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보내는 1,2,3,4

1. ornus는 2-3주 일정으로 미국 출장을 갔다. 지금은 텍사스 달라스에 있다는데 다음주엔 LA로 옮겨서 일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달라스의 날씨를 검색해보았더니 요즘 낮 기온이 42도 45도 가량 된다고 한다. 세상에 끔찍하다. 건물 밖으로는 나가지도 말아야 겠구나. 본인이 원하던 대로 원하는 일의 아키텍트가 되어서 일하게 된 건 좋다고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에는 중도가 없다. 스트레스, 과로 조심해야 되는데.

2. 열음이한테 아빠는 “열 밤 자고 온다”고 말했더니 낮잠 자고 일어나서도 “아빠 이제 다 잤대? 내일 온대?” 하고 계속 묻는다. 36개월 넘어서면서 부쩍 의젓해진 열음이. 이제 기다리는 일도 잘 하고 내가 조근조근 설명해주면 대부분의 일들을 이해하고 절제하는 법도 안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시간이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아이를 자기 뜻에 맞게 바꾸는게 아니라 기다려주는 일인 것 같다. 열음이는 평소에 목감기에 잘 걸리는데 이번엔 이 감기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안 떨어지다가 지금은 심한 기침을 하고 있다. 약을 한 달 째 먹고 있어서 힘들어한다. 그런데다가 ornus가 출장 가자마자 눈에 결막염이 걸려 버렸다. 켁.

3. 은율이는 형아가 감기 걸리면 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동생들의 운명이다. 은율이도 목감기약을 먹고 있는데 입 안에 아구창(구강기라 입에 물건을 다 넣다보니) 곰팡이가 생겨서 목감기약을 잠시 끊고 곰팡이약을 먹는 중에 목감기가 심해져서 후두염이 와버렸다. 그와중에 결막염이 옮아서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있다. 밤에 두 아이들이 잠을 못 자고 번갈아가며 보채니 한 명은 안아주고 한 명은 쓰다듬어 주며 깨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별 일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이런 일은 그냥 일상이라고나 할까. 나도 이제 이 정도의 일상엔 굳은살이 박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설치는 게 반복되면 자고 싶어도 못 자는 불면증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절벽 끝에서 내몸을 떠다밀듯 이성을 놓고 싶을 때가 온다. 어젯밤이 그랬다. 그럴 때 내 밑바닥은 어디쯤에 있는가가 보인다. 밑바닥을 보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고독을 이기기 위해 고독을 베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고독 속에 안겨 더 깊은 자기와 만나라는 글을 마침 읽고 있다.

4. 어제는 시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급히 옮겨지셨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할머니까지 다 같은 병을 앓은 병력이 있는데 이것은 가족력이 심하게 좌우하는 병이라 ornus도 안전하지가 않다. 금해야 할 것은 과로와 스트레스와 술과 담배와 기름진 음식. ornus는 술도 담배도 기름진 음식과도 거리가 멀지만 다른 건 일부러라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5. 언젠가부터 T자형 인재가 되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떠돈다. 깊게 파면서 넓게 파라는 말이다. ornus한테 농담처럼 “요즘은 T자형 인재가 유행이래~” 했더니 ornus는 그런식의 조어에 회의감을 표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분야와 분야 간의 융합과 통섭이 중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세상에 어떤 의중을 가진 말인지도 알겠고 그렇게 되면 좋겠지 싶기도 하지만, 내게는 시중에 깔린 자기계발서의 문구들이 그렇듯 허망함을 환기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이 넓게 파라는 말을 강조하고플 때 이 말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실은 넓게 파기 전에 제대로 깊게 파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요즘 이승우의 글들을 읽고 있는데 우리 안의 근원적인 죄의식, 부채감, 고독, 공허, 상실감 등을 끈질기게 붙들고 글을 쓰는 그가 한 말이 그러므로 더 와닿는다고나 할까.
 “넓히면서 동시에 깊어지기는 어렵다. 넓히는 자는 깊이를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통찰력과 창조의 에너지도 기대해선 안 된다. 넓이를 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깊이와는 다른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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