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사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고?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는 그나마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다.
요즈음의 나는 눈물 한방울의 수분기도 남기지 못하고 타버리는 존재 같다.
사그라들어 분분히 흩어졌을 나의 재는 어디로 갔을지. 잿가루도 잘 만져지지 않는다.
기왕 타는 것 내 온 기력을 다해 불사르고 있다면 후회라도 없을텐데
하루 종일 자신만 바라봐달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영아기를 지나고 있는 은율이에게
온전히 올인하지 못하는 나는 넋나간 사람 같다.
내 머릿속엔 오직 나의 것을 향한 욕망도, 그렇다고 오직 타인 – 아이를 향한 욕망도 아닌 것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싸우고 있다.
사는 게 이보다 가벼울 때는 낙서 같은 조각이나마 글도 시도 손가락을 타고 나온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온몸을 내어놓느라 손가락으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이 텅- 비워진 존재같다.
아이는 내가 온몸과 함께 온 정신을 다 내줬는지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은율이와 단둘이 보내는 오전 시간 – 내 몸은 그를 향해 앉았지만 내 정신은 내 욕망으로 분주할 때
아이는 유난히 더 보챈다.
오직 나만을 향하느라 보채는 아이의 시선이 가여워져 사력을 다해 집중해서 쳐다봐주자
함박같은 웃음으로 내게 답하며 나를 채워준다. 그리하여 알았다.
나는 손가락으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지만 온몸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나를 타인과 섞고 타인의 삶에 개입해 손내미는 것으로 내 존재가 확장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보통 첫번째 확장을 연애에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욕망과 그의 욕망을 교환하고 맞부딪치며 쾌락과 슬픔으로 널을 뛰는 쌍방향의 흐름이 강해서, 잿가루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혼자 지쳐간 일은 없다.
오히려 그 때는 내 이기심이 춤추던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욕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이와의 사랑에서는
내주고 나서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지쳐갈 때가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 내줬을 때보다 내 욕망과 싸우느라 다 내주지 못했을 때 더 지쳐간다는 사실이다.
아이와의 사랑이란 건 오직 나를 다 내줬을 때만 그 사랑의 본질적인 힘을 건네주고 내준 자리를 다시 채워준다.
진짜 타인의 존재에 나를 내주고 그로 인해 확장된 나를 얻는 사랑은 이렇게나 먼 길인 것이다.
미안하다 은율아.
열음이 때는 그래도 이런 확장을 배우는 사랑이 처음이라는 것이 들떠서 조금 덜 지치고 조금 덜 허기졌는데
이제 두 번째라고, 나는 너를 시시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내 욕망을 채우느라 너를 더 보채게 하고 그로 인해 더 지쳐갔던 것이다.
나에겐 두 번째지만 너에겐 오직 첫 번째인 사랑인 것을.
다 내주기 싫어서 몰입하지 않으면 절대 힘을 주지 않는 관계.
오직 몰입했을 때에만 내준 자리를 다시 채워주는 힘을 건네주는 것이 너희로구나. 잔인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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