 만들려는 아이에겐 “열음이가 네모 위에 세모를 쌓아서 집을 만들었구나!” 라고, 사자인형을 가지고 어흥 하며 달려오는 아이에겐 “열음이 사자가 어흥 했네! 악악 너무 무섭다!” 와 같은 식으로 공감해주며 곁에 있으면 되는 거.. (참 쉽지요잉~)

3.
위에 언급한 책들보다 오히려 더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들은 동명의 ebs 다큐를 바탕으로 나온 <아이의 사생활>, <현명한 부모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화내는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등등..

이론을 알아도 예외 투성이인 게 아이 키우는 일이라 매순간 깨지고 좌절하면서 배우는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매순간 명심하는 건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격체이기 때문에, 내 뜻에 맞게 아이를 바꾸는게 아니라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말하는데 사람 한 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아이를 키우며 울며 배우고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쓴답시고 쓰고 있는 나도 사실 몇 시간 전엔

이미 양치질 다 하고 잘 준비 끝냈는데 땅콩 더 집어 먹고 양치질은 도깨비가 나올까봐 할 수 없다는 열음을 설득하며 진땀 빼는 중에, 우유컵을 보란듯이 뒤집어 바닥에 쏟은 후 손바닥으로 찰싹거리며 만족스럽다는 듯 해맑게 웃고 계신 은율이와 씨름하고 있던 보잘것 없는 엄마일 뿐이고..

종일 지쳐 자기 직전 책 한 줄 읽을 힘이 없어 울고 싶어져 내 자존감은 바닥났나 푸념하는 나약한 엄마일 뿐이다..사실 요즘은 혼자 너무 힘이 들어 아무 죄 없는 출장간 ornus가 미워져서 ornus 밉다고 하루에 세 번씩 복창하고 있는, 논리 따윈 개나 준 사람이기도 하다-.-

Comments on this post

  1. 암헌 said on 2011-09-05 at 오전 4:52

    역시 “공감”이라는 분명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구나. 난 요즘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솔직히 키운다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나의 역할은 제한적임) 너무 본능적으로 아빠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중이다. 기껏 노력한다고 했던 것은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때 나도 같이 즐기려고 했고, TV만화를 보여줘도 가급적 같이 보려고 했고 주인공 이름 정도는 외워두려고 했던 것 정도랄까? 근데 말이 좀 통하기 시작하니까 욕심이 나더란 말이지. 좀 더 다이나믹하게 놀아주고 싶은데, 좀 더 아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말이지. 일단 위에 언급된 책부터 차례대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나서 다시 방명록에 남기도록 할께. 고마워^^

  2. wisepaper said on 2011-09-06 at 오후 6:43

    좀더 다이나믹하게 놀아주기 위해 놀이법을 궁금해하는 너의 모습은… 여유있어 보여 부러우이.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