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만큼 자라는
오랜만에 열음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왔다.
처음에 어린이집을 선택할 때 10군데를 돌아다녔다.
많은 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화려한 교육방법, 영어교육 등을 강조했는데 그런 곳은 제외했고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교육철학- 아이와의 애착관계를 중시하고 아이의 자존감을 소중히 여기는-이 신뢰가 가는 곳으로 지금의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낯가림도 심한 때였는데 원장님이 열음이를 잘 받아주셔서 차근차근 애착관계도 잘 형성하고 음악, 미술, 체육, 놀이활동도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이끌어간다기보다 아이들에게 여지를 많이 주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열음이가 재밌게 그럭저럭 잘 다니고 있었다.
원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열음이처럼 욕구가 많고 에너지가 강하고 지치지 않는 아이는 너무너무 드물다고 하셨다. 오전 프로그램은 재밌게 주도적으로 잘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엔 열음이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어린이집이 감당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하셨다. 이 말를 다른 사람이 했다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열음이의 기질을 잘 이해하시고 적절하게 대응해주시려고 노력했던 분이었기에 그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챙피해서 혼났다.
오전 프로그램은 잘 하는데 그 외 오후시간엔 다양한 바깥활동이나 놀이학교, 자연학교 등의 도움을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셨다. 사실 그동안 열음이는 어린이에서 바로 집에 오는 게 아니라 항상 나랑 학교 운동장, 단지 앞 개천가, 작은 동산, 실내놀이터, 마트의 장난감 코너, 단지 내 놀이터 등에서 몇 시간 활동을 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블럭쌓기나 책읽기 같은 정적인 활동을 한 후 잠자리에 드는 게 하루 일과였다. 은율이를 낳고 나서는 은율이는 유모차에 태우면 잠을 잘 자기에 은율이와 함께 다녔다.
이건 내가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라 열음이가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이렇게 충분히 발산해주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리 서로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힘들게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나한테 그러는데, 순하고 얌전한 아이라면 집에 가서 엄마와 정적인 활동을 하고 하루를 마감하면 되겠지만 열음이에겐 그것만으론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안 그래도 열음이를 놀이학교나 자연학교로 보낼까 하는 고민도 했었기 때문에 아차 싶었다. 나 어릴 땐 밖에 나가서 뛰어놀면 그게 다 놀이학교고 자연학교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기관의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기도 하지만.. 내가 혼자 다양한 활동으로 만족시켜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아무튼 이제 오전 프로그램 끝나고 더 많은 시간 다양한 놀이나 바깥활동을 하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냈다.
상담을 받고 돌아왔는데 밥이 잘 넘어가지가 않는다. 혹시 나의 교육방법이 잘못된 부분이 없는가. 심리상담을 한 번 받아볼까. 열음이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게 다른 아이들과 다르니까 문제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물론 어느 부분은 고쳐야 할 부분도 있고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전체적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열음이가 문제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음이의 타고난 기질을 잘 살려주는 방향으로, 열음이가 가진 가능성을 좋은 쪽으로 뽑아낼 수 있도록 맞춰주는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만으로는 열음이의 지금 모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ornus의 어린시절에 대해 자주 묻게 된다.
우리 시어머니가 말씀하시길 ornus도 어렸을 때 굉장한 고집불통에, 원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고. 그에 한 술 더 떠 ornus말로 자기는 재수없는 골목대장이기도 했단다.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데, 어쩌면 어린시절에 그런 기질이 있었기에 그 덕분에 만들어진 장점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에너지가 많고 욕구가 다양하고 고집도 세고 예민한 부분도 많은 기질의 아이는 양육자가 쉽지는 않지만 나는 열음이가 이런 기질을 가졌기 때문에 후에 해낼 수 있는 부분도 많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다루기 쉬운 순한 아이로,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드는 건 답도 아니고 실현될 수도 없는 일이다. 열음이를 열음이답게. 나는 열음이를 믿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자란다고 한다. 내가 아이를 믿기 위해선 또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해야 한다. 내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리라.
아이는 부모의 말 몇 마디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고 기다릴 때 성장한다. 첫아이라서 다른 노하우가 없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지난 시간 내가 경험으로 배운 건 이것뿐이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이가 왜 내뜻대로 되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이 열음이에게 전달됐을까, 미안하고 소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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