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취미 그리고
1. 사소한 취미
매사가 일에서의 성취와 다음 단계를 위한 계획,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진 삶을 사는 것보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 취미, 그러니까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사소한 취미를 가진 삶이 행복하다는 한 심리학자의 글을 스치듯이 읽었다. 그러고 보니 그럴듯하다.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순간이 아니라 그저 그 순간 자체를 느긋이 오롯이 느끼는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걷다가 시멘트길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난 잡풀들 사이에서 질경이를 발견하고 손을 뻗는 순간,
아무 일에도 도움이 안 될 테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잡다한 사진 따위를 모아서 딱풀을 들고 방 한 켠에 붙이고 있는 뭐 그런 순간을.
내 사소한 취미는 여기 저기 이나라 저나라 사람 사는 집 모양새와 골목길, 마을이 터잡은 모양새에 대한 사진과 글을 찾아 보는 것. 그리고 지도 들여다보기. 어렸을 때부터 그랬기에 교과서 중에선 특히 사회과부도책을 좋아했는데 오죽하면 다 커서 회사에 다닐 때도 일이 좀 여유로워 짬이 나면 상사의 눈을 피해 꼬깃한 지도책을 무릎에 펼친 채 앉아 있곤 했다. 얼마 전엔 ornus가 강남역에서 지나가다 샀다며 돌돌 말린 세계지도를 들고 들어왔는데 그 크기가 우리방 한 쪽 벽 만해서 불여둘 염두를 못 내고 세워둔 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다.
토요일 오후 애들이 잠깐 잠을 자는 시간 ornus의 사소한 취미는 무얼까 보니,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이 읽는 과학동아나 과학수학 같은 잡지를 쉬엄쉬엄 넘기고 있다. 그리고 포르투갈이나 남미의 노래들을 웹에서 뒤적거리다가 노트북의 모기소리 앵앵거리는 스피커를 켜고 내게 들려주는 일.
열음이와 은율이의 사소한 취미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도 세상을 처음 느끼는 경이와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이 아이들에게 사소한 취미란 없다. 모든 것이 대단한 순간이다. 아아 니들은 젊어서 좋겠구나.
2.
인터넷을 많이 하는 현대인들의 뇌가 인터넷의 즉각적이고 주기가 짧는 정보에 적합한 뇌로 변화될 여지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봤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가끔 아찔할 때가 있다. 실제 우리가 사는 삶은 인터넷에서처럼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단위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긴 주기로 시간이 흐르고 변화보다는 지속, 권태에 가까운데 실제 삶의 실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정보나 글로 뛰어드느라 진짜 삶은 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책도 마찬가지. 나도 어떤 일과 일 사이에 생기는 여유를 못 견디고 글자가 적힌 책을 집어들곤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런 습관이 길에서, 지하철에서 그 순간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집어드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요즘은 그래서 되도록 내가 서 있는 그 순간 자체를 느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차를 타고 있을 땐 차가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땐 느리게 호흡하며 그 순간의 공기를 느끼고, 길을 걷고 있을 땐 길가 풍경에 시선을 두는 거다. 좀처럼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좀처럼 듣지 못했던 것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순간에 가만히 기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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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나의 사소한 취미는 스팸메일 정리인데..ㅋ
나의 치명적인 취미는 스팸메일과 함께 중요메일도 날려보내는 거…ㅋㅋ
나도 사회과부도 보는 거 넘 좋아했더랬지… 오죽하면 사회부도과에 나오는 지도를 외워서 다 그릴 수 있었다니까. 중1 때 사회 선생님이 지도 안 가져 오면 나더러 칠판에 그리라고 하셨지. 아직도 동남아 지역 지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ㅋ 나는 사소한 취미가 없는 것 같아. 생각해 보니까. 흠… 청소하는 거? 정말 집중적으로 하는 편이지. 뭐든 생각이 나거나 삘이 충만할 때나 하는 것들이 대부분. 홈피 운영이나 트윗질이나, 전화질이나, 독서질이나, 서핑질이나, 청소직이나, 요리질이나.. 등등.. 그럼 내 사소한 취미는 가끔 집중적으로 삘받기?! 흠.. 요즘은 음악 찾아 듣기에 집중적인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공부해야 되는데 말이지… 흠… 아, 나 우리과 1등 졸업이다. 증말 자랑스럽구나!! 움하하하~! 증말 고생많았다. ㅋㅋ 쑥쓰럽지도 않다야. 어찌나 삽질하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ㅡ.,ㅡ jin은 2등인데, 논문은 1등 하겠다고 요즘 완전 정신줄 쎄게 잡고 있드라. 내가 학교에서 1등한 건 첨이다야. 이 나이에… 요 정도면 자랑 지대로지? 요즘 런던서 proms 축제하는데 니 생각 많이 난다. 아마 여기 있었으면 매일 콘서트 가지 않았을까?내가 다닐 학교가 알버트 홀 옆집인데, 내년엔 나도 시즌권 끊어서 피날레 함 볼까 싶다. 언제 오냐?
가끔 삘받기라..음… 그것은 해야할 일이 잔뜩 쌓인 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피하기” 아니더냐?? 원래 공부할 때는 음악듣기과 독서와 서핑이 세상에서 젤 달콤해지 거~~ (근데 대체 어떻게 청소가 취미야.. 뭐니 그게 현실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거라니 진짜 짜증나. 아냐 사실 나같은 사람한텐 청소가 취미인 사람이라니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야..흑흑 우리집에 그런 사람좀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