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가 웃는다

1. 울고 싶다 – 먹기

남들은 옆에서 “그 정도면 잘 먹는 거라고” 걱정 없이 말해주는데 나는 늘 열음이가 많이 안 먹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삼키는 것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음식을 씹다가 입에 물고만 있다가 뱉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돌 전에는 뭐든 잘 먹더니 돌 지나고부터 이런 현상이 보여서 검색도 많이 해보고 소아전문 한의원에도 가 봤는데..

의사들은 뭐 여전히 별 도움 안 됐고 이런저런 정보를 종합한 결과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아직 씹고 삼키는 근육이 덜 성숙했기 때문이란거다. 아이가 질감 있는 음식을 씹어서 삼키는 일은 목구멍과 연결된 여러 근육과 튼튼한 비위(소화기관) 작용이 종합해서 일어나는 결과란다.
타고나길 비위가 튼튼하고 식욕이 좋고 먹고 삼키는 근육이 일찍 발달된 아이들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음식을 잘 안 삼키고 물고 있게 된다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크면, 저절로 해결될 일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항상 의기소침해지고 자책을 하게 된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우리가 음식을 먹이는 방법이 잘못된 걸까. 우리의 양육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이런 걸까.
이런 생각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으면서도 늘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부모일까. 아이의 가능성에 대해 편견 없이 열려 있고, 제한보다는 허용을, 기대보다는 격려를, 간섭보단 지켜보는 부모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많이 비우는데도.
아이가 내 생각대로 많이 먹지 않는다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는 뭐란 말인가.
자괴감이 크다.

건강검진 받아보면 키는 100명 중 뒤에서 4번째일 정도로 큰 편이고, 몸무게도 표준이다.
의사들은 걱정할 일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걱정에서 자책에서 우울까지 간다.

ornus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제 자식까지. 우리 가족은 하나같이 먹는일을 즐기지 않는다. 우린 상관없으나 열음이는 잘 먹었으면.

2. 웃는다 – 차 매니아

열음이가 요즘 가장 많이 보는 책은 <예술가의 거리>다. 아이고 참.
내가 읽으려고 산 책인데 런던, 파리, 비엔나 등등에서 예술가들이 작업한 장소, 영감을 받은 거리 등등을 기행 형식으로 풀어놓은 사진 있는 책이다.
아침시간엔 나는 자고; 항상 ornus가 열음이랑 노는데 ornus 말로는 어느날부터 열음이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사진 곳곳 구석구석에 가끔 나오는 차(자동차)를 찾는 데 재미가 들려서 그런거란다.
ornus가 없을 때도 열음이가 이 책을 내게 들이밀며 차를 찾아달라고 요구하길래 ornus한테 전화를 걸어보니

53페이지에 런던 꽃집 앞에 차 한 대 주차돼 있잖아. 그거 특히 좋아해. 옆에 서 있는 여자, 남자한테는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데..”

응?-.-

224페이지 파리 상젤리제 거리 펼쳐봐봐. 길거리를 달리는 차가 수백대야. 그거 최고 좋아해!”

글쿠나-.-

여기 펼쳐주면 열음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난다.  그 좋아하는 차가 수백대가 지나가는 큰 사진이니 그럴만도 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특별히 차에 대해 편향된 취향을 심어준 것도 아닌데 지 스스로 차를 너무 좋아해 차들 지나가면 “차!! 차 가!!” 환호성에
하다못해 집으로 오는 쓰잘데기 없는 광고전단지 귀퉁이에서도 차만 찾아내고
엘리베이터 거울 한 구석탱이에 있는 무슨 렌트카 광고에서 손톱만한 차 사진을 찾아 놓고 감격해한다.

열음이만 이런 게 아니라 대체로 남자애들이 그렇다.
교회에 열음이 또래 애들이 있는 놀이 그룹에서 누구 한 명이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오면 열음이 또래 남자애들이 다 그 주위에 몰려들어 서로 가져보려고 전쟁이 일어난다.
이 장난감 옆으로 달려들어 같이 전쟁을 벌이는 여자애들은 아직 못 본 것 같다.
.

밖에서 구급차인지 경찰차인지 띠용띠용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열음이 무슨 큰 일 난 것처럼 달려와서 “엄마! 차!! 이용이용!! 차가 이용이용!!”
그리고 손가락을 줬다 폈다 하며 띠용띠용 소리를 손가락으로 흉내낸다. 소리의 시각화가 기가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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