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은 계속된다
배우 이제훈에 꽂혔..
공팔년 1월 이후로 약 2년만에 재개하는 나의 훈배우 팬질.
인디영화 <약탈자들>에서 대충보고 어? 좀 괜찮네 했는데 커뮤에 올라온 <친구사이> 스틸 사진과 예고편에 있던 아주 사소한 표정에 꽂혀서(원래 꽂힌다는 게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거다;;) 본격 검색질 시작.
찾아보니 대중적인 활동은 아직 없고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올리고 있는 중.
<친구사이>의 경우 주말마다 무대인사를 하는 통에 팬들이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널려있다. 이미지 신선하고 연기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중저음 안정된 발성, 목소리도 좋고 하물며!!! 연기관이나 마인드도 개념잡혀 있는 훈훈한 배우가 아닌가.
잘 크면 박해일이나 신하균이나 카세료나 뭐 이렇게 자기 영역이 있는 배우로 커나갈 수 있지 않을까(스타라기보단 배우에 어울리는).
(이제훈과 김조광수 감독)
십시일반 후원금과 스텝, 배우들의 노개런티 참여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친구사이>에서 주연을 맡은 제훈군을 보러 삭풍을 뚫고 달려갔다.
역시나 우리가 보러 간 날도 감독과 배우의 무대인사 및 씨네토크가 잡혀 있었고!! (이것이 바로 작은 영화, 독립영화를 보는 기쁨인가)
로비에 무심하게 서있는 서지후군을 보며 “뭐지 이 우월한 비주얼은..참내 어이가 없숴-.-“
속으로만 생각하고 도도하게 지후군을 쌩까고(나는 제훈군의 팬이거등!!) 감독님에게만 사인을 요청했을 뿐이고!!!
그러나 감독님으로부터 제훈군은 새영화 촬영이 바빠 못 왔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속이 쓰렸을 뿐이고!!!
(아.. 지후군이야 도도하게 쌩깔 수 있으나 제훈군을 본다면 그저 한없이 겸손하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으며 덕담을 건네려 했건만ㅠ)
(지후군 실물은 이런 느낌. 웹에서 긁어온거)
영화
이날은 김조광수 감독의 전작 <소년, 소년을 만나다>과 <친구사이>가 함께 상영됐는데 뭐랄까 기대도 안했는데 풋풋한 감성을 전달받은 느낌.
이런건 사운드 빵빵하고 퀄리티 훌륭한 오버그라운드 뮤지션의 앨범을 들을 때와 다른, low-fi 사운드에 헐겁게 만들어진 인디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달착지근하고 애틋한 감성과 비슷한 거다.
게다가 감독과 배우조차 허물없이 관객을 만나고 하물며 고민을 들어주기도 한다.
김조광수 감독은 사실 청년필름의 제작자로서 내 관심사에 있던 인물이다. <해피엔드>, <질투는 나의 힘>, <와니와 준하>, <분홍신>,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을 제작. 주진모, 박해일을 발굴하고 <해피엔드>로 전도연의 터닝포인트를 이끌어낸 제작자.
10여년이 넘게 평단이나 상업적인 평가 양쪽에서 중박을 터뜨리는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낸다는 건 쉽지않은 일이다.
한때는 나도 영화사 취업을 흘깃거린 시절이 있기에 청년필름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제작자가 갑자기 게이임을 커밍아웃하고 감독으로 변신, 퀴어를 찍기 시작했을 때 음.. 우려는 했지만 지금은 뭐 기대가 되는 중이다.
씨네토크
(내 비루한 똑딱이는 앞쪽에 앉아서 최대한 줌을 했음에도 이따위로 찍을 뿐)
지후군은 정말 화면발이 안받는다. 실물은 정말 기럭지 길고 마르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잘생겼는데 영화에선 평범해보였다. 제훈군은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영화 안에선 오밀조밀 이뿌게 나온다.
(다른 날 씨네토크 – 퍼온거)
(가운데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제훈 – 이 날이 내가 간 날이었어야 해!!!!!!!!!!!)
영화 끝나고 씨네토크시간 막바지쯤. 더 질문할 사람 손들라는 감독님. 갑자기 ornus를 가리키며 “거기 귀여운 남자분이 질문해 주시면 제가 차암 좋겠어요!!(퐈핳하;)” 외치시는 게 아닌가. 쭈뼛쭈뼛 뿌듯해하던 ornus 대신 질문은 내가 했다. 서지후군에게.
“자신의 외모에서 풍기는 특징이나 연기 스타일, 연기 가능성을 봤을 때 어울리는 캐릭터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제훈군에게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으나 오늘 못 왔으니 제훈군에 대한 대답은 감독님께서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지후군 좀 어려웠는지 횡설수설 대답이 산으로 가기 시작. 감독님, “이게 지후의 본모습이에요. 공대생이라 이래요.”
제훈, 지후 둘다 공대출신(지후군은 기계공학과 4학년이고, 제훈군은 고대 공대 다니다 자퇴하고 한예종으로 편입한 열혈 배우지망생이었다고;)인데, 인터뷰마다 감독님이 “공대생이라 아무것도 몰라요”
푸하하. 그런거구나. 공대생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 공대생 이미지는 이렇게 굳어지는 것인가;;
제훈군에 대한 감독님의 대답은, 전도연이 지구력이 좋은 배우, 김희선 같은 배우가 순간 집중력이 좋은 배우인데, 제훈이는 지구력이 좋은 배우이기 때문에 영화 한편을 끌어갈 만한 역량이 있고, 앞으로 TV보다는 작더라도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경력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커밍아웃은 계속된다
사실 <친구사이>는 두 청년의 달달한 연애담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게 커밍아웃 하는 순간을 담아낸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메이킹필름에서 “커밍아웃은 평생 계속된다.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면 그 다음은 친구, 그 다음은 동료, 그 다음은…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계속된다”
커밍아웃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배반하면서 내면이 황폐화된다고.
집에 오는 길에 ornus와 나는 열음이와 우리의 상황이 떠올라 짠해졌다.
공개입양이란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개한다는 뜻이다.
열음이에게 입양사실을 공개하고 난 후에는 열음이와 우리의 주체적인 판단하에 끊임없는 커밍아웃이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를 이어갈 이들에겐 공개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겐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놓았으나 이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예컨대 놀이터에서 만난 아줌마가 내게 “열음이 임신했을 때 살 쪘었어요? 어떻게 뺐어요?” 같은 질문을 해올때.
그냥 웃고 넘기는 순간 나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고 열음이와 나의 정체성은 한번 상처를 입는다.
자아에 대한 개념이 잡힐 나이가 될 무렵부터 열음이는 끊임없이 이 경계선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 배로 낳지만 않았을 뿐, 내 온몸으로 낳은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의 살점같은 내새끼 열음이가
평생 이 문제와 대면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려와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가 대면할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이겠지.
잡담
씨네토크가 끝나고 구석에서 감독님과 짧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감독님 또 한 번 ornus를 쳐다보며 “귀여운 남친 둬서 좋겠어요” (저기.. 남편인데요;;)
퐈하하 영화감독에게 립서비스인지 뭔지 암튼지간 귀엽다는 말을 두 번 들은 ornus씨
좋으셨세여?!! (감독님이 안경을 깜빡해 디테일을 못본거지-.-)
지난 일년간 둘이 함께 극장에 못 간 걸 아쉬워했던 나를 위해 기꺼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독님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다음 영화 제작비로 무려 일만원을 후원한 ornus야, 자기 짱이야!
(에.. 이날 내가 쫌.. 칭찬들었숴!!)
무려 배우사진과 한 게시물에 사진을 끼워넣는 만행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난 예의 따윈 갖다버렸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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